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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다 Kdiversity Apr 12. 2024

프로이직러가 동료의 퇴사를 마주할 때

떠나는 이의 뒷모습을 보는 건 낯설다.

나는 주로 떠나는 쪽이었으므로.


며칠 새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퇴사소식을 전해왔다.

- 2022년, 업계를 옮기고 나서 크게 홍역을 치르던 때 그래도 여기서 나도 밥값 할 수 있구나 알려주신 분

- 2023년, 나의 가파른 learning curve를 이끌어내 주신 분

- 2023년, 연차가 쌓이며 회사에서 동태 눈깔이 되어가던 내가 꿈이라는 걸 꾸게 해 주신 분


나는 당분간 지금의 이 회사를 떠날 생각은 없다.

악착같이 열심히 잘 버텨볼 거다.

그렇지만, 마음이 헛헛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고 의지하던 사람들 없이 회사생활을 어떻게 하지 싶다.

벌써 외롭고 심심하고, 무섭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참 이기적이라는 반성도 했다.

다들 잘 돼서 가는 거고, 본인의 더 나은 next step을 내딛는 건데

고작 내가 회사에서 보고 배울 사람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속상해 한다는게...

퇴사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이 축하나 응원이 아니라는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회사는 학교가 아닌데

아직도 누군가가 뭘 알려주기를, 나보다 앞선 사람이 나를 가르쳐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도 창피했다.

(나가는 세 분 다 나보다 경력이 많고 직급이 높은 분들이다.)



이미 숱한 퇴사를 겪어봐서 남들 나간다고 우르르 나가는 것이 절대 능사가 아님을 알면서,

나는 내 상황에 맞춰서 내 결정을 따르면 된다는 것을 온 몸으로 깨달았으면서,

우습게도 괜히 '탈출은 지능순'인가 하고 되뇌인다.

(실제로 나가는 분들 모두가 회사 내에서 정말 에이스라고 인정받던 분들이었다.

물론 그러니 너무 좋은 기회가 와서 옮기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 남아있으려 하는 내가 뭘 모르는 건가,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근거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는 거다. 남아있는게 바보같을까봐, 그렇게 비춰질까봐 걱정도 되고.


이런걸 보면 아직도 내가 이토록 어리구나 싶어 부끄럽다.


아무튼 이래저래 생각보다 타격이 크다.

나도 퇴사할 때 혹시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였을까?

그랬다면 영광이고 이제와서야 새삼 미안스럽다. 업보를 받는 건가... 하하



덧)

그래도 버틸 거다. 있을 거다. 이번에는 여기에 기필코 오래 남아있을 거다.

지금 여기서 나가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아직 여기서 얻을 것, 배울 것들을 다 체득하지 못했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어디서든 오래 남는 자가 이기는 거다.

내가 뛰쳐나올 때는 몰랐지만, 한 회사에 오래 있다는 것이 결코 바보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꾸준함과 인내의 가치가 실로 대단하다. 그리고 그 세월이 새겨주는 나이테는 매우 값지다.

그리고 대 혼란과 혼돈의 시기에 남은 자가, 함께 있었던 자가, 같이 버틴 자가 그 과실을 따 먹는다.

휩쓸려 나가버리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함께 그 영광은 누리지 못하는 거다.


내가 나온 회사는 다 잘됐다. (내가 나와서 건가 하하-)

뭐든지 사이클이 있는 법이고,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

이제 나는 뭔가 더 이상 산만을 좇아 옮겨다니고 싶지 않다. 사이클을 온몸으로 다 겪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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