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기업이라고 하면 물리적으로 인원 수가 워낙 많으니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겠지 싶지만 아니다. 의외로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각종 제도를 설계할 때 고려하는 다양한 케이스는 일에 빈틈이 없게 기계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일 뿐, 어떤 진심에서 우러나온 다양성/포용은 아닌 것 같다.)
2. 대기업을 나온 지금에서야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들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조직에 의해 주입된, 혹은 자발적으로 조직 분위기에 맞춘 말과 행동들. 그리고 그 기저에 깔린 생각과 신념들. 이렇다 보니 실질적으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마치 한 명의 사람 같다.
3. 이러한 대기업의 균일한 인적 구성(공채 그리고 집합교육으로 다져진)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은, 경력직이 들어오면서부터다. 다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그러니까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지는 돌 같다. 파장을 일으킨다.
4. 모 대기업에 다닐 때였다. 새로 오신 경력직 분을 환영하는 회식이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었던 회식을 하고 다음날 아침, 그분께 어제 회식은 괜찮으셨냐 안부인사차 여쭈었다. 그리고 그분의 대답에 벙쪘다.
5. "아니, 안 괜찮았어. 분명 우리 팀 회식이었고, 다 같이 회식을 했는데, 나는 너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잖아. 너가 뭘 좋아하는지, 요새 관심사는 뭔지,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지 몰라. 너뿐만 아니라 우리 팀 아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해. 우린 계속 이 회사 사람들에 대해서만 얘기했잖아. 옛날에 어떤 임원이 있었고, 누가 이 팀에서 근무를 했다가 주재원으로 나갔고, 얼마나 꼰대였고 일을 잘했고 못했고 이런 얘기만 했잖아."
6. 일과 회사 이외의 얘기를 하는 것은 터부시되던 그 때. 개인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프로페셔널하지 않고 성취지향적이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과 동일시 여겨지던 그 때. 나에게 다른 관점을 선사했던 그 분의 말씀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당시 어렸지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7. 돌이켜 보건대, 다양성 그리고 포용(DEI)이라고 하는 건 결국 상대가 어떤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데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는 노력, 그러니까 '관심'에서 시작되는게 아닐까.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와 이런 점은 비슷하고 이런 점은 다르네! 하면서.
8. 그리고 이와 함께 필요한 것은 '이러한 다양성을 흥미로워 하는 어떤 너그러운 마음'이 아닐까. 저 사람은 왜 저래 하는 눈총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마음 말이다. 어쩌면 내가 결국 한국식 다양성을 얘기하면서 바라는 사회는, 누구 하나 눈총 받지 않는 그런 여유와 수용성이 갖춰진 사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