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와 공동체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

by Dr Jang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텍스트의 성격을 가진다. 의미 있는 텍스트이기에 많은 연구들이 있어 왔다. 그중에 미야지키 하야오의 생태의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연구들은 꽤 많다. 어느 모로 보나 미야자키의 작품은 생태의식을 보여준다.

이런 점을 제외하고 흥미로운 점은 미야자키 작품에서의 국가에 대한 태도다. 그의 작품에서는 국가라는 존재는 불편한 존재로 나타난다. 우선 그의 초기 작품 중 우리나라에서도 방영하여 큰 인기를 끈 <미래소년 코난>에서 이런 경향성은 뚜렷이 나타난다.

<미래소년 코난>은 에코에티카를 위한 생태정치학적 실천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텍스트라고 판단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초기 미야자키의 작품엔 맑시스트로서의 비전이 원시 공산주의 공동체를 향한 꿈으로 이어지는 게 확인된다. 그 과정에서 반전체주의에 대한 미야자키의 확고한 신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미래소년 코난>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가 공동체주의라는 점이다. 인더스트리아와 하이하바로 대표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에서 인더스트리아는 전체주의 혹은 통제된 국가권력, 하이하바는 자발성에 바탕에 둔 공동체라는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미야자키의 생각은 이후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붉은 돼지>의 경우 인간이 되기 싫은 주인공 포로코는 돼지가 되었다. 그는 파시스트가 넘쳐나는 시대에 혼자서 살아가며 파시스트 안의 삶을 무시하거나 조롱한다. 파시스트 시대에 사람들의 삶은 비행기 공장에서 일하는 마을 사람들처럼 별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지만 포로코처럼 소속을 가지지 않는 돼지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온다. 물론 여기서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친척 혹은 마을 사람들이라는 측면에서 도시적인 공동체를 보여주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파시스트는 물러갔지만 사람들의 관계는 남아 있어 공적무리, 피오, 지나, 커티스의 우정은 계속 이어진다. 파시스트보다 힘센 것이 사람들의 관계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관계는 <원령공주>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화에서, 막부정부가 관심이 있는 것은 백성들의 피폐한 삶이 아닌 불로장생의 약이라고 여겨지는 사슴신의 머리였고, 지방 정부라고 할 수 있는 사무라이들은 돈이 되는 제철소에만 관심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에서 버림받은 제철소의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제철소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 와중에 얼핏 보이는 공동체적 삶의 모습은 미래소년 코난에서 보이는 하이하바와 같은 모습이다. 다만 제철소에는 에보시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어 사람들을 이끌어나가지만 그도 공동체적 삶을 존중하는 사람일 뿐이다.

정부가 가져온 명령서와 약속의 문서는 글을 모르는 그들에게는 한낱 종이조각이 불과했고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신으로 여겨지는 산짐승들과도 투쟁을 했다. 그만큼 그들에게 제철소 공동체는 중요한 것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국가란 전쟁의 주체이며 악당을 생산해 내는 존재다. 마법을 이용하여 상대 국가를 이기려 하고 전쟁이란 명분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하울을 추격한다. 물론 하울도 폭력으로 맞서며 그들과 대결하지만 폭력을 쓸수록 하울은 자신의 원래 모습을 잃어간다. 지위가 높은 이들은 수많은 집과 마을이 폭격으로 불타도 궁궐은 화려하며 궁궐 속 사람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거리는, 파시스트 시대를 보듯 전쟁을 마치 스포츠 경기처럼 여기는 환호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미야자키가 아마도 어릴 적 많이 봐서 기억에 또렷하지만 그렇게 기분 좋게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이 여기서도 나타나는 것이다(가만히 보면 파시스트 시대의 거리 행진의 모습은 그의 여러 작품에서 보인다).

생각해 보면 그의 실험작 중 하나인 1995년 작 <온 유어 마크>에서도 국가란 폭력을 동원하여 천사를 납치하여 실험을 하려는 집단이다. 주인공들의 각성으로 천사를 하늘로 날려 보내는 결말을 보여주며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독특한 작품을 만든 그는 권력집단이 가지는 폐해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재미있는 점은 광신도 집단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경찰이 진압하면서 영화가 시작되는데, 광신도 집단도, 국가 권력도, 모두 관심을 두는 것은 날개 달린 천사뿐이다. 그들은 천사의 삶에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야자키의 관심은 거대담론에서 개인의 내부로 옮겨진다. 국가와 권력, 전쟁이라는 거대 담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젊은이의 모습이라면 자신 내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의 모습이다. 미야자키의 작품도 그런 흐름을 보여준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며 사람이 존재하기에 이 세상의 모든 것도 존재한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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