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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Jang May 23. 2024

'걱정'에 대해 생각해 보다.

무엇인가 걱정거리가 있으면 맘에 편하지 않다. 그것이 크던 작던 상관이 없다.

걱정거리가 있어 술 한잔 먹으면 오히려 그 걱정 때문에 더 많이 걱정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된다. 술 때문에 잠시 잊은 수 있지만 술이 깨고 나면 여전히 걱정은 그대로다.


걱정은 스트레스와 동급으로 쓰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걱정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걱정이 없으면 스트레스가 없고 그러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인과관계도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생각들이 걱정거리가 늘 때면 문득 떠오른다.


최근에 책을 잠시 읽었는데 걱정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깨달음을 주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걱정'이라는 것이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관적이라는 말은 쉽게 수긍이 가는데 객관적이라는 말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는 걱정은 대부분 공통된 측면이 있다. 공부를 못하는데 어떡하지?, 돈이 조금밖에 없네?, 아이의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지?, 내일 회의 준비를 못했네. 등등


걱정은 보통 인간관계에서 많이 나타난다. 가령 상사에게 질타를 당할 생각을 하면 내일 출근하기 싫어진다. 걱정거리가 바로 직장 상사와 관계에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운다. 남과 살아가기에 비슷한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마다 걱정은 다르다. 재미있는 것은 누군가의 걱정을 들어보면 전혀 낯선 이야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들어 봤음직한 이야기일 경우가 많다. 주관성과 객관성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하이데거는 삶의 유한성을 이야기했다. 죽음 앞에 선 존재에게 물어보면 삶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긴, 내일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사람들은 일상의 걱정보다는 세상에서 '나'다운 가장 소중한 일을 할 것이다. 그 '나' 다움이 바로 걱정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 한다.



글로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에 꽂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걱정이 사회적이라는 말은 대단히 신선했다.

인간은 원래부터 걱정하는 존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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