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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Jang May 22. 2024

살면서 죽음이 무덤덤해지는 이유

어제 뉴스를 보니 훈련병이 수류탄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가족이 군대에 가 있으니 가슴이 철렁하다가 곧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의 죽음이 덤덤해지고 있다.


20대 일이다.

친한 후배가 갑자기 죽었다고 했다. 

우리 집에도 놀러도 오고 꽤 친하게 지낸 후배다. 불우한 성장 환경이 있었지만 나름 강한 생활력으로 생활을 잘하던 후배였다.

그러다 한동안 못 보다가 만난 적이 있는데 좀 힘들어하여 이유를 물어봤다.

그즈음 해외 파견도 갔다 오고 여자친구도 생겨 기쁜 일만 있어 행복할 줄 알고 있었다.  

자세히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는 나 같은 사람에게 너무 좋은 일만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후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좀 살아보려고 했던 젊은 후배의 죽음은 참 안타까웠다.


세월이 흘러 많은 죽음을 보게 되었다.

가까운 친척과 친지 등등

최근에는 그 빈도가 더욱 늘어났다. 장례식에 입고 갈 옷을 따로 마련할까 싶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같이 ROTC훈련을 받았던 동기의 죽음은 또 다른 파장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슬프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그렇지는 않다. 죽음의 무게가 가볍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죽음도 삶의 일부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듯 인생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무덤덤한 이유가 혹시 내가 죽었을 때도 스스로에게 너무 애달파하지 말라는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삶이 있듯 죽음도 있고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삶의 끝이 있으니 너무 슬퍼하거나 화내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 오른다.

'학생부군신위'라는 영화인데 삶의 희로애락을 잘 보여줘서 무척 기억에 남는 영화다. 

인생이란 대체로 그냥 살아지는 삶인 것 같다. 죽음조차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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