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EBS 광고에 여러 번 조르바의 일부분이 광고되는 것을 들었다. 워낙 유명하다니까 또한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는 나는 무작정 카찬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 봤다. 그런데 다 읽지 못했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여성에 대한 남성적 시각은 좀 불편하기까지 했다. 소설가도 그 시대의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장거리 비행기로 여행을 하다 우연히 영화 리스트에 그리스인 조르바가 있었다. 책을 반쯤 읽어본 후라 요걸 보면서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인 안소니 퀸의 선 굵은 연기도 보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각색된 극본은 원작 소설의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삶이란 무엇인가?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내내 들었다.
작가는 비극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비극의 주인공이 여자라는 점은 아마도 부조리한 그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그렇지 않았을까?라는 위안을 했다.
조용한 그리스 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우리의 상상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인간이 가지는 불완전성과 욕망은 비극을 낳았다. 특히 프랑스 여인이 그랬다. 누구나 보기에도 프랑스 여인은 한물간 늙은이였다. 자신만의 과거를 되뇌며 살아온 여인이다.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 삶의 경험만큼이나 과거를 회상할 일도 많아진다. 심하면 거기에 빠져 산다.
프랑스 여인이 애절한 점은 자신의 그런 허풍을 들어주는 상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죽음에 이른다는 점이다. 홀로 외로이 외딴섬에서 죽어가는 여인은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여 결혼하고자 하는 조르바의 품에서 죽는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죽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까마귀 떼처럼 프랑스 여인의 물건을 빼앗으러 몰려든 늙은 노파들과 마을 사람들은 죽으면 흩어져 버리는 육신을 분해하는 청소부처럼 보였다. 부당하지만 어쩔 수 없는 모습은 그녀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어떠한 사건이 원인이 되어 삶의 큰 변화가 생겼을 때, 만약 그런 변화가 부정적일 때 나는 그 사건을 원망할 수 있을까? 프랑스 여인은 그러지는 않았다.
미망인의 죽음도 비극적이긴 마찬가지다. 사랑을 위해 죽임을 당하는 사람의 마음을 어떨까?
비극은 인간을 춤추게 한다. 모든 것이 끝난 시점에서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던 주인공은 아마도 인간이 인생에 있어할 게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대단하게 변화시킬 것 같지만 사실 살다 보면 나도 그도 인간 삶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