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에 인생을 거는 사람들

영화 100미터

by Dr Jang

넷플릭스에서 최근 영화를 검색하다 발견했다. 100미터. 일본애니는 스포츠물을 잘 그린다. 그런 기대에 하이큐와 같은 학원물이라는 짐작을 하며 영화를 봤다. 일단, 학교가 등장하긴 한다. 근데 작화가 좀 그렇다. 귀엽거나 멋진 모습이 아니다. 사실적인 모습. 뭔가 갈등이 있을까 싶어서 더 시청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던 언더독의 성장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럼? 음... 철저히 주인공 도가시의 내면 이야기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달리기 열풍이다. 러닝에 관련된 용품은 그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이 출시되고 있고 급기야 너무 많은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서울에서는 대회 주최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다. 우리 지역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는 대회 몇 달 전 이미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TV 등 미디어에서는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달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쯤 이 유행이 지나갈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러닝 열풍은 따지고 보면 육상 종목 중 장거리 달리인 마라톤에 한정된다. 올림픽 대회를 보면 알 수 있듯 육상 종목은 무수히 많다. 크게 트랙과 필드 경기로 나눠지는 데 트랙은 달리기 종류, 필드는 던지기, 높이뛰기 같은 종목들이다. 지금 유행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마라톤인 것이다. 그럼, 다른 육상 종목은 어떨까? 잘 모르긴 몰라도 인기가 없을 것이다. 같은 육상 종목인데 철저하게 명암이 엇갈린다.

생각이 이렇게까지 확장된 까닭은 바로 오늘 소개할 영화 '100미터' 때문이다. 영화는 타고난 단거리 선수인 도가시가 초등학생부터 성인이 된 후까지 겪는 달리기에 관한 영화다. 달콤한 멜로도 없고 예쁜 여주인공도 없다. 오로지 잘 달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선수들, 좌절하고 도전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여기에 예쁨을 뺀 작화와 단거리 달리기의 모습을 실제에 가깝게 묘사한 그림체가 맘에 든다. 마라톤도 달리는 주법이 있듯 단거리 달리기도 무작정 빨리 뛰면 되는 운동이 아니라 각 선수에 맞는 세부적인 주법들로 이뤄진 기술적인 종목이기에 그림과 동작 수준에 눈길이 가는 셈이다.

영화는 주인공 도가시와 다른 단거리 선수들이 겪는 도전과 좌절, 재기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왜 달리는 가에 대한 물음을 찾지 못해 공허해하는 고미야, 현실을 무시하기 위해 더 깊게 현실을 직시하는 가이도 등, 짧은 10초에 인생을 건 사람들의 모습 즉, 직업 선수들의 모습이 아주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렇게 보다 보니 예전 아이들과 함께 한 육상 지도 시절이 생각이 나며 단거리 달리기의 매력을 새로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어 내 앞에 앞서가는 저 선수,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저 벽에 대한 주인공의 온갖 생각들을 따라가며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프로 운동 세계의 냉정함에 공감했다. 공부라는 영역은 나름의 쓰임새가 다양한 반면 운동의 세계는 1등 이외에는 쓸모가 없는 그런 모습 속에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노력은 희한하게 단거리 달리기를 한 번 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갑자기 생겨버렸다. 아, 음.... 아들을 꾀어 한 번 뛰어 봤는데 기록이.. 처참했다. 하지만 단거리 종목에 대해 우리 집 아들도 매력을 느꼈는지 동영상을 찾아보고 자세를 잠깐씩 따라 한다. 진솔한 영화의 힘이다.

여기에 일본 사회체육의 힘이 더해진다. 우리는 이제야 사회체육이 활성화되는 느낌이지만 일본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작품이 여럿 나올 만큼 진심이다. 슬램덩크도 그렇고 하이큐도 그렇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입시가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다양한 종목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운동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

장거리 달리기 열풍이 전국을 휩쓰는 지금, 짧은 시간에 고통스럽지 않게, 탄탄하고 균형 잡힌 몸매를 만들 수 있는 100미터에 좀 더 도전해 보고 싶다. 아참, 스파이크도 주문했다. 저렴한 걸로 말이다. 이 참에 유행에서 벗어나 단거리를 즐겨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외로운 사람들이 넘쳐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