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그냥 누군가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연은 필연이라는 상투적인 말처럼 우연의 우연은 운명일 수도 있다. 우리의 경우는 그랬다. 하지만 그런 우연도 결국 선택의 연속선 위에서 정해진다. 그것이 운명인 것 같다.
13년 전 어느 날 아내가 누군가의 장례식에 간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지인인데 사연이 안타깝다고 했다. 삼 남매의 엄마인데 아들 둘과 딸이 하나 있었다. 위에 두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좋은 아이들이라고 했다. 막내딸이 안타까운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선천적 지체부자유가 있어 엄마가 늘 곁에서 관리하며 애를 쓴 아이였다. 그 덕분에 아이가 많이 좋아졌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없어진 것이다.
아내는 며칠 전 잠시 그 엄마를 만난 적이 있었다. 안색이 매우 피곤해 보여 건강 걱정을 하며 일상적인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다 그 엄마가 성당의 행사를 준비하다 쓰러졌다고 한다. Y대 종합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말을 전하며 아내의 입에서 뇌동맥류라는 단어가 나왔다.
뇌에 그런 병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 뇌동맥류는 매우 낯선 병이었다. 건강검진에서 CT나 MRA로 머리를 검사해 보는 것은 무슨 증상(두통도 증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멀쩡한데 검사를 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의료보험에서 MRA를 잘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격 또한 매우 비싼 축에 속했다.
그 시대 뇌동맥류의 발견은 우연히 발견되거나 뇌출혈이 일어난 다음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기에 병의 예방적 차원의 의술은 많이 발전하지 못했다. 그 엄마의 죽음은 후자에 속했다.
원인을 안다고 슬픔이 적어지지는 않는다.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 죽은 사람도 불쌍하지만 남은 딸아이의 장래가 더욱 안타까웠다. 모두들 먼저 간자와 남은 자의 삶과 운명을 슬퍼했다. 그렇지만 지극히 남의 일이었다. 우리의 일상이 깨지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