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에 가까운, 아니 의료사고인 일을 겪으며 더 이상 고만고만한 신경외과 의사들은 믿지 못하게 되었다.
아내는 힘든 조영술을 받고 병실로 올라왔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는 게 아내의 표현이었다.
한 무리의 전공의와 수련의가 들어왔다. 뭔가 밖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지 아주 밝은 표정으로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는 나갔다. 의사답지 못한 태도라고 보기에 너무나 가벼운 처신이었다.
조금 뒤 아내는 등이 축축하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보니 피가 흥건하였다. 침대 시트와 환자복이 젖어 있었다.
다시 한번 살펴보니 정맥주사가 빠져 피가 흘러 나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가 치밀었다.
사나운 표정으로 간호사실에 이야기했다.
조금 있으니 간호사가 와서 사과했다.
한참 후에 가장 나이가 어린 의사 한 명이 와서 사과했다.
진심은 없었다.
이제부터 명의를 찾으리라.
그렇게 결심했다.
의사의 판단하나가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신경외과에서 명의라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 여러 가지 검색을 하다 보니 한국의 명의를 분야별로 모아놓은 신문기사를 발견했다. 신경외과 분야도 있었다. 무엇인가 희망이 보였다. 아무리 멀어도 진료를 받으러 갈 수 있었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코일로 부푼 혈관을 막아 뇌동맥류 파열을 예방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뇌조영술과 마찬가지로 대퇴부 대동맥 천자를 통해 카테터가 들어가 혈관 안쪽에서 동맥류 부위에 코일을 단단하게 말아 넣는 기법이었다. 뇌혈관 내 수술, 또는 중재술이었다.
뭔가 희망이 보였다.
그래, 여기서 해결하지 못하는 거, 명의들은 해결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예약은 쉬웠다.
수도권 병원은 예약이 무척이나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 데 아니었다.
예약을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진료일을 잡을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지하철, 버스를 타고 희망을 가지고 진료를 받으러 갔다.
화려한 이력의 의사 선생님, 뇌혈관 중재술을 개척한 사람이다. 희망이 보였다.
가는 길은 멀었지만 어렵지 않았고 여행하는 기분도 들었다.
.
..
...
....
진료를 보고 돌아 나오는 길은 힘들었다. 도무지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병이 이런가? 원망도 생겼다.
가지고 간 자료를 본 의사는 시술이 어렵다고 했다.
혈관의 두께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우리가 가지고 간 자료에는 그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검사조차도 권하지 않았다.
그게 다였다.
몇 시간이 걸려 희망을 안고 간 사람들에게 약간은 안타까워하는 그의 말은 너무 힘들었다.
환자인 아내는 더 했을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는 서로 다른 개체이기에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지만 달랐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다시 명의 리스트를 들여다봤다.
분명히 희망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