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책략3
한 사람은 똑바로(人), 또 한 사람은 거꾸로(匕) 서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화(化)다.
이는 아이가 태어날 때는 거꾸로 태어나지만, 살아갈 때는 똑바로 서서 굳세게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람이 바로 서있다가 거꾸로 되는 것은 죽음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백과사전)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사람(人)이 칼(匕 비수 비)과 마주한 형상의 글자가 化이다
칼이란 잘 사용하면 문명의 도구일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살육의 무기가 된다.
칼의 성질은 무언가를 자르거나 찌를 때 사용하는 것으로 사물 의원형을 파괴하거나 변형하는데 유용한 것이다. 제단사의 손에 있는 칼은 가공된 원단을 사람의 체형에 맞게 자르는 도구가 된다.
도축업자가 쥔 칼은 가축의 생명을 끊기도 하고 뼈를 발 골 하거나가 축의 육질 부위를 구분하여 잘라내는 도구로 사용한다. 군인의 손에 있으면 적군을 죽이는 백병전의 무기로, 일본 무사들에 겐 할복의 도구로도 사용된다.
칼(匕)은 사물의 원형을 다른 모습으로(변형 또는 죽음) 바꾸는 데 사용하는 만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의미가 함축된 것이라는 해석을 더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변화(變化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어 달라 짐)의 화(化)는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가진 것의 변형 또는 손실의 아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수용한다는 것은 칼(匕)을 받겠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칼에 의해 찔리거나 잘려나가도 이를 감내할 수 있을 때 새로운 변형이 가능해진다. 아프기 때문에, 무섭기 때문에, 두렵기 때문에 칼(匕)을 받을 수 없다면 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
농민 작가 전우익 선생은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 겨’에서 화(化)의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다.
‘느티나무는 가을에 낙엽 진 다음, 해마다 봄이 되면 새 잎을 피울 뿐만 아니라 껍질도 벗습니다.누에를 쳐 보니 다섯 번 잠을 자고 다섯 번 허물을 벗은 다음 고치를 짓습니다. 탈피 탈각이 없이는 생명의 성장과 성취는 불가능합니다. 탈피 탈각을 못하면 주검이겠지요’
가을이 오기 전까지 껍질은 느티나무를 보호하는 두꺼운 갑옷을 연상케 한다. 갑옷은 생명을 지키는 도구다. 포기할 수 없는 방어수단이다. 새로움을 맞이하기 위해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껍질을 스스로 벗는다. 자신의 속살을 거리낌 없이 보여 주면서 새로운 성장을 추구한다.
벗어야 할 때 벗지 못하고,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하면, 결국엔 주검을 맞이한다는 경고가 탈피 탈각(脫皮脫殼)이다. 전우익 선생이 보았던 성장과 성취의 모토는 가진 것을 내어주고 새로움에 적응하라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참으로 묘하다.
스스로 죽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중국의 비단은 동서양을 연결하는 비단길을 열었고, 동양의 후추는 로마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서구 열강의 또 다른 도전을 자극했다. 옷감 중에 하나인 면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자극했고 이는 인간의 미래를 바꾸는 기폭제가 되었다. 결국 오늘의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는 수없이 많은 변화와 창조의 소산물이다. 변화의 키를 손에 쥔 자는 강자가 되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엔 지워지거나 소멸된 것이 인간의 역사다.
개인도 기업도 변화와 혁신을 외친다.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변화를 모색하든가, 가죽이 벗겨지는 아픔을 감수하는 혁신을 시도하든가 선택해야 하는 시대다.
<브런치 / 자기경영 사람 경영 中에서 >
세일즈맨도 마찬가지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더 나은 세일즈맨이 되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화(化. 다시 살기 위한 죽음) 해야 하는가?’
변화의 시작은 내려놓는 것이다.
기득권적 요소를 미련없이 내려놓고 다시 쌓아 나가는 시작이 필요하다.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콘텐츠를 보관해 두었던 하드 디스크가 망가져 버렸다. 백업도 하지 않은 상태다. 아마도 한 두 번은 그런 일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정확히 3번 경험했다. 하늘이 무너 지는 것을 이에 비할 수 있을까?
한번 경험할 때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추가로 두 번을 더 경험했다. 마음이 쓰리고 허전하고 멍해진다.
한 동안 멘붕에 빠진다. 일에 대한 의욕은 상심만 더해가는 어는날 딸아이가 한마디를 거든다.
‘아빠, 그냥 받아들여, 그건 다시 시작하라는 하늘의 뜻이야, 그게 더 현명한 판단 아닐까?’
맞다. 딸아이의 진단이 골 백번 맞다.
새로 시작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새로운 생각으로 재 해석되는 교안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변화는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물론 많이 아프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