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범 Oct 11. 2017

#10. 후회하지 않을 선택

끝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42.195km. 마라톤의 거리다.

먼 거리를 뛰어야 하기에 일반인들에게 완주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순위를 떠나 골인점에 안착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칭찬 듣는다. 그만큼 완주하는 것이 어렵다는 뜀박질이 마라톤이다.


사이클 종주!

추석 연휴 기간 중 5일의 시간을 할애하여 일산에서 부산까지 700km에 가까운 거리를 자전거로 종주한 동료 연구원과 퇴근 중에 나눈 이야기를 할까 한다.

[나] 어때, 종착지에 골인하니까 해냈다는 희열감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연구원] 형님? 막상 종착지에 도착하니까 허망하던데요. 육상처럼 골인 테이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환호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종주했다는 확인 도장은 찍어주더라고요.

[나]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 좋은 경험 값이 한 가지 더 생긴 거네

[연구원] 할 말이 생긴 것 같아요. 중요한 시점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할까, 인생 변곡점, 터닝포인트 같은...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3일 차 이를 악물고 달렸던 180km 레이스가 부산까지 완주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술회했다.

5일간의 레이스 중 3일 차.

하프타임을 지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다. 아직도 2일간의 긴 여정이 남은 시점에서 맞닥트린 180km 목표 거리는 부산까지 완주를 시험하는 최대의 고비처였다고 했다.


어떤 일이든 목표로 가는 길엔 시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너무 힘들다 싶으면 타협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그때 그 위기를 넘어서지 못하면 원했던 결과물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그래서 포기는 쉽지만, 포기하지 않는 선택은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일 게다. 

우여곡절 끝에 완주는 했지만 포기하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국토 종주를 마치고 찾은 곳이 4곳의 병원이었으니 말이다.


인생도 엄연히 종착역은 존재한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인지 모를 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생애 완주를 증명해 줄 사람이 없다. 어떤 인생이 완주한 인생인지 기준도 없다. 그래서 생애 완주란 말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종종 들을 수 있다. 오랜 시간을 살다가 돌아가시면 천수를 다하고 가셨다고 말한다. 하늘이 준 생명의 시간을 다 쓰고 갖다는 표현이다. 어쩌면 생애 완주를 이르는 또 다른 표현은 "천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완주가 성립하려면 약속된 시작점과 끝점이 있어야 한다.

시작점은 알겠는데 아직 끝점은 모른다. 훗날 고도로 발전된 기술이 개인별 생명 시간표를 해독해 내기 전까지는 생애 완주는 천수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대체해야 할듯싶다.  


마라톤도 그렇고 자전거 종주도 그렇고 끝점으로 가는 길목에서 포기하고픈 유혹과 타협하거나,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신체적 위험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극히 자연스러운 돌발 변수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변수가 완주의 발목을 잡을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보니 "만약에~하지만 않았다면 완주할 수 있었는데"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아마도 중도에 포기하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일 게다.


하지만 직업 인생엔 약속된 끝점이 있다.

법정 정년 60세는 급여생활자의 끝점이다. 그래서 정년까지 근무한 경우라면 완주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55세 임금피크제 적용 통보를 받고 보니 이제 완주 도장을 받는 끝점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몇 번의 심각한 고비처가 있었지만 잘 넘겨왔다.  정년이라는 사실상의 끝점이 다가온 때문일까, 또 다른 오만가지 고민들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끝까지 가야 하나, 이쯤에서 프리를 선언하고 새 판을 짜야하나......

생각은 이미 정리되었지만 맘속의 동요는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

......

훗날 후회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9. 생각 골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