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노래에 미친 아이들

중창과 연애했던 고교 1학년 김장원(B2)

by 이종범

장원: 이 반에 종범이가 누구냐?

종범: 난데

장원: 너 노래 잘한다며?

종범: 누가 그래

장원: 수학 선생이 그러더라


참 우습지도 않게 자이언 합창단의 문을 열었던 주역들의 만남은 그렇게 각개전투를 하듯 만들어지고 있었다(종범, 학수, 동준, 용환, 우수, 용대,…)

노래에 미친 빡빡머리 1학(김장원)이 중창을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멤버를 구성했던 것이 40년을 이어가는 합창단의 단초가 될 줄이야……


김장원(자이언 1기)

그는 노래에 미친 친구였다. 부드러운 베이스 음색이 너무나 매력적이고 기타와 그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my way(프랭크 시나트라의 대표 곡)는 심금을 울리고도 남아서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곤 했다.

그는 서울에 있는 교회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중앙고등학교 남성 중창단(목동, Blue sky)으로 활동하는 친구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남성 중창단을 꿈꾸게 된다.


성일 고등학교

성일고등학교 로고

1974년에 개교한 성남의 신생 고등학교다. 그곳에서 장원이는 중창단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각반을 돌아다니며 누가 노래를 잘하는지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남성 4부의 영역(T1. T2. B1. B2)을 책임질 수 있는 친구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일명 맨투맨 오디션이라고 할까? 노래를 좋아한다는 열정 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노래를 잘해도 팀원들의 소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뽑을 수 없다. 그래서 중창팀이 추구하는 색깔에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지난한 작업인데 이점에서 장원이의 안목은 대단했다. Zion 1기 중창단의 소리를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성일고등학교 운동장 전경(現)

Double Quartet(8인조 4 중창)

발품 오디션을 통해 팀을 함께한 8명 중 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우리팀에서 나는 가장 높은 고음을(T1), 장원이는 가장 낮은 저음을(B2)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서로의 소리를 헤치지 않으면서 특별한 조화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우리가 처음 모여 상견례를 했던 장소가 생각난다. 그곳은 성일 고등학교 소각장 옆 야산이었다. 그곳은 우리에겐 매우 특별한 곳이다. 자연을 벗 삼은 야외 연습장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지나온 40년 우리의 얼굴을 책임지는 이름이 탄생한다.


Zion

ZION OB 남성합창단

예루살렘 성지 언덕으로 시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또한 장원이가 지었다. 당시 원들 모두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이름 인지도 모른다. 우린 그렇게 Zion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우리들의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팀이 완성되고 처음 소리를 맞춘 두 곡이 생각난다. 시간이 더해지면서 전통의 명곡으로 자리 잡은 “에덴의 동쪽”과 “하나님의 자녀”가 바로 그 곡이다. 당시엔 반주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구전으로 곡을 배우고 익혔다.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시작한 중창이지만 다행스러웠던 것은 각 파트에서 요구되는 음역 대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곡을 익히는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얼굴은 투박하고 거칠어도 4 성부의 남성 중창은 정말 아름다웠다. 노래를하면 할수록 남성 중창이지닌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연습양도 대단했다.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열망이 넘치다 보니 매일 수업 후 휴식시간 10분도 쉬지 않고 복도 끝 조그마한 공간에 모여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면 쓰레기 소각장 옆 야산, 우리의 아지트로 옮겨서 본격적으로 연습하고 악상을 다듬고 외우기를 수도 없이 반복 또 반복했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기 시작했고 우리 학교는 물론 성남시에 소재한 남녀 고등학교, 심지어는 우리를 알고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까지 입 소문이 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교회에서는 12월이 되면 “문학의 밤”이라는 타이틀로 시와 찬양, 연극 등을 자체적으로 준비하여 중. 고. 청년들을 초청하고 발표하는 행사가 많았던 시절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중창단의 시작은 기독 음악이었기 때문에 문학의 밤 주최 측의 초청 조건에 가장 잘 맞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실력이 뛰어난 팀이라고 입 소문이 났기 때문에 매주 주말이면 많게는 3곳의 교회를 다니며 찬조 출현에 응했다. 서울과 성남을 오가는 주말 강행군이지만 정말 즐겁게 노래했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다고 할까?

찬조를 마치고 나면 많은 여학생들이 꽃다발을 건네려고 교회 앞 입구에서 우릴 기다렸다고 말하면 믿을 수 있을까? 우린 그렇게 노래하는 아이들, 노래에 미친 아이들이 되어 가고있었다.


하루는 평소처럼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중창 연습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3학년 선배들이 시끄럽다고 노래를 부르지 말라면서 자기들이 있는 교실로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 우리 학교는 주먹이 센 깡패 급 선배들이 워낙 많았던 터라 무서웠던 것이 사실이다. 필시 시끄럽게 했다는 이유를 달아 구타하거나 기압을 줄 것이 뻔했다. 당시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묵인되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선배는 하나님의 동창이고 예수님의 일 년 선배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이 돌았을까?러니 흔히 하는 말로 아작 날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 세상일은 모를 일이다. 운때가 맞으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우리 중창 팀에 당시 학도호국단 대대장(윤동준/B1)이 있었는데 그것이 든든한 백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동준이 덕분에 우린 선배들의 강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로 누구에게도 노래로 인한 간섭은 받지 않았다. 일종의 면죄부를 얻었다고 할까? 그날의 경험은 훗날 후배들을 뽑고 그들을 다른 학생들이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특별한 울타리로 자리매김되기 시작했다.


ZION은 그렇게 학교 내에서 점차 명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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