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에덴의 동쪽

Zion과 한남교회

by 이종범

토요일! 참 이상했다.

그날의 연습은 이상하리 만치 화음이 맞지 않았다.

토요일엔 오후 수업이 없는 만큼 평소보다 연습을 많이하는 날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는데 다른 토요일과는 사뭇달랐다. 서로의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것처럼 우리의 화음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튜닝하지 않은 악기로 연주하는 느낌이랄까? 약속된 표현값들이 원하는 만큼의 소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라 집중하자는 약속을 하고 불렀지만 만족할 만한 소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특별히 컨디션이 나쁜 사람이 있는것도 아닌데......

그때 단원 중 누군가가 "한남교회"로 가서 연습하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는 평일날 가끔씩 그곳에서 연습을했기 때문에 쉽게 합의에 이르렀다. 30분만 더 하자는 약속과 함께 한남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평소처럼 걸어가면서 노래를 계속했지만 역시나 신통치 않았다.


한남교회!

성남시 중동에 위치한 교회로 우리 중창팀에겐 추억의 장소 같은곳이다. 교회의 지하에 있는 학생 예배실에서 조용히 기도를 마치고 모두 피아노 앞에 모였다.

연습할 노래의 첫 음을 누른 뒤 4성부의 중창을 한다. 에덴의 동쪽이었다. 야외에서 실내로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의 귀에 전달되는 느낌은 달랐다. 밀폐된 공간인지라 소리의 울림이 있었다. 물론 같은 크기의 소리를 냈지만 우리의 귀에 들려온 소리는 훨씬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화음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두 세곡 정도 번갈아 가면서 불러 보았지만 우리는 만족하고 있지 않음을 느낄수 있었다. 노래를 하다보면 자신의 소리가 동료들의 소리와 잘 섞이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느낄수 있다. 그래서 소리의 브랜딩은 굉장히 예민한 작업중 하나라고 할수 있다. 기분좋게 끝내고 가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약속된 시간은 다 되어가고 그만하자는 쪽으로 분위가 모아지는 순간 예배당 뒤쪽에 교복 입은 여학생 몇 명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않는 모습이 보인다. 일면식은 없지만 한남교회의 학생들인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보기로 했다.

7080 교복세대 / 다음 이미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에덴의 동산은~(중략) 낙원에 맺혔던 꽃송이 피지 않고서 지더니 슬퍼 말아라 마음과 마음속에~(이하 생략)'

- 중창" 에덴의 동쪽" 가사 일부-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하모니가 또 있을까?

조금 전 까지만 애를 먹었던 그 노래가 아니었다. 에덴의 동쪽을 부르는 우리의 눈빛, 호흡, 표정, 화음, 무엇하나 엇 나감이 없었다. 말 그대로 퍼펙트였다. 이후로 30여분가량 더 이어진 연습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날의 특별함을 유발시킨 힘의 원천은 여학생들이었다. 당시의 우리는 이성에 눈을 뜬 고교 2학년이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그들에게 잘보이고 싶은 내적 욕구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것 같다.

한참 이성적으로 예민한 감성이 우리를 춤추게 했던 것이다. 몸도 마음도 파릇한 봄내음에 취한듯 들뜬 기분에서 천상의 노래를 불렀다고 착각할 정도라고 한다면 과한 표현일까? 우리를 바라보는 여학생들의 표정과 눈빛은 노래의 맛과 향을 더하는 일종의 감미료였던 것이다.

개인적으론 이때의 경험을 살려 의도적으로 연습의 질을 끌어올려야 할 필요가 있을때 단원들이 모르게 이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졸업후 재학생 연주회를 지휘할 때)


고교 2년시절의 ZION 은 그랬다. 여학생들은 물론 우리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애를 썼던 그런 학생들 말이다.

우리가 가장 잘 하는 노래를 무기 삼아, 인기를 느끼고 싶었던 고교 2학년의 ZION 1기들은 그렇게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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