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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Jul 09. 2019

#90. 이해하면 살고, 오해하면  죽는다.

이해와 오해 사이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와 같은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섬에서 대륙으로 세력 확장을 꾀하는 일본에 대해, 조선의 안이한 대처와 잘못된 이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초래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또 자신들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 총과 칼이 아니라 반도체를 만드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3가지 소재를 무기 삼아 한국을 찌르고 있다. 한국의 상황을 주도 면밀하게 분석하고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된 곳을 때리면서 100개의 보복 카드 중 하나임을 내 비치며 압박의 강도를 조절하고 있다. 일본은 역시 섬나라스럽다.  


춘추전국시대!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이야기다. 기원전 494년, 부차는 오자서를 대장으로, 백비를 부장 삼아 월나라를 쳤고, 수세에 몰린 구천은 끝내 회계산에서 항복하게 된다.  이때 오나라의 명신 오자서는 구천을 죽이라고 간했지만 간신 백비의 청을 받은 부차는 월 나라를 속국으로 만들며 전쟁을 마무리짓는다. 전쟁에서 패한 구천은 결국 오나라에 끌려가서 부차의 하인 노릇을 하게 되고,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부차를 상대로, 목숨을 보존하며 월 나라로  돌아가기까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던 이야기 중에서 <부차의 오해>와 <구천의 이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전쟁에 패하고 부차의 하인이 된 구천은 오자서에 의해 끊임없는 견제를 당한다. 하지만 오나라엔 범려의 뇌물에 매수된 간신 백비가 있었고, 그를 이용해 오자서를 견제하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차가 병상에 드러눕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 범려는 구천에게 뜻밖의 청을 한다. 뜬금없이 부차의 변을 맛보라는 것이다. 하늘 같은 자신의 주군에게 원수의 변을 맛보라는 말을 한다는 건 제정신으론 불가능할 법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구천과 한 배를 타고 있는 책사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말을 할리가 없지 않은가. 구천은 그 이유를 물었고, 그의 답을 들은 구천은 법려의 뜻을 받아들인다. 범려에게 자세한 행동지침을 듣고 난 구천은 부차의 병상 수발을 들면서 변을 맛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차에게 말하기를 몇 날이 못 가서 병을 털고 일어나게 될 거라는 희망을 전한다. 그런데 정말 몇 날이 지나지 않아 부차가 병을 털고 일어나게 되었고, 부차는 병상 수발 과정에서 구천이 자신의 변까지 맛보며 곁을 지킨 정성을 충(忠)으로 인식한다.


자신의 변도 아니고, 타인의 변을 맛보는 일은 쉽지 않다. 남들이 꺼리는 불결한 일을, 그것도 한 나라의 왕이었던 사람이, 원수의 변을 자발적 의지로 맛본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까지 맛보며 건강을 염려하는 구천의 행동은 부차의 환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오 나라 대부 <오자서>는 달랐다. 구천이 하는 모든 행동을 의심했다. 그는 선왕 합려를 모실 때부터 구천을 위험한 인물로 인식했기 때문에 살려두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것을 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구천을 죽여야 한다는 간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간신 백비로 인해 오자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 부차는 끝내 그의 충언을 외면하게 되고, 결국은 구천이 월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배려하는 치명적 실수를 범하고 만다.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부차와 구천이 보인 행동에서 발견해야 할 것이 있다.

부차는 구천을 잡아둔 상황에서 월 나라를 경계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구천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오자서의 간에도 불구하고 구천을 살려주는 <허영의 극치>를 선 보인다. 반면에 구천은 자신의 야망을 철저히 숨기면서 “와신상담”, 복수의 그날을 위해, 오늘을 견디는 <인내의 극치>를 보여준다. 왕의 신분을 내려놓고, 견딜 수 없는 치욕의 순간에도 복수의 그날을 곱씹으며 지금은 열 번이라도 죽어야 하는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부차는 구천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거꾸로 생각하면 구천은 부차를 완벽하게 속인 셈이다. 구천이 복수의 칼을 갈면서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고 있다는 사실을 오해했다. 결과적으로 구천을 잘못 이해한 부차는 오 나라의 패망을 불러드리고 만다. 반면에 구천은, 자만과 허영으로 가득한 부차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려고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는 오자서의 견제 속에서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도, 부차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두 사람의 운명은 이해의 차이에서 갈렸다. 하인의 신분으로 오나라의 포로 생활을 했지만 부차를 정확히 이해한 구천은 살았고, 힘을 가진 절대 강자임에도 구천을 오해한 부차는 죽었다. 


아베 신조

의 숨겨진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지 않고 벌어진 일에 대한 희생 양 찾기에 급급한 순간, 우리나라는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과거의 역사를 보더라도 외부의 적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내부적으로 위기상황을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나 조직이 늘 존재했다. 국가는 어찌 되든 자신이 추구하는 그것을 위해 국가의 위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초점은, 본질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발생한 문제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책임을 먼저 묻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 처방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대응하고 뒤집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은 책임을 논할 때가 아니다. 괜한 자중지란으로 초점을 흐리거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키워드가 아니라 문제를 더 꼬이게 하는 오해를 만들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의 적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오해가 만들어질 뿐이다. 충신 오자서를 내치고 간신 백비의 의견을 따랐던 부차는 결국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응했던 구천에 의해, 목숨은 물론 나라까지 잃었던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용 참조 :

춘추전국, 이야기에서 배우는 리얼 경영 / 공원국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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