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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Jul 15. 2019

#91. 아베의 격 떨어진 甲질 리더십

감정 자본주의 관점으로 바라본 일본의 '갑질 리더십'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구촌엔 甲과 乙이 존재한다. 

甲과 乙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의 사람이나 사물이 있을 때, 그중 하나의 이름을 대신하여 이르는 말”이지만 “차례나 등급”, “강자와 약자”를 표현할 때에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주도적 역할자가 甲이라면, 보통은 그 결정을 수행하는 자가 乙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甲이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乙이 주도하여 제안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甲의 결정을 乙이 따르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관계라는 관점에서 엮어진 사회 구성원의 삶을 산다.

특히 비즈니스 측면에서 甲과 乙의 구분 점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제는 접점에서의 대립이다. 甲도 乙도 자신의 영역으로 인정하는 범위가 있다. 그 영역에 맞는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다 보면 이해 당사자간 사소한 다툼부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하는 충돌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모양새의 대립이 발생한다. 이때 어느 한쪽은 忍의 글자가 주는 내재적 의미를 반드시 경험하게 된다(忍의 내재적 의미: 마음(心)이 예리한 칼(刀)에 베이면서 피를 흘리거나 상처(丶)가 나는 아픔을 견디는 참음) 즉, 벌어진 상황을 수용하며 참을 것인가? 결과에 상관없이 감정을 표출시켜 대응할 것인가? 등과 같은 내적 갈등이 그것이다


감정 자본주의!

에바 일루즈에 의해 정의된 것으로 “노동자의 육체뿐 아니라 감정까지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는 것”을 말한다. 감정 자본주의는 감정이 경제 행위에 영향을 미치면서 역으로 경제 행위가 감정 생활을 지배하는 문화를 말하는데, 직장에서의 감정은, 취업이나 승진 또는 재산 증식 등의 이익으로 전환될 수 있는 일종의 자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 지능까지 친밀성 증진에 동원되는 중요한 자원이 된 것이다


파트너 또는 상대적 강자가 맘에 들지 않아도, 아니 그가 진상의 범주에 들어가는 대상이라 할지라도 비즈니스 측면으로 엮인 관계라면, 乙과 같은 상대적 약자는 甲을 상대로 속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다. 파트너 또는 상대적 강자의 지시 또는 요구에 대해, 얼굴은 웃지만 마음은 부글거리는 이중 심리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스트레스가 되어 乙을 황폐화시킨다. 그 폐단 중엔 우울증, 공황장애, 수면부족, 대인기피, 심지어는 자살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모습의 상처를 동반한다.


참는다는(忍) 것은 비단 甲과 乙의 등식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甲 대 甲, 乙 대 乙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일과 관련해서 소통은 아니더라도 먹통은 아니기를 바라지만, 도통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 쪽이 많이 참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무관심의 대상이 먹통 파트너라면 예외겠지만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는 대상이라면 허탈감을 넘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상처의 정도와 기간이다.


반도체 소재와 관련해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경제대국 3위의 일본은, 12위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와 관련한 3가지 소재에 대해 수출을 규제하는 위험한 버튼을 눌렀다. 규제 조치를 받은 3종의 소재는 일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70~90%에 이르다 보니 한국으로서는 규제 소재에 대한 맞대응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로 인해 국민감정은 상처를 입었고 급기야는 민(民)이 주도하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경제를 떠 받치고 있는 핵심 소재다. 반도체가 무너지면 한국 경제가 위태로워지는 만큼 정부는 이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상정하고 재계 총수들과 회동하며 대응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작금의 상황이 길어지면 양국 간 피해의 정도가 커지는 것은 물론,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질 것이다.


현 상황만 놓고 보면 반도체 강국인 한국이, 규제 품목 3종 때문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일본의 규제가 철회되지 않으면 이로 인해 기업이 받는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의 도발로 인한 한국민의 감정은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 상황에서 주목할 것은 견뎌야 하는 기간, patient period다. 즉 일본의 아베 행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도발로 인해 겪게 되는 국가적 피해와 국민적 상처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참음인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참음인지에 따라 대응 방식은 달라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이번 분쟁을 계기로 탈 일본을 서두를 것이 분명하다.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영원한 甲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누구에겐 乙이지만, 또 누구에는 甲이다. 즉 사안에 따라 甲과 乙은 항상 바뀐다. 때문에 甲이면서 乙이고, 乙이면서 甲인 셈이다. 이와 같은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함부로 乙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칼을 휘두르거나, 乙의 약점을 이용하여 굴복시키는 甲의 행위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엔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 이유 없는 甲 질도 없다.

아니 궤변을 늘어놓는 한이 있어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명분을 만드는 것이 甲 질이다. 결론적으론 상대가 甲 질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없애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응이다. 이미 벌어진 상황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냉정한 피드백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추후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를 이끄는 책임자의 몫이다. 또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은 제제 조치를 받은 3종의 예처럼 해당 기업의 제품을 만들면서, 코 앞의 기업 이윤만 생각할 게 아니라 조금 더 멀리 보고, 특정 국가에 편중하여 부품을 조달받는 일이 없도록 다변화시킬 책임이 있다.


이번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양국의 리더는 리더십을 시험받을 것이다.

그리고 편향된 시국관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초래하는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분쟁을 해결하는데 행정부는 물론이고 국민을 대표하는 여, 야간 합심의 리더십이 발휘되길 기대한다. 끝으로 어려울수록 국민적 협업이 남다른 한국민의 위대한 위기 돌파력을 통해, 자국의 정치 사안을 위해 의도적으로 국제적 통상문제를 야기시킨 '甲질 리더십'이 어떤 폐단을 낳는지 알려주는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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