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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Jul 31. 2019

#95. 흐름의 한국, 깊이의 일본

리더의 입술

“수위가 높을 때, 즉 호황기에는 온갖 비효율과 무능이 가려지지만 썰물의 위기가 닥치면 민낯은 고사하고 알몸까지 사정없이 드러난다. 대충 덮어왔던 온갖 문제점이 봇물 터지듯 터진다.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위험과 기회가 갈린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기도 하지만, 산사태가 나 무너지기도 쉽다. 굳은 땅을 만드느냐, 산사태가 나게 하느냐, 위기에 넘어지느냐, 위기를 넘어뜨리느냐, 리더의 대처에서 결정 난다.”
-리더를 위한 한자 인문학 / 김성회 지음-


한, 일간 무역 마찰은 많은 생각을 자극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오늘 대한민국은 가난에 허덕였던 그 옛날 그 나라가 아니다.

기적 같은 고도성장을 통해 국가별 명목 GDP 세계 11위에  올라선 무역 강국이다. 하지만 성장의 이면을 드려다 보면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분야들이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기초과학 기술이다. 이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막대한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 것으로, 집을 지을 때 기초를 잡는 작업과도 같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건물의 안전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되지만 이를 간과한 여파가 오늘날 일본이 저지른 무역 보복의 빌미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깊이”에 치중하는 일본은 분야별 장인이 많다. 그들은 고집스러울 만큼 기록에 충실하다.  세밀한 노하우가 축적되어야 가능한 기초 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 기인한다.


한국은 “흐름”에 강하다. 이미 만들어진 기술을 재 가공하여 시대가 요구하는 상품 제조능력이 탁월하. 한, 일간 무역 분쟁의 단초가 된 반도체 소재 분야도 마찬가지다. 반도체는 일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본은 반도체 완성품 시장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반면에 기초 소재 부문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본은 이 부분을 무기 삼아 무역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과거의 일본은 전자제품 기술력도 난공불락이라 할 만큼 월등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또한 한국이 한참 앞지르고 있다. 조선 분야일본이 세계 1위였다. 지금은 과거의 기억으로 확인될 뿐 고부가가치 선박들 대부분은 한국산이 세계 최고의 자리를 석권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일본은 선두 권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언제나 그 뒤에 있었다. 아니 한참 뒤에 있어서 보이지도 않았다.


문화적 측면도 과거엔 J-POP이 유명했지만 지금은 K-POP이 세계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한류로 통칭되는 문화 콘텐츠도 이젠 일본이 한국을 부러워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내려보며 깔보았던 한국을, 올려보며 부러워해야 하는 현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부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1인당 GDP도 큰 차이가 없다. 2018년 기준, 일본은 3만 9306달러, 한국은 3만 3434달러다. 과거 같으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차이를 보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대로 간다면 2021~2022년 역전도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과거와 다른 기술 국가로 변해있다. 기술 대국 일본이 앞서가는 한국을 쳐다보며 약 오르고 배가 아파 질투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치고 나가는 속도가 빨라서 따라갈 엄두도 못 낼 만큼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베는 이쯤에서 싹을 자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아베의 시커먼 속이 보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시작된 에도 막부 시대가 무너지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메이지 유신을 여는 과정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요시다 쇼인”의 사상이 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 일본을 설계한 장본인이다. 그는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을 통해 일본을 제국주의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시타케 등 조선 침공의 주역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랐다. 그런 시다 쇼인을 일본 수상 아베 신조가 흠모하고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는 것은 아베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

아베가 던진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그의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말들은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을 주창한 요시다 쇼인과 다를 바가 없다.


일본은 침략자다. 그것은 역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위기에선 비굴할 만큼 고개를 숙이지만, 기회다 싶으면 칼 집에서 칼을 뽑아 들고 잔인하게 살상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열강들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희생양이 되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매김하려면, 중국, 러시아, 미국, 그리고 일본을 이끄는 수장들의 입에서 어떤 말이 흘러나오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말 이면에 어떤 속셈이 자리 잡고 있는지 간파해야 한다. 그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 칼을 뽑기 위한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자료:픽사 베이 (좌로부터 시진핑, 푸틴, 트럼프, 아베)

“썰물이 빠져나가면 누가 알몸으로 수영하고 있는지 드러난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한 말이다. 한국을 이끄는 정, 재계 리더들은 이제라도 잊지 않고 챙겨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앞서 거론한 것처럼 한국의 강점으로 치부된 “흐름의 가치 창출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썰물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기초 산업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깊이의 가치”가 구현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 옛날 우리의 발등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대한 일본의 이미지를 다시금 확인시키는 그날을 앞 당기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힘을 자랑하는 중, 러, 미, 일 어떤 나라도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아니라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들은 지구촌 포식자의 대열에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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