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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Sep 02. 2019

#96. 트럼프의 입술은 몇 개일까?

이상한 행동의 배후에는, 예상치 못한 비밀이 있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을 친구로, 일본의 아베 수상은 신사라고 추켜 세웠다.

미, 중 무역분쟁이 한창인 지금 시진핑에 대해 한때는 ‘위대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우더니 지금은 난데없이 ‘적’이라고 말한다. 김정은에 대해서도 로켓맨, 꼬마 로켓맨, 병든 강아지라고 조롱하더니, 1차 남북정상회담 후에는 '김정은',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막판 줄다리기 과정에서는 '위원장'을 뜻하는 공식 직함이 등장한다. 미사일을 빵빵 쏴 대는 지금은 ‘내 친구 김정은’이다. 도대체 트럼프의 입술은 몇 개인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남북한 지도자 모두 트럼프에겐 친구인 셈이다.


親(친할 친 / 어버이 친) = 立(설 립) + 木(나무 목) + 見(볼 견)

親이라는 글자는 대체적으로 “가까운”, “사랑하는”, “ 좋아하는”과 같은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부친, 모친, 절친, 친밀, 친근, 친절, 친애, 친밀…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親을 이렇게 해석했다. “부모란 떠나가는 자식의 등 뒤를 바라보다가 보이지 않으면 동산 위에 올라가서 보고, 그래도 보이지 않으면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立) 바라보는(見) 존재다”


부모만큼은 아니지만 정말 가까운 사이 중엔 친구만 한 사람도 없다.


“친구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 아리스토 텔레스 –


"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좋게 말하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다." – 토마스 풀러 -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 네이버 사전 -


친구란 표현은 동. 서양 모두 매우 가까운 사이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누구에게나 가벼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은 물론이고, 서로 아끼는 마음이 커서 멀리 있어도 응원하고 지지하는 관계가 친구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말하는 친구는 본질적 의미에 부합되지 않는다.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면 친구이고 반하면 적이라는 독선적 표현을 듣다 보면, 국가 간 친구관계는 오로지 트럼프가 결정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혹자는 그것이 강자만이 할 수 있는 횡포라고 말한다. 그래도 그렇지 트럼프의 주변에는 같은 생각을 하는 참모들만 존재한다는 말인가? 친구란 표현이 스카치테이프를 떼고 붙이는 것처럼 쉽고, 가벼운 관계인지 묻고 싶어 진다.

필자도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모를 만큼 어리석진 않다. 하지만 조석으로 바뀌는 트럼프의 친구 인식은 어떤 지도자에게서도 도통 느껴 본 적이 없다. 표현의 진폭이 너무 크다.

“이상한 행동의 배후에는 반드시 예상치 못한 비밀이 있다”는 말처럼 그의 립서비스 뒤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특별히 주문할 것을 다듬는 계산기 소리만 들린다.

중국의 대미 흑자를 줄이기 위해 무역전쟁도 불사하며 까불지 말라는 강공책을 구사하는 것도 그렇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생각에 한국과 일본의 속내도 파악해야 하고, 트럼프의 재선을 위해서는 북한 핵에 대한 가시적 성과가 필요한데, 그러자니 북한의 고약스러운 미사일 발사에 대해 속이 끓어도 참아야 하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어디 그뿐인가, 일본은 G7 회의에서 대놓고 미사일을 쏴대는 북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만, 회피로 일관하는 트럼프의 행동도 이상하다. 한국의 동해 영토 방어 훈련에 대해 난데없이 태클을 거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고, 한, 일간 반도체 소재 분쟁이 군사적 문제로 번져도 큰 형님을 자처하는 미국이 수수방관하듯 개입하지 않는 것을 보면, 신뢰라는 단어는 입술 끝에만 붙여 놓고, 그의 머리와 손 끝은 계산기의 (+) 숫자만 누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해방정국 격동기에 유행했던 노랫말이 생각난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라. 일본(놈) 일어선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좀 더 높은 곳(木, 위성) 위에 올라서서(立) 상대국을 엿보아(見) 캐낸 정보를 바탕으로, 약소국을 윽박지르는 행보를 보노라면, 親에 대한 강자들의 인식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親의 의미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한반도 주변에서 믿을 국가(놈)가 없다는 어른들의 노랫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스로의 힘을 키울 수밖에 없다.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든든한 나라, 진짜 친구가 되고 싶은 한국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힘으로, 돈으로 친구를 사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주변의 강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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