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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Feb 18. 2020

#101. 누가 더 지혜로운 사람일까?

지혜로운 사람 VS 영리한 사람

매월 말이면 워크숍을 갖는다.

2020년 첫 번째 워크숍 2일 차에 있었던 일이다. 올해 오십이 되는 후배 연구원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효과적인 제안기법”인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평소 보아왔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고민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지고 도무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는 하소연이다. 도움을 청하는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필자] 혹시 교육생들에게 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후배] 그럼요. 제가 개발자로 참여하는데 당연히 답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필자] 왜, 교육생들이 효과적인 제안을 하지 못할까 봐?

[후배] “……”

[필자] 거꾸로 생각해 보자. 그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유도하면 어떨까?

[후배] 네~, 어떻게요?

[필자] 그들은 영업 현장에서 잔 뼈가 굵은 사람들이야. 영업 실무는 우리보다 몇 수 위에 있다고 봐야 해. 그렇다면 그들의 경험 속에 답이 존재하지 않을까? 개발자로서 답을 주는 것도 좋지만 이번엔 그들의 영업 실무 속에 녹아 있는 답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후배] 무슨 말 인지 이해는 되는데, 그게 될까요?

[필자] 우린 주입식 교육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그들의 능력을 믿어봐. 물론 자네가 개발 담당이니까 자기 생각이 없어서는 안 되겠지.   

[후배] 형님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필자] 이런 방법으로 접근해봐~~~~~~~


우린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갔고, 후배의 얼굴은 조금씩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서는 후배가 한 마디 건넨다


[후배] 역시 경험은 무시할 수가 없네요. 고마워요 형님?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동료 연구원들이 인정하는 똑똑한 친구다. 워크숍을 하다 보면 그 누구보다 좋은 촉을 발휘한다. 생각지도 못한 답을 제시해서 주변을 놀라게 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즐기는 눈치다. 하지만 항상 입이 문제다. 상대를 오해하게 만드는 말투 때문이다.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형님, 95%는 똑같아도, 5%만 다르게 표현하면 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병신들 그걸 몰라요?”


아니나 다를까, 이번 워크숍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났다. 쉬는 시간, 그가 다른 팀원과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들으려고 들은 것은 아니다. 옆 자리 소파에서 쉬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그는 동료 연구원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A 연구원] 개발 잘 되냐?

[B 연구원] 응, 그런대로

[A 연구원] 그렇게 하면 답 안 나온다

[B 연구원] 뭐가?

[A 연구원] 너희 개발 프로젝트

[B 연구원] 무슨, 넌 우리 팀이 어떻게 할 건지 모르잖아?

[A 연구원] 왜 몰라, 화이트보드에 적힌 대로 하는 거잖아?

[B 연구원] 맞긴 한데, 그걸로 알았다고?

[A 연구원] 장사 한두 번 해 보냐, 척하면 착이지, 헛수고야


A연구원의 말속엔 개발이 잘 못 되었다고 질책하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 간 약간의 논쟁이 벌어진다. 끼어들 상황이 아니라 못 듣는 척했지만, 휴식 시간이 끝나면서 그 둘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팀으로 돌아갔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쉼이 필요할 때 꺼내 보는 책이 있다. 《후 웨이홍》이 지은 『노자처럼 이끌고 공자처럼 행하라』가 그 책인데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지혜는 안으로 응축되어 발휘되고, 영리함은 밖으로 드러나 퍼진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똑똑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진정한 의미의 대업을 이룬다. 이에 반해 영리한 사람은 그가 영리하다는 것을 모두 알기에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종종 기대만큼 큰 실망을 하게 만든다”


어떤 후배는 타인의 머리를 빌리려 하고, 또 어떤 후배는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듯 자랑하려 한다.

누가 더 지혜로운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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