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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May 15. 2020

꽃 도둑

하늘매발톱을 도둑맞다

속상한 일이 발생했다.

요즘 화단의 꽃 들이 싹을 틔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시간이 즐거웠는데, 찬 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3년간 애지 중지 키웠던 하늘매발톱 중 두 뿌리를 도둑맞았다. 두자 정도의 크기로 자란 매발톱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흐뭇하게 할 만큼 동네 할머니들이 입에 침이 마를 만큼 예뻐하던 꽃이다. 그런데 밤손님이 다녀간 것이다. 작년 봄에도 그랬다. 헌인릉 화훼단지에서 금낭화와 매발톱을 각각 5개씩 사서 집 밖 화단에 심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모조리 훔쳐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바깥쪽 화단에는 철쭉, 베고니아, 작약, 그리고 라일락과 분꽃 등이 심겨 있는데, 유독 금낭화와 매발톱만 콕 집어서 파간 것이다. 얼마나 속상하던지, 세상에 도둑이 많은 건 알지만 꽃 도둑이 있을 줄은 몰랐다. 속상한 마음을 뒤로한 채 매발톱 5개를 다시 사서 심었다. 이번엔 바깥 화단이 아니라 우리 집 테라스에 붙어 있는 소공원 화단에 심었다. 소공원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서 우리 집 현관을 통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 안심하고 심었다. 그렇게 또 일 년이 지났는데 다른 매발톱은 남겨두고 3년 전에 심었던 매발톱 중 두 뿌리를 캐간 것이다. 그것도 들킬까 봐 허겁지겁 뽑았는지 매발톱 중 절반이 꺾인 채 놓여있었고, 두 뿌리만 간신히 뽑아간 느낌이다. 아마도 뿌리가 깊어서 잘 뽑히지 않았던 것 같다. 퇴근 후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와 미치겠네, 또 훔쳐갔네”


이번엔 가택까지 칩입한 도둑질을 한 것이다. 집 밖에 만든 화단은 길거리라 가택 칩입은 아니지만 이번은 다르다. 현관을 열고 들어와서 훔친 것으로 명백한 범죄다. 한 번도 아니고... 아들과 딸은 주차된 차들의 블랙박스를 보자고 난리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러고 싶은 맘이 없진 않지만 내심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얼마나 예쁘면 그랬을까, 오천 원 이면 살 수 있는 건데 그 돈 아끼려고 그랬겠지 싶어 넘어가기로 했지만 마음이 편하진 않다. 다시 또 훔쳐가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현관에 자물쇠를 걸었다. 그동안 잠그지 않고 사용했는데,,,, 아쉽지만 꽃 도둑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장벽을 쳐야 하는 게 가슴 아프다.


얼마나 아팠을까, 부랴부랴 뿌리 들린 매발톱에 흙을 덮고 돋아 주었다. 꽃이 핀 채 꺾인 매발톱은 10개가 넘었다. 화병에 꺾인 매발톱을 담아 창가로 옮겼다. 내 입에선 ×× 소리가 떠 나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쏟은 정성이 얼만데… 그렇게 뽑아가고 싶으면 다른 건 다치지 않게 조심이라도 하지,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몹쓸 사람이다. 동네 사람들과 다 같이 보자고 가꾸는 화단인데, 자기 욕심 차리겠다고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훔쳐간 매발톱은 잘 끼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워도 모자랄 판에 훔친 꽃에 대한 애정이 이어질까, 꽃이 떨어지고 꽃줄기에 수분이 빠지고 나면 초라해질 텐데... 설마 죽었다고 생각해서 리를 뽑아버리지 않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그래야 내년 봄에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이 핀다는 것을 확인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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