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관문엔 개인의 인적 자산을 측정하는 퇴직 저울이 있다. 누구나 저울에 올라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재취업을 희망하는 퇴직자라면 절대 피하기 어려운 저울이다. 문제는 퇴직자의 인적 자산의 가치다.
높은 가치가 측정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문제는 자신이 보유한 인적 자산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퇴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상국 시인이 지은 <詩 파는 사람>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젊어서는 몸을 팔았으나, 나도 쓸데없이 나이를 먹은 데다, 근력 또한 보잘것없었으므로, 요즘은 시를 내다 판다” <이하 생략>
돈으로 통하는 세상에서 돈 없이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돈은 자신의 땀과 수고로 만든 인적 자산을 시장에내어주고받는 일종의 반대급부다. 직업의 관점으로 보면 16,000가지가 넘는 업종 중 어딘가에서 자신을 팔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유통 기간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장에서 인정되는 기한은 유한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 내다 팔 수 있는 인적 자산도 효능을 다하는 그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직장인의 관점에서 돈으로 환산된 가치가 가장 높은 시기는 임금 피크 전이다. 그리고 해마다 연봉이 줄기 시작해서 만 60세가 되면, 그동안 인정받던 인적 자산은 0원이 되고 만다. 이때부터는 퇴직 시장에 비치된 저울을 통해 매번 자산의 가치를 새롭게 측정하는 일이 반복된다. 물론 퇴직 후 계속해서 일 한다는 가정에서 하는 말이다.
이상국 시인은, 젊은 땐 몸을 팔았지만 나이 든 후에는 詩를 내다 판 돈으로 ‘자동차 기름도 사고, 아이들 용돈을 준다고 말한다. 배우자는 공공근로에 참여해서 돈 버는 게 낫다고 하지만, 사람이란 저마다 품격이 있다면서 시 파는 것을 고집한다. 아직은 시 짖는 능력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것이다.
해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퇴직 시장으로 쏟아진다. 그중 일부는 자신의 인적 자산을 아주 높은 가격으로 판매해서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퇴직자는 그렇지 못하다. 흔한 것은 아니어도 한 푼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고 ‘끝난 사람’ 취급받는 퇴직자도 존재한다. 쓸모가 인정되지 못하면 퇴직 시장에서 분리수거를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쓸모가 인정되기 까지,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지 모르지만 그 기간 동안 싫든 좋든 ‘백수’로 살아야 한다. 이는 비단 60세 정년 퇴직자 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50대는 언제든 회사를 그만두어도 이상하지 않는 나이다.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함께 직장인 5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을 보면 ‘직장인이 체감하는 정년퇴직 연령은 ‘평균 51.7세’다. 생애 구간 중 가장 많은 인생 이벤트가 발생하는 50대의 퇴직은 결코 가볍게 치부될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자신의 인적 자산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그게 아니라면 가계 경제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3중 과세 폭탄(자녀 교육비용, 부모봉양 비용, 부부 노후준비)까지 터지면 인생 후반은 엉망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세대 불문하고 그다음을 위한 플랜 b는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