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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n May 15. 2024

동성친구가 나에게 고백했다.

치마가 싫었던 아이


엄마는 머리가 길기 전 날 데리고 나가면 항상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애기가 장군감이네, 너무 잘생겼어.

그럼 엄마는 집에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엄마 눈에는 너무 예쁜 딸인데, 사람들은 자꾸 떡두꺼비같은 아들, 장군감이라고 하니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치마를 싫어했다.

4살, 5살. 한창 여자 아이들이 분홍색 노랑색 형형색색의 예쁜 치마를 입고 다니는 걸 좋아하던 시절도.

아주 어릴 적 동생이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나는 한창 색깔을 배워가고 있었는지 동생의 태명을 나보고 정하라고 할 때도 "파랑이"라고 지었다. 그게 정말 태명이 되어 엄마 배를 만지고 귀를 대며 파랑아- 하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어릴 적에는 포켓몬스터와 디지몬 어드벤처가 한창 유행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분홍색의 예쁜 주인공(미나, 이슬이..)과 그의 포켓몬 혹은 디지몬을 좋아했지만 나는 제일 대장이었던 캐릭터(지우, 태일이..)를 좋아했다.

예쁘고 귀여운 거보다, 멋진게 좋았던 거 같다.


분홍색 샌달에 머리를 예쁘게 묶고 다니던 아이들과는 다르게 까만색 아구몬이 있는 샌달에 머리는 불편하지 않게 하나로 넘겨 묶었다. 삔도, 머리띠도, 목걸이도 다 싫었다. 거치적 거리고 불편했다.


그렇게 나는 어린이 시절을 넘겼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 고비가 내게 찾아왔다.

교복.

지금이야 학생들이 여자든 남자든 편한 바지를 입거나, 치마를 입거나 니트 조끼를 대부분 입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많은 것들이 성별에 맞춰 정형화되어 있었다. 내 나이 또래 친구들과 그 위 세대의 여자들은 당연하겠지만 기억 나는 것들이 있다.


귀 밑 3센치
무릎을 덮는 치마와 속바지
셔츠 안엔 흰 나시
단추를 끝까지 채운 후 넥타이
골반위에 입는  조끼
부직포 같은 마이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단발로 머리를 난생 처음으로 잘랐다. 귀 밑 3센치로.

당시 유행하던 연예인이 광고하는 스쿨룩스에 가서 교복을 맞췄다. 라인이 들어가 허리 라인을 강조하는 셔츠, 숨 쉬기 불편한 조끼, 만세를 하기도 힘든 마이. 그리고 내가 너무 싫어하는 치마.(거의 정강이까지 오는 월남 치마)


그 해에 쥬얼리의 One More Time과 MC몽의 서커스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덩달아 '바가지 머리'가 유행했다. 유행에 뒤처질 수 없었던 나는 서인영의 버섯 머리를 했다. 하지만 썩 맘에 들지 않았고, 엄마와 함께가던 미용실에 혼자가서 점차 귀쪽을 파서 머리를 잘랐다. 결국 내 머리는 MC몽의 버섯머리가 되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학생 인권조례라는 것이 생겼다.  과도기가 되면서 여학생도 바지 교복을 입을 수 있게되었고, 나는 바로 엄마를 졸라 바지 교복을 입었다. 셔츠도 라인이 없는 남학생 셔츠를 입었고, 교복 마이도 큰 걸로 새로 구매했다.


당시 학생 주임이 있었는데, 군인 장교 출신의 엄청나게 무서운 체육 선생님이였다. 교무실 청소를 하고 있던 나를 부르더니,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 나는 군인 때 치마 제복을 입고 너무나 멋있게 살았다. 치마도 멋있을 수 있다. 라는 내용의 설교를 40분은 들었던 거 같다. 말대꾸를 하고 싶었지만, 내가 들었던 빗자루로 맞을까 무서워 잠자코 들었다.


어느 날은 외갓집에서 술에 얼큰하게 취한 이모 한명이 나에게 와서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멋진거다~로 시작하는 술에 취한 잔소리를 1시간 반도 더 들었다.


그래도 난 바지가 좋았다. 치마를 입고 멋진 거 말고, 바지를 입고 멋지고 싶었다.




중학생이 되니 2차 성징이 시작되었다. 가슴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옷 태가 안났다. 라인이 들어간 반팔은 허리가 걸리적 거려서 싫었고 배가 보일까 싫었다. 브래지어도 명치를 조이고 불편하기도 하고, 흰 티를 입으면 비추는 게 싫었다. 펑퍼짐한 옷을 입어도 가슴 라인이 비출 수 밖에 없었다.

한창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윤은혜가 고은찬이 되어 남장 여자로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약국에서 붕대를 샀다. 한참을 그렇게 나는 가슴을 붕대로 압박하고 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슴은 크게 자라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12월 4일 오후 5시 무렵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나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와 싸워서 공부할 거를 들고 집을 나왔는데,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다고.

우리집으로 오라고 한 후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친구를 데려와 내 방에 상을 펴고 한창 공부를 하는데 친구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너는 여자가 여자랑 만나거나, 남자가 남자랑 만나는 걸 어떻게 생각해?"


단 한번도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자는 남자랑, 남자는 여자랑 만나는 거라고 배운 건 아니었지만 나의 부모님도 그랬고, 주위 커플도 다 그랬다.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만나면 만나는 거지, 뭘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친구가 내게 말했다.

.

.

.

.

.

나, 너 좋아해. 친구로써 말고, 진심으로. 너랑 사귀고 싶어.




정확히, 2008년 12월 4일 오후 6시 무렵

중학교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과목인 음악책을 편 채,

내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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