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대방의 본심을 이해하면 너그러워진다.
어느 소심한 사람이 길 잃은 사람을 보고는 "이, 이리로 오면 안 되는데... 저리로 가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소심한 사람은 다쓴 치약만큼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외향성을 다 짜내서 말하고는, 가던 길을 갔다.
그리고는 그 소심한 사람이 내게로 와 이렇게 말한다.
"나, 나.... 오늘 용기내서 어떤 사람한테 길 알려줬어."
뭔 말을 하겠는가?
"정말로? 너무 잘했다."
칭찬밖엔 없다.
그 용기를 받은 소심한 사람은, 다음 번엔 길 잃은 사람에게 "이, 이리로 오면 안돼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왜냐고? 그 사람이 칭찬을 듣고 용기를 얻었거든.
그렇다면. 원래는 안 그랬던 사람이 변하려는 것과, 이 사람이 그런 척하려는 사람인 걸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둘 다 어색하기 짝이 없고, 둘 다 서투르기 짝이 없는데. 아니, 오히려 그런 척 하려는 사람은 진심이 없어서 그냥 막 할 수 있다.
돌한테 사랑해 해봐라. 나무한테도 해보고. 자, 똑같은 사랑해를 짝사랑하거나 고백하려는 사람한테 돌한테 하듯 쉽게할 수 있을까?
진심은 늘 어렵다. 특히 진심을 보이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한국에선.
그러니, 둘을 구별할 수 없다.
그렇다면, 변하려는 사람의 의도를 곡해해서 '그런 척하는 걸거야.'라고 말한다면?
애초에 둘을 구별할 수 없는데.
그리고, 그런 척 하려는 인간이, 점점 그런 사람으로 변한다면? 평생 그런 척 하는 사람으로 연기하며 살아간다면? 그럼 진짜가 되잖아.
그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상대를 곡해해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그 말을 떠올리자.
"마리아나 해구 근처도 못들어간 놈이, 그보다 더 깊은 사람 마음은 어찌 알거야? 늘 속으로 파묻는 사람들은 그 깊이가 마리아나 해구보다 깊어졌는데."
왜 갑자기 이런 글을 썼느냐면.
그냥, 내가 상대방을 곡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멋대로 판단하고, 내 식대로 단정짓고, 내 마음대로 재단하고.
그러다 보니 다가오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다가오는 사람을 일부러 밀어내기도 했더라.
그냥, 의중을 파악하려하지말고, 보이는 그대로를 믿자.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