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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lumnlist Oct 04. 2023

[르세라핌] I'm A Mess

르세라핌 정규 1집 리뷰

2023년 5월, 르세라핌의 정규 앨범이 발매되었다. 이번 앨범엔 밴드 chic의 기타리스트인 나일 로저스가 참여했다. 나일 로저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르세라핌의 노래를 듣자마자 사랑에 빠져 곡 참여를 결심했다” 이어 “최근 들어본 K-팝의 매력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K-팝이 화성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변화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음악 분야에서 일어난 어떤 일보다 흥미롭다”라고 말했다.

 나일 로저스를 사랑에 빠지게 한 르세라핌, 이번 앨범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PS. 1번 트랙부터 6번 트랙까지는 EP에 수록되었던 곡들이다. 새로운 곡은 7번 트랙에서부터 시작된다.}

7. Burn the bridge

이제는 르세라핌의 스타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전체적인 앨범 콘셉트와 메시지를 첫 번째 트랙에 담는다. 7번 트랙인 [Burn the bridge]는 독백으로 시작된다. 전에는 음악이 먼저 시작됐다면 이제는 내레이션이 먼저 시작된다. 좀 더 드라마틱한 연출이다. 드럼앤베이스 리듬 위에 얹어진 Rock 세션은 청자를 더욱 고무되게 만든다. 검은 런웨이 같았던 [The world is My oyster]와는 달리, 수만 명이 모인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가사 역시 달라졌다. 나를 주어로 쓰던 전의 곡들과는 달리 이제는 ‘함께’라고 말한다.

‘우리, 저 너머로 같이 가자.’
‘Let’s go beyond together.’
‘너에게 불꽃을 전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태워 빛이 될 거야.’
‘we are unforgiven.’
내레이션 가사들은 김채원의 인터뷰, 허윤진의 글, 멤버들이 위버스(HYBE의 플랫폼 자회사 WEVERSE COMPANY에서 개발한 팬 커뮤니티 플랫폼)에 남긴 글이나 제작팀과 인터뷰에서 했던 대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멋진 말들을 남긴 멤버들도, 또 그 멋진 말들로 가사를 만든 프로듀서들도 ‘함께’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8. Unforgiven

두려움도 없다. 다칠수록 강해졌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Trap 리듬 기반의 Rock적인 요소를 더한 [Unforgiven]은 미국 서부 영화인 ‘석양의 무법자’의 메인 OST를 샘플링했다. 허윤진의 랩으로 시작되는 2절 verse(01:16)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그 멜로디가 귀에 들린다. 예능에서도 많이 흘러나왔던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의 메인 멜로디다.

1절에서도 중간중간 샘플링된 테마가 나온다. 거기에 나일 로저스가 연주한 와일드한 기타 리프까지 더해지니, 곡이 더욱 거칠게 느껴진다.
곡을 들으면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사막에서 말을 타고 달리며 어딘가로 질주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있는 르세라핌을 상상하니 제법 잘 어울린다.
첫 번째와 두 번째 EP에 수록되었던 타이틀곡들과 달라졌다. 마이너한 분위기의 장르적 특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가사가 밝아졌다.
‘나랑 저 너머 같이 가자 unforgiven girls.’
‘나랑 선 넘어 같이 가자 unforgiven boys.’
‘한계 위로 남겨지는 우리 이름.’
더 이상 강하기만 한 르세라핌은 없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야 하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제 르세라핌은 멀리 가려 하고 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에.

9. NO-Return

9번 트랙인 [NO-Return]은 신나는 디스코 팝 트랙이다. 미국 하이틴 영화에 잘 어울릴 법한 [NO-Return]은 치어리딩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이 곡에서도 르세라핌은 ‘같이’의 메시지를 담는다.
‘넌 나를 이끄는 별이 돼줘.’
‘난 너를 이끄는 바람이 돼 줄 거야.’
‘새로운 우주에 첫발을 뻗어.’
후렴구에서 반복하는 가사인 ‘I’m not low key’에서 ‘low key’는 (많은 이목을 끌지 않게끔) 조용한 이라는 뜻이다. 이 트랙은 전체적으로 항해하는 느낌이 든다. 별은 밤하늘의 나침반이고 바람은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key 역시 배의 핸들이다. 가사에도 모험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순풍을 타고 앞으로 향하는 르세라핌이라는 배에는 이젠 많은 사람이 탑승하고 있다. 말을 타고 사막을 달리던 [Unforgiven]의 메시지가 이제는 배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그들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10.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순풍에 돛 단 듯 항해하던 배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Deep House와 저지 클럽 스타일이 적절히 양분된 댄스곡인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는 희망으로 가득 찬 전 트랙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일단 제목부터가 난해하다.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라니. 일단, 그들이 누구인지부터 알아보자.
이브는 뱀의 유혹으로 인해 선악과를 탐한 최초의 여성이다. 프시케는 신의 존안을 허락 없이 봐 금기를 깨트린 여성이다. 푸른 수염의 아내는 남편의 경고를 무시하고 방문을 열어본 여성이다. 세 여성의 공통점은 금기를 깨버린 여성이라는 점이다. 가사에서 볼 수 있듯이, 르세라핌은 이제 금단의 영역을 넘어가려 한다. 이제야 [Unforgiven]에서 나온 가사의 의미가 해석된다.
‘나랑 선 넘어 같이 가자.’
르세라핌은 성(Gender)적으로 금기되었던 많은 것들을 뛰어넘으려고 한다.
사실 지금의 시선으로 세 여자의 스토리를 본다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악과를 먹었다고 쫓겨난다든지, 남편의 얼굴을 확인했다고 쫓겨난다든지, 남편의 경고를 무시하고 방문을 열어본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성적으로 억압된 금기들이 현시대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전통이라니 옛 법이라는 낡은 이름으로. 이제 르세라핌은 그런 금기들을 깨려고 한다. 이제는 의미 없는, 진보를 막는 그릇된 규율들을.

11. 피어나 

12. Flash Forward

다시 밝아졌다. [피어나]와 [Flash Forward]는 다시 ‘함께’를 노래한다. 이 모든 트랙은 한 편의 레지스탕스를 보는 느낌이다. 무언가 억압되어 있던(그것이 단지 성에만 집약된 메시지는 아닌 것 같다)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함께 가자는 메시지. 어쩌면 그 전 EP들에서 말했던 Fearless와 antifragile은 이 메시지를 담기 위한 준비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13. Fire in the belly

주목해야 할 트랙은 마지막 트랙인 [Fire in the belly]이다. 마무리는 부드러운 트랙으로 끝냈던 다른 앨범들과는 달리 [Fire in the belly]는 아프리카 리듬 기반의 신나는 라틴 댄스 음악이다. 마치 크게 타오르는 불 앞에서 르세라핌 멤버들이 춤을 추는 그림이 그려진다. 르세라핌은 불을 지피려고 한다. 나를 나답게 만들 수 없는 많은 것에게. 그런 사회적 규율에게. 더 이상 규정받지 않고 나로 살기 위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한다.

‘너 내 동료가 되어라.’

도도독




이로써 르세라핌의 3부작을 마친다. 과연 르세라핌의 다음 앨범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을까.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더욱 강력한 금기들을 건드려줬으면 한다. 그들의 노래가 사람들의 생각을 비약적으로 바꾸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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