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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lumnlist Oct 04. 2023

[르세라핌] Do'u Think I'm Fragile?

르세라핌 2집 EP 리뷰


첫 번째 EP [FEARLESS]를 발매한 지 5개월이 지난 후, 르세라핌은 두 번째 EP [ANTIFRAGILE]을 발매했다. 이번 앨범의 트랙 구성은 [FEARLESS]와 비슷하다. 1번 트랙이 house 장르인 점, 영어, 일본어, 한국어의 내레이션이 나온다는 점, 앨범 제목을 타이틀곡에서 언급한다는 점, 2번 트랙이 타이틀곡인 점, 마지막 트랙이 앞선 곡들보다 비교적 부드럽다는 점이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메시지 역시 비슷할까? 함께 알아보자.

1. The Hydra

더 강렬해졌다. 런웨이를 걷는 듯이 부드럽고 팬시했던 [The World Is My Oyster]와는 다르게, [The Hydra]는 더욱 파괴적인 사운드로 돌아왔다. 디스토션 이펙터가 결합된 베이스와 거대해진 킥 사운드는 리스너를 가상의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홀로그램으로 이뤄진 공간 위에 세워진 케이지, 그곳에서 리스너는 한 명의 격투가가 된다. 드럼 필인이 끝나고(0:25~0:27) 나오는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는 라운드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들리고, 르세라핌이 속삭이는 말들은 코치의 어드바이스처럼 들린다.

‘私を燃やしてみて(날 불태워봐)’

‘私を黒い海に投げてみて(나를 검은 바다에 던져봐)’

‘몇 번이고 다시’

Trap 드럼 리듬이 첨가되고 가라앉았던 호흡이 다시 가빠지기 시작한다.

‘I am antifragile’

‘I, 私は, 나는’

‘I am antifragile’

‘다시 살아나.’

강렬한 베이스가 다시 시작됨과 동시에 2라운드가 시작된다. 2라운드가 끝나고 다시 휴식 시간.

‘나는 점점 더, 더, 더 강해져’

‘I am antifragile’

모든 악기가 드롭되었다가 다시 시작된다. 마지막 라운드를 향해. 그리고 2번 트랙의 복선처럼 ‘Antifragile’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더 강렬하게 더 파괴적으로.

Hydra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물뱀 괴물이다. 히드라는 머리가 여러 개인 뱀으로, 머리를 잘라도 다시 자라나고, 가운데 쪽 머리는 단단한 황금 비늘로 덮인 거대한 불사의 머리이다. 신들도 두려워하는 맹독을 가지고 있는 이 불사의 뱀은 머리가 잘려도 다시 살아난다. 이젠 대중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긍정적인 시선과 부정적인 시선 모두. 다만, 그런 시선에 상처받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강해진다. 몇 번이고 재생되는 뱀의 머리처럼.

2. ANTIFRAGILE

2번 트랙인 [ANTIFRAGILE]은 레게톤 기반의 댄스곡이다. 이 곡 역시 르세라핌의 특장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인트로에서 ‘Anti ti ti ti fragile fragile’이란 프레이즈가 그 점이다. [FEARLESS]의 인트로에서 반복되던 ‘bam ba ba ba ba bam’의 프레이즈처럼 이번 앨범 타이틀곡에서도 중독적인 프레이즈가 반복된다.

르세라핌은 성장했다. 다칠수록 강해진다고. [FEARLESS]에서는 마크 트웨인의 명언(용기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낄 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다)이 떠올랐다면, [ANTIFRAGILE]에서는 니체의 명언(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성장시킬 뿐이다)이 떠오른다.

‘더 높이 가줄게. 내가 바랐던 세계 젤 위에. 떨어져도 돼. (Because) I’m antifragile antifragile.’

그녀들은 더 이상 ‘FEARLESS’가 아니다. 그녀들은 두려움이란 개념에서 벗어나 강해졌다.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쇠처럼.

3. Impurities

3번 트랙인 [Impurities]는 여태껏 르세라핌이 시도하던 음악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2000년대 SES 풍의 Neo soul 느낌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듯한 [Impurities]는 르세라핌의 향상된 곡 해석 능력을 보여준다. 지금까지는 당찬 모습만을 보여줬다. 하지만 [Impurities]에서는 부드럽지만, 한층 성숙한 모습이 엿보인다. 마치 자극적인 음식들을 주메뉴로 팔던 식당에서 선보인 수플레 오믈렛 같은 느낌이랄까.

Impurities는 불순물이라는 뜻이다. ‘떨어진 한 방울 drip. 투명한 내 안에 스며들지. 아무렇지 않은 듯 keep moving.’이라는 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투명한 삶만을 살 수는 없다. 실수를 거듭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고,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르세라핌은 그런 실수에 매몰되어 과거에 갇혀 사는 이들에게 말한다.

‘don’t wanna hide. 과감히 fight. 상처로 가득한 단단한 불투명함. so natural 아름다워.’

실수와 상처, 그것들은 나를 이루는 요소 중 하나일 뿐, 그것이 나로 대변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떤 행동을 할 때, 과거의 상처 때문에 망설이지 말고 앞으로 가라고 말한다. 그것들이 나를 더 빛나게 할 테니까.

4. No Celestial

4번 트랙인 [No Celestial]은 2000년대 유행했던 펑크록(MCR, Sum41, 에이브릴 라빈 등등)을 회상하게 만든다. 이번 앨범 [ANTIFRAGILE]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삽입되어 있다. 더욱 흥미로운 건 메시지는 어긋나지 않고 하나의 결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비속어를 섞어가며 천사도, 여신도 아닌, 그냥 나일뿐이라고 외치는 후렴구가 독특하다. 아이돌 곡 가사에 욕이 들어갔다. 그것도 데뷔 앨범을 발매한 지 5개월밖에 안 된 신인 아이돌이. 그들은 펑크록의 정신을 이어받으려고 한 걸까 아니면 나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무엇이 되었든 간에 해석은 청자의 몫이다.

5. Good parts

마지막 트랙은 이 앨범의 감정을 정리해 준다. 1번 트랙부터 4번 트랙까지 이어지던 긴장감은 [Good parts]에서 해소된다. 이번 노래에는 사족을 달지 않고 싶다. 그저 눈을 감고 가사를 곱씹는 것만으로도 르세라핌의 메시지가 오롯이 전달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번째 여정 역시 메시지가 일관된다. 괜히 내가 미워질 때, 나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할 때, 스스로에게 회의감이 들 때 르세라핌은 말한다. 이대로도 좋다고. 그것으로 이 앨범은 마무리된다. 나 역시 칼럼을 준비하며 회의감이 들었다. 이게 과연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글이 될까, 헛소리를 적어 내려가는 건 아닐까. 그런 나에게 르세라핌은 힘을 줬다. 내가 첫 칼럼 대상으로 르세라핌을 선정하게 된 건, 어쩌면 나 역시 그들에게 힘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사유를 적으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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