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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lumnlist Oct 04. 2023

[르세라핌] First step

르세라핌 1집 EP 리뷰

2022년 5월 2일, 르세라핌의 데뷔 EP ‘FEARLESS’가 발매되었다.
그룹명이 정해지기 전까지 쏘스뮤직(르세라핌 소속사) 데뷔조는 S팀으로 불렸으며, 'LESSERAFIM'이라는 그룹명은 HYBE의 수장 방시혁이 애너그램으로 만들어 보자며 직접 작명했다. LESSERAFIM은 ‘IM FEARLESS’를 애너그램 방식으로 만든 이름으로,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자기 확신과 강한 의지'를 내포한다. 또한 멤버 중, 김채원과 사쿠라는 프로듀스 48에서 데뷔조로 발탁돼 아이즈원이라는 그룹으로 활동했었다.


자, 이제 그럼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볼까.

1. The World Is My Oyster

1번 트랙인 [The World Is My Oyster]는 Bass House 장르의 음악이다. 돌덩이처럼 묵직하고 단단한 베이스를 기반으로, 킥과 클랩(Clap : 박수 소리. 주로 스네어와 함께 쓰이거나, 스네어 대신 쓰인다), 베이스 리듬을 따라가는 플럭 사운드(Plcuk sound : 음의 길이와 잔향이 짧아, 마치 스타카토로 연주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신시사이저 사운드의 일종)가 주를 이루는 미니멀(악기가 많이 들어있지 않은)한 트랙이다. 이와 더해, 저 멀리서 들리는 와이드한 사이렌 소리와 르세라핌의 내레이션은 곡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킨다.

첫 앨범의 1번 트랙은 가수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영어, 일본어, 한국어 순으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은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구성된 그룹이라는 것을, 미니멀한 트랙에서는 전위적이고 팬시한 느낌을, 몽환적으로 읊조리는 말들에서는 르세라핌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세상은 나를 평가해’

‘세상은 나를 바꾸려 하지’

‘그렇다면’

‘I want to take up the challenge’

‘나는 꺾이지 않아’

‘I am fearless’

그리고

‘The world is my oyster’

위와 같은 특징을 지닌 노래, [The World Is My Oyster]를 듣다 보면, 전위적인 브랜드의 패션쇼가 눈앞에 펼쳐진다. 내레이션이 나올 때는 르세라핌 멤버들이 등장해 발광하는 새하얀 빛을 한껏 받으며 검은 런웨이 위를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날카로운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며.

곡의 제목이기도 한 ‘The world is my oyster’의 의미는 ‘세상이 내 손안에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이 문장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서 처음 등장했다). 르세라핌은 세상을 잡아먹겠다는 진취적인 포부를 첫 트랙에서부터 내비쳤다.

2. FEARLESS

2번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FEARLESS]는 Modern Rock 적인(EX : 악틱 몽키즈) 요소가 섞인 단조(Key : Minor) 댄스곡이다. 도입부부터 청자를 유혹하는 프레이즈(시와 음악에서 일정한 특징을 공유하는 일련의 한 구. 우리말로는 작은 악구, 작은 악절, 소절 등으로 부른다)가 등장한다. Verse와 Hook 사이에 등장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곡의 Main Theme은 베이스 리프(Riff : 2 소절 내지 4 소절의 짧은 악구(樂句)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재즈 연주법. 또는, 그 멜로디)이다. 또한, 베이스 리프는 ‘Bam, ba ba ba ba bam’으로 시작되는 멜로디 리프와 음이 비슷하다. Modern Rock 적인 요소가 섞인 댄스곡이라 설명했지만, 이 곡은 사실 Rock 장르라도 말해도 무관하다. 베이스와 기타, 드럼과 Bell synth로 이뤄진 구성은 영국의 락밴드, Muse의 곡을 연상시키니 말이다.

첫 트랙에 깔린 검은색 런웨이는 두 번째 트랙인 [FEARLESS]까지 이어진다. 그녀들은 계속해서 걷는다. 어떤 두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길을 걸어가겠다고 한다. 심지어 내 길을 막는 ‘어떤 것들’에게 다치기 싫다면 비키라고까지 말한다.

우리는 가끔 우리를 드러내는 데에 있어 소극적일 때가 있다. 머리로는 남 눈치 따윈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행동이 생각을 따라와 주지 않는다. 언젠가 그 연유에 대해 사유했던 적이 있었다. 내 행동을 방해하는 요인이 무엇일까.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시선에 대한 두려움, 도태됨에 대한 두려움, 불안전에 대한 두려움. 이런 두려움들의 공통점은 사회에서 정해놓은 규율이란 점이다. 공동체는 소속감을 준다. 소속감은 안정감을 준다. 반대로 독자적인 개척은 불안정하고 두렵다. 르세라핌은 ‘어떤 것들’ 즉 ‘두려움’에게 도발적인 자세로 말한다.

‘You should get away, 다치지 않게’

3. Blue Flame

Disco House 풍의 3번 트랙, [Blue Flame]은 다른 분위기의 Fearless를 표현한다. 2번 트랙과 3번 트랙의 공통점은 베이스를 메인으로 두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양상이 다르다. [FEARLESS]에서 무겁게 질주하던 베이스와는 다르게 [Blue Flame]의 베이스는 가볍고 통통 튄다. 청량감을 더하는 신시사이저는 윤슬처럼 반짝인다.

[Blue Flame]에서 그녀들은 매섭게 노려보던 눈에 힘을 풀고 살짝 미소 짓는다. 앞선 곡들이 어두운 느낌이었다면, [Blue Flame]은 밝은 느낌이다(앞선 곡들의 Key는 Minor, [Blue Flame]의 Key는 Major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런웨이에서 내려와 신선한 공기와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바닷가에서 뛰노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메시지는 연결된다.

‘두려움에 감춰 있던 베일이, 어둠이 시야를 벗어나 자라(glow). 저기 너머에 뭐가 있든지 푸른 호기심일 뿐인걸.’

그리고 말한다.

‘타오른 이상 멈출 수는 없어 my desire.’

그들이 품은 푸른 호기심이란 무엇일까. 그들이 가진 멈출 수 없는 욕망은 무엇일까.

4. The Great Mermaid

환기된 공기는 4번 트랙인 [The Great Mermaid]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곡의 메인이 되는 거대하고 파괴적인 베이스 사운드는,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베이스 리프와는 다르게, 곡의 멜로디는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튼튼하고 고른 땅에선 어떤 스포츠도 가능하듯이, 단순하게 반복되는 리프 위에선 다채로운 멜로디가 나오기 쉽다. 반대로 복잡한 리프 위에선 단순한 멜로디가 나오기 쉽다.

곡 분위기는 마치 홀로그램 세계를 표현하는 것 같다. 우주선을 타고 외계선을 부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하고, 아이언맨처럼 온몸에 로봇을 장착한 사람이 우주 올림픽에서 경기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런 곡 분위기와는 대조되게 가사는 인어공주 이야기다. 이 오묘한 조합은 꼬리가 강철로봇으로 된 인어공주를 떠올리게 한다.

르세라핌의 자주성을 표현하기 위해 왕자를 만나기 위해 목소리를 포기하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 이야기를 인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뒤틀린 사랑 나는 필요 없어’

‘포기만 안 하면 결국엔 truth’

뒤틀린 사랑 따윈 필요 없다. 나는 나이기에. 그럴 바엔 바다로 뛰어들겠다. 나를 먼저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오롯이 느껴진다. 

르세라핌의 첫 데뷔 EP ‘FEARLESS’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관통된다.

‘나다움’

세상이 나를 평가하고 바꾸려 해도 난 나로 살 거야 [The World Is My Oyster].

그 어떤 두려움이 날 옥죄어와도 난 당당하게 맞서 싸울 거야. 그리고 두려움에게 말할 거야. You should get away, 다치지 않게 [FEARLESS].

나다움,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간에 난 받아들일 거야. 왜냐면 저기 너머에 뭐가 있든지 푸른 호기심일 뿐이니까 [Blue Flame].

그런 날(진정한 내 모습을) 사랑할 수 없다면 날 사랑하지 않아도 돼. 네 틀에 맞춘 사랑, 그런 뒤틀린 사랑 나는 필요 없어 [The Great Mermaid].

5. Sour Grapes

마지막 트랙인 [Sour Grapes]는 1~4번 트랙과 결을 달리한다. Trap 장르의 드럼 룹과 808 Bass 기반 위에 스트링 피치카토가 돋보이는 R&B 곡이다. Hook 부분에 나오는 Pad synth는 이 곡을 더 몽환적으로 만든다.

[Sour Grapes]는 이솝우화 《여우와 신 포도》 내용을 차용한 것 같다. 이 이야기에서 발전된 신 포도의 의미는 ‘무언가를 원하지만, 그것을 가질 수 없는 상태라 원하지 않는 척을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5번 트랙이 1~4번 트랙의 프리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곡의 후렴 가사에선 afraid와 Scared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나온다.

‘뭐 그리 달콤할 것 같지는 같애. 설익은 감정들이 I just feel afraid.’

‘푸릇하게 아직 설익은 네 scent. I’m feeling scared.’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다움을 포기해 버린 과거의 나 자신을 《여우와 신 포도》에 빗댄 건 아니었을까(이 의견에 신빙성을 더하듯, 가사에 ‘내가 날 속여 All day All night’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첫 앨범의 1번 트랙은 가수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프리퀄인 [Sour Grapes]를 맨 마지막 트랙에 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르세라핌은 그 이름처럼 겁 없이 첫 번째 EP를 쏘아 올렸다. 위풍당당하게 걷는 그녀들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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