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시부야케이 음
지금 세대들에게 일본 음악 하면 떠오르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분명 시티팝이라 대답할 거야. 싸이월드 세대인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시부야케이'라고 답할 거야. 시부야케이는 왜 시부야케이라고 불리게 된 걸까? 유래가 궁금하다면 역시 나무위키! 다른 건 몰라도 시부야계에 대한 정리는 완벽하더라고.
얼마 전 자이언티의 3집 앨범 수록곡 중 시부야케이 음악을 연상시키는 트랙을 듣게 됐어. [V]. 뮤직비디오에는 M-Flo 멤버들까지 출연했더라고? 오랜만에 M-Flo를 보니까 [Miss you]가 듣고 싶어 지는 게 아니겠어?
그래서 준비했어!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시부야 케이!
1. M-Flo - Miss you
M-Flo의 대표곡을 뽑자면 뭐니 뭐니 해도 역시 [Miss you]가 아닐까 싶어. 특히 내가 좋아하는 파트는 03:19 ~ 03: 40까지인데, 인트로에 나지막이 속삭이며 나오던 아카펠라가 비트를 만나니까 왠지 모르게 벅차오르는 느낌이 드는 거 있지. 하우스 룰즈의 [Do It!]처럼 [Miss you]는 M-flo의 희대의 역작이 될 거 같아. M-flo의 대표곡, M-flo의 아이덴티티. 한 곡만 소개하기 아까워서 내가 좋아하는 다른 곡들도 얹어볼게.
2. Fantastic Plastic Machine - Days and Days
아으... 인트로에 나오는 기타와 베이스 라인의 조화가 기가 막혀. 장난스럽고 개구진, 조금은 가볍게 들리는 비트 위에 진중하고 묵직한 보컬이 얹힌 이 언밸런스함이 이 곡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해.
왠지 슬퍼 보이고 싶은 사람, 사연 있어 보이고 싶은 사람, 우수에 차있는 느낌을 갖고 싶은 사람, 비련의 여주, 남주 같은 느낌을 갖고 싶은 사람의 미니홈피엔 항상 이 곡이 대문음악으로 있었던 거 같아. 한마디로 노래의 바이브가 확실하다는 뜻이지.
초창기 FPM은 약간 개구진 음악을 많이 했었어. 유명한 곡들을 샘플링해서 비트를 얹는, 전형적인 시부야케이 음악을 했었지. 나는 이때 음악도 좋아해.
3. Serani Poji - Spiral Da-hi
한국엔 사이버 가수 '아담'이 있다면 일본에는 '세라니 포지'가 있지. 세라니 포지의 데뷔 과정은 꽤 특이한데, 세가 사의 게임 'RoomMaina'에 등장하는 아이돌이었어. 그러니까, 게임 내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아이돌 그룹이었던 거지. 게임 내의 서브 콘텐츠이니 힘을 좀 빼고 만들었어도 됐을 법한데, 곡의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실제로 데뷔까지 하게 됐다고 해. 이런 귀여운 스타일의 시부야 케이 음악도 많이 나왔었지.
1집 이후 앨범 역시 시부야 케이 바이브가 존재하지만, 좀 더 매니악해졌어. 소위 말하는 오타쿠스러운 음악이 됐다고 할까. 심지어 이런 음악도 나왔지.
인트로에 나오는 한국어를 듣고 좀 놀랐어. 웃겨서. 시부야케이를 좋아한다면 1집만 듣길 추천할게.
4. Towa Tei - FREE
재일교포인 토와 테이(한국 이름 정동화)의 [Free]야. 데니스 윌리엄스의 [Free]를 토와 테이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음악이야. 원곡 역시 너무 좋아. 8비트 발라드의 정석이 뭔지 보여주거든
다시 토와 테이로 돌아와서, 토와 테이는 시부야 케이의 틀을 다져놓은 사람이야.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다니다 결성한 그룹 Deee-lite로 음악 인생을 시작한 토와 테이는 1994년 일본으로 돌아와 솔로 앨범 'Future Listening!'을 발매해. 파격적인 공간감과 자극적인 사운드, 공장 소음 같은 Fx와 Jazz 샘플링의 조화. 전위적으로 느껴지는 그의 음악은 가히 예술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의 천재성은 1997년 발매한 'sound museum'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난 특히 [TT]를 좋아해.
토와 테이의 음악이 궁금하다면, 'Sound Museum'에 수록된 전곡을 들어보는 걸 추천할게. 20년 전에 발매된 음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섹시하거든. 맞아. 음악이 되게 섹시해.
[A.O.R]은 다른 앨범에 수록된 곡인데, 이 곡도 너무 좋아.
5. Mondo Grosso - Everything Needs Love (Feat. BoA)
몬도 그로소는 시부야 케이보다는 애시드 재즈(인코그니토나 자미로콰이 같은 밴드)에 더 가까운 음악을 하는 DJ야. 시부야 케이가 단순한 장르가 아닌 하나의 문화 현상 언어이기에 사실 그 당시 활동했던 DJ들이나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은 시부야 케이로 분류되었지. 몬도 그로소도 그런 DJ였어. 시부야 케이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시부야 케이로 묶인. 사실 그의 음악들은 좀 더 아방가르드하고 오가닉해.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발매된 몬도그로소 음악들보다, 요즘 나온 음악이 내 취향에 더 맞아. 특히 [라비린스]는 한국에서도 꽤 히트했었던 음악이지.
파티에서 즐기기보단, 라운지 바에서 감상하는 게 더 잘 어울리는 몬도 그로소. 아마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예상해.
6. FreeTempo - You And Me
프리템포는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이야. 가장 많이 들었던 일본 뮤지션을 꼽으라면 단연 1위를 차지할 만큼. 프리템포는 락밖에 몰랐던 내가 일렉트로닉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되었지. 위에 언급된 '토와 테이'나 '몬도 그로소'처럼 작품성이 짙거나 전위적인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는 아니야. 프리템포는 정말 대중친화적인, 대중을 위한 음악을 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해. 인트로부터 꽂히는 테마,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화려한 비트, 듣기 편한 멜로디 라인까지. 내가 좋아하는 프리템포 음악들을 소개할게.
이 외에도, Harvard나 DJ Okawari 등등이 있었지. 근데 내 취향은 아니었어서... 서정적인 시부야 케이의 영향을 받은 Mc 스나이퍼나 키네틱 플로우 음악들도 딱히 별로 안 좋아했었어...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말이야. 특히 DJ Okawari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어. 그 특유의 피아노 라인, 그 엔카 같은 느낌이 싫었던 거 같아. 차라리 제대로 뽕삘이었으면 좋아했을 텐데.
이번 추천글은 왜색이 짙었던 거 같아. 제목부터 '시부야' 케이 추천곡이니 말이야. 그렇다구 오해는 하지 말아줘. 한국사 1급 자격증이 있는 사람으로서 역사 의식은 투철하거든. 농담이야.
그때 당시 좋아했던 시부야 케이 뮤지션이 있다면 댓글로 달아줘! 같이 얘기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