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고 들었던 노래들
사랑을 시작할 땐 몰랐던 것들 민낯이나 잠버릇 신념이나 이상향 그리고 이별. 이별할 줄 알았더라면 사랑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시작했을까.
1. Puma blue - Want Me
태양은 우리를 기쁘게 만들어. 세로토닌 어쩌구저쩌구...(과학적인 얘기는 지루하니까 그만할게. 어차피 다 아는 사실이기두 하고) 이별한 사람에게는 한 달간 매일 태양이 붙어 다녔으면 좋겠어. 안 그러면 밤에 이런 노래를 듣고 울 게 뻔하니까.
개인적으로 'Puma blue'의 감성을 좋아해. 우울해서. 라디오헤드의 우울함은 나를 진창까지 데려간다면, 푸마 블루의 우울함은 '딱 여기까지만 우울하자.'라고 선을 긋는 것 같아. 정제된 우울함이랄까. 라운지 바의 어두운 조명 아래 혼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어. 고독하지만 외롭지는 않은. 나의 슬픔보다는 상대의 빈자리, 공허함에 아파올 때 들었던 음악, 우울하지만 울고 싶지는 않을 때 들었던 음악이야.
2. Matt Maltese - Less and Less
[Want me]가 우울하지만 울고 싶지 않을 때 듣는 노래였다면, [Less and Less]는 그냥 펑펑 울고 싶을 때 들었던 노래야. 우울할 때가 아닌 회한할 때 들었어. 미련을 가지면 미련해진다는 걸 알지만 미련할 수밖에 없을 때, 그럴 때 회한이 오는 거 같아. 바보 같지. 그럴 거면 헤어지지 말지. 근데 이별해서 후회할 걸 알아도 이별할 수밖에 없을 때가 분명 있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3. 권순관 - A Door
꽤 오래전 사놓았던 것인데 지금까지 잘 쓰고 있는 물건이 하나쯤 있잖아. 지갑이나 이어폰, 코트나 스웨터 같은 것들. 내겐 [A Door]가 그런 물건인 것 같아. 20대 초반, 이별했을 때 들었던 음악인데 여전히 이별 후 듣는 음악이 되어버렸어.
이별이 잔인한 이유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스스로 소멸시켜야 한다는 데에 있는 거 같아. 변명도 위로도 사과도 '끝'이라는 한 글자로 정리되잖아. 그래서 뱉어지지 못한 말들이 시가 되고 가사가 되고 소설이 되나 봐. 그 사람에겐 닿을 수 없으니까.
4. La Casa Azul - Podria ser peor
굉장히 신나는 누 디스코 리듬의 음악이야. [Podria ser peor]는 기분이 나아지고 싶을 때 들었던 음악이야. 이별 때문에 가슴이 아픈데 어떻게든 감정을 추스르고 뭔가를 해야 할 때? 그럴 때 들었던 음악이야. 이건 밤보다는 낮에 주로 들었던 음악이야. 만약 이런 누 디스코, 하우스, 유로팝 음악을 좋아한다면 'La CAsa Azul'의 음악을 추천할게.
5. 안전지대 - 微笑みに乾杯 (미소에 건배)
내 세대(20-30대) 사람들에겐 생소하지만 우리 윗세대 분들한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일본 밴드, 안전지대의 [微笑みに乾杯]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형 신파 발라드'에 영향을 많이 끼친 밴드 중 한 명이지. 안전지대의 꽤 많은 곡이 리메이크되었는데(표절도 좀 많이 당했고), MC The Max의 [사랑의 시] 같은 경우엔 번안곡이 아니라 한/일 동시 발매 곡이었어. [사랑의 시(쇼콜라)]라는 곡을 MC The Max와 안전지대가 모국어로 동시발매하려 했던 걸 일본 사정으로 인해 안전지대가 좀 빨리 발매하게 되었지.
[미소에 건배]는 포지션의 [추억의 이름으로...]로 리메이크되기도 했어. 다음번에는 가요로 리메이크된 외국 노래 추천 리스트를 만들어보려고 해. 원곡보다 더 찰떡으로 붙는 리메이크 곡이 많거든.
6. Rich brian - History
리치 치가에서 리치 브라이언으로 활동명을 바꾼 뒤, 꽤 부드러운 음악을 발매했었어. 그중 가장 좋아했던 음악이 [History]야. 이 노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들었던 거 같아. 이 노래는 주로 낮에 들었던 음악이야. 낮부터 너무 우울한 음악을 들으면 하루가 망가지는 기분이거든. 그래서 낮에는 그나마 신나는 이별노래를 들었던 거 같아. 그냥 아예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 되지 않냐고? 또 그게 안되더라. 아예 신나는 노래는 듣고 싶지 않더라고, 왠지.
만남은 어렵고 이별은 쉬워진 세상이 된 거 같아. 심수봉의 노래 제목인 [이별 없는 사랑]처럼, 이별 없는 사랑을 하는 날이 오길 바라.
마지막으로 내가 학교와 이별을 결심하게 된 노래를 추천하면서 글을 마무리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