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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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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Apr 30. 2022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박승훈 씀

군지 메구 / 더숲 / 2021

  아이의 마음을 갖고 어른이 될 수 있을까? 3년 전 일 수도 있고, 5년 전 일 수도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의 마음을 아이였던 기억을 생생하게 가지고 있는가? 에 대해 생각하고는 했다. 그런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 게 너무 오래되었다.

왜 일까? 이제 나는 어른의 일만 생각하게 된 것일까?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다가 기린을 생각해 낸다. 저자는 운이 좋다. 교실 안에 앉아 있는 많은 학생들 중, 내가 질리지 않고 오랜 시간 좋아하던 것 을 생각해 낼 수 있는 학생이 많지 않다. 저자는 용케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냈고, 끝까지 그 마음을 간직해 냈다. 아직도 진행형인 사람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자꾸 이 사람을 부러워하게 된다. 그리고 내 학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이론을 세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뛰어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그저 꿈을 찾아 훌륭하게 직업으로 만들어 낸 사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일을 만들어 간다. 기린은 누구나 좋아할 만한 동물이지만, 누구나 기린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이 글로 드러나 있어서 일기로 쓴 다큐 같다. 모두가 과학자가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과학자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관찰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뛰어난 관찰자가 훌륭한 발견을 해낼 수 있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 진짜 재밌는 연구 주제를 발견했다면 그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그야말로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깊이 생각한 끝에 나온 것이 아닐까.


  나도,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평범하다. 어릴 때에는 그 평범함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수사는 어린 사람을 억압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무한한 가능성이라기보다는 미지의 가능성에 가깝다. 내 가능성을 발견하는 방법은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았고, 따라서 가능성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나에게 가능성 따위란 애초에 별로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도 된다. 가능성이 큰만큼 불안도 크다. 하지만, 그러한 불안감에 약간은 겸허한 자세로 대처할 수 있도록 이 책은 도와준다.  


제1흉추가 '목뼈'로 목의 운동에 관여함으로써 머리가 닿는 범위가 50 센티 미터 이상 늘어났다. 높은 곳의 잎을 먹고 낮은 곳(지면)의 물을 마시는 상반된 2개의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다.


  저자는 결국 찾아내고 만다. 다른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7개의 경추(목뼈)를 가진 기린이 어떻게 다른 동물은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만큼 자유롭게 목을 움직이는지를 알아낸다. 100년도 더 된 논문을 읽고, 30마리 이상의 기린을 해부하면서 알게 된다. 언제든 기린의 사체가 있다면 달려가서 해부할 준비를 한다는 이 사람. 성과를 위해서 필요한 건 언제든 달릴 수 있도록 몸을 풀어놓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 성공의 비력을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쭉 아이의 마음을 한 채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꾸 아이의 마음을 잊는다. 아이의 마음까지 갈 필요도 없다. 내가 학생이었던 때의 마음을 잊는다. 교사로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아이들과 별로 나이 차이도 나지 않으니, 나만큼 아이들의 마음에 가까이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오늘 학교 1차 고사가 끝나고 나는 학생들의 서술형 답안지를 채점했다. 내 예상보다 성적이 나빴다. 고등학교 2학년, 다들 자신이 선택한 교과에 다라 학급이 나뉘었다. 1학년 때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었는데, 비슷한 교과를 선택한 학생들을 모아두니 학급별 성향 차이가 큰다. 모두를 다 같은 학년으로만 대했기 때문에 내가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은가. 효과적인 수업을 고민하기는 했으되, 그게 학생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선생님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말고, 늘 궁금해하고 질문하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학생들에게 내 수업이 어떻게 다가갈 지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학생들은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학생들의 학습과 생활에 대해서 늘 가정하고 가설을 만들고 이해하려 애쓰고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아이의 마음이란 쉽게 결론 내리지 않고, 지치지 않고 애정을 가지고 대상을 관찰하는 마음 아닐까.


  그래서 과학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은 여러모로 즐겁다. 내게도 과학자의 삶의 방식을 차용해 보라고 말해줘서 좋다. 가설이란 논리적인 확증 편향일 수도 있지 않을까. 증명되지 않은 이론이란, 오랜 경험에서 오는 직관일 수도 있고, 우주가 보여주는 힌트를 직관적으로 보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증명의 노력을 통해서, 무언가 밝혀낼 수 있다. 내 편향, 내 가설을 폐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은 괴로운 일이겠으나, 동시에 매력적이기도 하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틀리는 게 겁나지 않는다. 각도를 바꿔가며, 더 좋은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려고 나아갈 수만 있으면 된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거나, 과학자 혹은 동물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는 책을 찾는 사람에게도 좋을 책이다. 2021년 출판된 이 책, 왜 아직까지 2쇄 밖에 찍지 못했을까. 이 책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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