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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Jul 31. 2021

프로이드,심청을 만나다

화수분 같은 이야기의 샘물

정기진 씀

심동흔 외/웅진지식하우스

  신동흔 교수님의 <스토리텔링 원론>을 읽고 뭔가 더 읽고 싶은 생각에 저자의 책 중 안 읽은 책을 2권 구입했다. 그중의 한 권이다.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신동흔 교수 혼자 쓴 책이 아니고 그의 제자들?(젊은 고전연구자들)이 한 꼭지씩 맡아 쓴 책이다. 작품에서 깊은 의미를 추출해내는 이런 공부는 참 재미나겠다. 특별히 이 책은 고전과 심리를 연결시켰다. 즉 고전 속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병적 심리를 분석하는 것이다. 그 분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해석에 관해서 이견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뭐 딱 떨어지는 것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어찌 보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공부가 더 좋다. 어, 정말 그렇네? 와~ 심히 공감돼. 이런 느낌이 참 재밌다.^^ 


  첫 꼭지는 신동흔 교수의 글이고 [장화홍련전]을 다뤘다. 여기서 병적 심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바로 장화와 홍련이다. 그녀들의 문제는 '착한 아이'였다는 점이다. 슬픔과 괴로움과 억울함의 순간에도 '착해야'했던 아이들은 표출 못한 분노와 미움이 병이 되었다. 죽어 귀신이 된 자매는 살아서와는 달리 무섭다. 하지만 극 중 죽음은 실제로는 꼭 '죽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무서움은? 섬뜩하다.


  교실에도 착한 아이들이 있다.(그리 많진 않음^^;;;) 편안한 착함과 불안한 착함으로 나눌 수 있다. 편안한 착함을 가진 아이의 특징은 무심함이다. 그냥 천성이 그래서 그러는 것일 뿐 자기가 그런다는 걸 의식하지도 않고 보답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은 간 쓸개까지 꺼내 주진 않고 지킬 건 지킨다. 문제는 불안한 착함이다. 이게 경계가 명확한 건 아니라서 진단도 쉽지 않지만 진단해도 딱히 도와주기 어렵다. 내 마음도, 남의 마음도 마음을 다룬다는 건 어쨌든 어렵다. 고전이 있다는 건 그래서 참 다행이구나 싶고, 이런 오래된 심리의 문제를 담고 전승되어 왔으니 과연 고전이구나 싶기도 하다. 


  가장 놀랍게 읽었던 꼭지는 [이춘풍전]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버릇'이라는 제목의 이 꼭지는 '이춘풍전이 경고하는 허용적 양육의 문제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부모의 양육 스타일을 나누고 장단점을 분석하는 이론들이 많은데 요즘은 허용보다는 강압적 양육의 문제점이 더 부각되는 것 같다. 하지만 같은 무게로 허용적 양육도 문제일 수 있음을 이 글은 역설한다. 특히 과잉 자존감에 대한 지적이 내게는 약간 충격이었다. 모든 어긋난 행동의 기저에는 충족되지 않은 자존감의 문제가 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걸로 설명이 안 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본문을 몇 줄 옮겨본다. 


  "..... 이와 같이 과장된 자존감은 타인과의 관계, 특히 부모의 평가에 의해 현실적인 수준으로 낮아지게 된다. 그런데 부모의 허용적인 태도는 어린아이들이 지나치게 높게 평가한 자기 가치를 진실인 것처럼 믿게 하며 자연스러운 자존감의 현실화를 방해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무의식 속에서 자신을 대단히 우월한 존재, 더 이상 자기 계발이 필요하지 않은 완전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춘풍도 부모로부터 과도한 애정을 받아 지나치게 높은 자존감을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형성된 자기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성격을 만들어낸 듯하다. 먹고 놀기만 해도 가치 있는 존재였던 어린 시절의 자존감이 그대로 굳어졌으니 어른이 되어서도 먹고 노는 일 외엔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절제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의 습성으로 평생을 살아온 탓에 어느새 그 습성이 몸에 배었으니, 그리 방탕한 이유를 알 만하다." 


  현실적으로 아이들을 격려하여 자존감을 높여 주어야 할 필요를 많이 느끼지만 드물게는 '주제 파악'을 시켜주고 싶은 욕구가 치밀 때도 있다. 나는 이런 나에게 죄의식이 많았다. 이제 그러진 않아도 될 것 같다. '주제 파악의 현명한 방안'이 필요할 뿐이다. 한 인간은 온 우주보다 소중한 존재인 동시에 바닷가 모래알만큼 보잘것없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이 균형을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겠다.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다룬 [변강쇠가]도 놀라웠는데, 난 사실 변강쇠와 옹녀의 이름만 들었지 결말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변강쇠는 힘만 좋을 뿐 아주 몹쓸 숭악한 놈이었고 마지막 가는 길 또한 그러했다. 여기서 욕망에 집착한 삶의 파괴력을 다시 보게 된 것 같다. 세상에 욕망의 종류는 많으니 변강쇠의 욕정은 그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병적인 욕망. 무섭다.... 사회가 그것을 부채질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냥 나처럼 약간 무기력한 듯 사는 게 차라리 나을 듯....^^;;;;; 


  옛이야기의 원형에는 무의식에 작용하는 심리적 효과가 있어서 이야기를 재화 할 때는 그 원형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책에서 보았다. 이 책에는 그런 주장이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원형 그대로만 분석해도 이리 많은 내면의 이야기들이 나오는 걸 보니 일단은 원형에 충실한 작품을 먼저 읽는 게 순서라는 생각이 든다. 패러디 작품들은 그 뒤에.... 예를 들면 심청이 인신공양을 한 것은 효도가 아니라며 [심청전]을 다시 쓴 패러디 작품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답답하게 여긴 문제들이 분명 작품 안에 존재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작품 안에서 나름의 방향성을 갖고 해소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청이 아버지를 놓고 떠나 인당수에 빠진 것은 '강박적 책임'에서 벗어나 각각 홀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니 단순히 답답한 효 의식만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흥보가]를 보면서도 현대의 사람들은 무능하고 답답한 흥보에게 비호감을 표현하고 놀부의 매력을 애써 부각하려 하지만 어쩌면 놀부를 좋아하고픈 우리의 심리는 자본주의 중에서도 천박한 자본주의를 따르는 심리일 수도 있다. 


  얘기가 너무 길어지니 꼭지들을 다 언급할 수는 없겠다. 완벽주의를 다룬 [홍계월전], 자수성가한 이가 가진 강박성 성격 장애를 다룬 [옹고집전] 등 모든 분석들이 흥미로웠고 해학으로만 여겼던 [배비장전]에 숨어있는 다수의 폭력성(따돌림의 쾌감)에 대한 분석은 뜨끔하기도 했다. 이런 해석 자체를 정답 삼아 이 렌즈로만 작품이나 인간을 보는 것도 어쩌면 위험할 것이다. 그래도 무심코 들어 넘기거나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고전들 속에 이런 심리적 해석이 풍성하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재미있고 기분 좋다. 퍼내도 퍼내도 끝없는 이야기의 샘물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화수분 같은 선물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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