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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Oct 01. 2021

감정을 가르칩니다.

침이 고인다(김애란) /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리사 펠드먼 베럿)

함은희 씀

  문학교사의 정체성으로 살아온 지 20년이 넘어간다. 국어교사보다는 문학교사이고 싶었는데 점점 더 문학교사보다는 국어교사여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왜 문학을 같이 공부하고 향유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편이다. 


  몇 년 전 거울 뉴런, 공감 뉴런의 발견을 이유로 문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이과 남학생들에게 수업 전에 뜨겁게 설득하는 말로 시작했는데. 뭐랄까. 그게 또 시간이 지나니 다른 설득할 이유를 또 찾고 싶어졌다. 


  고등학생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뭔가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번에 김애란 소설집 침이 고인다에서 ‘도도한 생활’을 가르치면서 왜 학생들이 문학을 배워야 하는지, 너무 근사한 이유를 실천교사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있는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발제한 내용이 아니면 모두 휘발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 본문보다는 같이 나눈 수다가 더 의미 있게 기억이 되는 신비한 모임이지만 분명한 것은 혼자 읽을 수 없는 벽돌과 같은 책을 깨나 가는 기쁨이 있다는 것. 그 덕에 왜 문학을 꼭 이 아이들과 함께 읽고 가르쳐야 하는지를 발견하는 기쁨을 덤으로 받았다. 


  사실 나는 김애란 씨 소설 문체의 명랑함과 유머는 좋아하지만 그 진지하고 서글픈 주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하는 편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직설화법에 담긴 비장감이야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가르치면 되지만 김애란 씨 소설의 젊은이들은 당사자이거나 아니면 절대적 경험치에서 멀리 물러난 이들의 이야기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난감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고등학생인 젊은이들의 일상은 너무 퍽퍽하고 안쓰러울 뿐이다. 도도한 생활에는 지방 중소도시 출신의 젊은이가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로 이사 오고, 부도가 난 집안 세간 중에서 가장 값나가는 피아노를 달랑 반지하 자취방에 모시고 사는 이야기이다. 도도한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젊은이들의 마음과. 피아노의 ‘도’ 음처럼 낮고 멀리 퍼지는 슬픔 같은 일상인 도도 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늘 같은 말처럼 너희들의 성적이 너희 자신이 아니야. 너희 스스로 자기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하지만 어른인 나도 때때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자괴감이 들 때가 많은데 얼마나 힘들까 싶다가도. 문득 도도한 생활에 나오는 ‘나’의 일종의 정신승리 법의 감정을 아이들에게 수시로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가르친 프레이리의 교사론에서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에서 하나는 삶을 즐겁게 대하는 법. 이런 감정, 이런 마음씨, 어떤 불행이나 어려움 앞에서도 낄낄대며 다음을 바라볼 수 있는 감정의 정신승리 법을 잘 연마해서 이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고 싶은 욕심이 있다. 


  검은 비에 반지하 자취방이 무릎까지 잠기고, 고향집 아버지는 아르바이트로 겨우 모아 놓은 입학금 정도의 돈을 도와달라는 전화를 할지언정. 그런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런 상황이어서였을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무용지물이 되기 전의 피아노를 치며 도도함을 누릴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런 건강한 껄껄거림을 우리가 함께가 아니면 어찌 배우겠는가. 싶었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알게 된 과학적 사실. 실제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우리의 감정은 이미 우리가 경험한 감정들 중에서 선별하고 채택하는 과정이란 것. 이전에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배우지 못한 이는 향후에도 그런 낯선 감정들을 첨가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그런 감정 경험치는 늘려 갈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낯설고 새로운 감정의 파일들이 늘어가는 것. 


  어린 시절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통해 감정을 다양하게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교육이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것은 굳이 벽돌 책의 도움이 없어도 우린 다 알긴 한다만... 교사들의 말을 믿어주질 않으니 말이다.


  여하간, 학생들과 낄낄거리며 껄껄거리며 우리 공부 참 못한다 그치? 우리 참 대책도 없다 그치? 할지언정 그것으로 우리 아이들의 고귀함. 도도함은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을 서로 늘 확인하고 싶다.


  문학작품을 읽고 그 안의 다양한 감정을 학습하면서 예기치 못한, 아픔과 고통의 상황에서  우리가 읽은 문학 작품 속의,  건강하고 씩씩한 감정의 파일을 꺼내어 들 수 있는 학생들이 되는 것. 그리하여 본인의 반짝거림을 지켜가는 생을 살게 되는 것. 이것이 내가 문학을 가르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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