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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Jan 20. 2021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교육과 의료분야에 대한 예외성에 대하여. 함은희 씀.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조너선 앨드리드, 강주헌 옮김, 21세기 북스)

새해가 시작되었다. 지난해 코로나의 영향으로 교육이 무엇인지. 학교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의 생각의 변혁이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늘 개혁의 대상이고, 교사란 늘 기대할 것이 없는 대상으로 폄하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나는 개인적으로 교직 초기부터 학교에 대한 의문이 늘 있었다. 여전히 해결되진 않았고 내 생각이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이라는 놀라운 상식을 확인했지만 그 의문이 학교 현장에서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 사회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학생들의 배금주의 가치관이 이렇게 날로 높아지는 이유가 뭘까.

- 왜 나라는 풍요로워지고 관공서, 백화점은 휘황찬란한데 유독 학생들이 일상의 대부분을 살아내는 학교라는 공간은 여전히 값싼 건축으로 몰개성에 추위와 더위에 고통받고 있는가  

     아무리 학급 인원이 적은 농어촌 지역 학교여도 학생들이 배워야 할 절대적인 과목의 수는 같은데 교사 수를 굳이 조정하려 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도시의 교사 수를 줄이는 이유는 뭘까   


     가난한 지역과 부유한 지역의 학교 활동과 학생 지원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왜 같은 예산으로 획일적으로 운영하라고 중앙에서 정해주는 것일까.   


     나이스의 기능이 결국은 교사 업무의 관료화를 만들어내고 교육적 활동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집착하고, 심지어 진학의 증거물로 삼는 것에는 예산을 투입하면서, 학생과의 더 긴밀한 피드백, 학부모와의 구체적인 피드백이나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전산작업은 안 하는 걸까? 심지어 사기업에 돈을 내고 교사들이 사용해야 하는 걸까   


교사 수라고 하면 일단 교실에서 학생들과 수업을 하는 인원으로 세어야 상식적으로 학생들이 교육의 수혜를 받는 다고 여길 텐데 굳이 교사 수에 수업이나 담임 역할이 아닌 스텝 역할에 가까우신 보건교사. 영양교사. 상담교사. 사서교사의 수를 함께 해서 학급당 인원을 산정하는 자료로 쓰는 걸까


     서울 일부 지역은 이미 몇십 년 전부터 25명 이하의 학급 인원수가 유지되는 곳이 많은데 같은 밀집 지역에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20년 전 교직 초기보다 더 좋아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결국 이런 의문들을 교사들이 교육적 관점으로 표현해도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문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 한 가지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뻥 뚫렸다.


이 책에서 우리 사회가, 그동안의 경제와 정치가 학교를, 교육을 더불어 의료라는 공공분야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있어, 교사로서 더 자부심을 갖고 지금 생각하는 것, 그대로 실천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저자는 경제학이라는 분야의 시작이 사실은 물리학과 수학을 사랑하는 경제학자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어떻게 이론을 발견하고, 발표하고, 사회의 여러 분야로 그 이론이 스며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경제학자의 이론이 어떻게 왜곡되게 해석되고, 비틀리게 적용되어 현실 경제 정책과 법조계의 법해석 기준에도 안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매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학생들과 비문학 지문에서 경제학자들이 이론을 다루고 설명을 할 때, 경제학 이론의 한계는 결국 예외의 경우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라는 변인이 언제 어떻게 끼어들어 그들이 수학공식처럼 정립한 이론을 바로 철회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함이 없었다. 경제학 이론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결국 모든 사람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인간상이라는 전제를 뒤엎는 사람. 자신의 이익과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인간이 변인으로 작용할 때 그 이론이 무너진다는 점이었다.


저자가 특히 강조한 것은 교육과 의료분야에 대한 예외성이었다. 경제학자의 이론을 적용한 미국 사회는 돈과 이익이 정의인 세상이고, 모든 인간은 자신의 실생활의 모든 부분을 이익이 되는 것과 거래하는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런 가치관이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등에 업고 세상에 퍼져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의료분야는 그것이 적용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을 다루고, 사람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사로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올 때면 열심히 줄을 긋고 읽었다. 그리고 그간 품어왔던 의문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심지어 한 경제학자는 입양에서도 모든 이에게 이익을 주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아기를 사고파는 것과 같은 정책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최근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정인이 아가의 비극은 그 양부모가 정인이를 입양하면서 경제적인 해결을 도모하려 했던 것과 정확이 일치하는 어리석은 제안인 것이다. 미국에서 법원의 판결 기준도 옳고 그름의 기준이 손해를 끼친 양이 얼마냐가 기준일 뿐이라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결국 이 사회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선택하고 결정하기만 하면 그것이 합리적 인간이라는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어느 정권에선가 유난히 돈타령을 하는 정권을 우리는 경험했다. 그 돈타령의 결과는 정부가 파업을 일으킨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세금을 낭비한다며 삿대질을 하는 이상한 세상이 되어버린 경험을 하였다. 법원의 판결이나 세태의 흐름이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웠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 뿌리가 결국 권력이 되어버린 경제학 이론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우니 참 그야말로 마음이 이젠 더 자유로워졌다. 교육에 대한 왜곡된 정책의 방향, 흐름, 결정기준들의 뿌리가 경제학의 왜곡된 적용이라는 과정을 이해하니 한결 마음이 시원해졌다. 교육과 의료 분야를 효율성과 생산성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교사와 의사가 무익한 집단으로 매도되었는지를 지난 십여 년 이상의 세월 동안 무력하게 느껴왔다.


이 책을 통해 교사들이 공공 분야의 경제적 효율성은 세상의 법칙과 다르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교육부와 시민을 대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가지길 바라본다. 나 자신 늘 정책을 설명하는 분들에게 학교는 그게 아니에요. 학교에선 그게 안됩니다. 학교는 학교마다 달라요.라고. 경험과 관찰에 근거한, 막연히 비효율적인, 낭비를 주장하는 발언들을 해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과 의료는 유일하게 인류가 아낌없이 낭비해야만 하는 분야라는 것에 대해 확신이 생겼다. 그러니 우리 동료분들도 힘을 내시길. 우리는 효율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게 학교를 운영하고 교실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은 저울에 올려놓고 금으로 그 값을 잴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렇게 비생산적으로 저효율이라는 비난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낭비의 직장생활을 끝까지 잘 고수해야 한다. 힘을 냅시다.


“ 하지만 의료와 교육 같은 서비스의 생산성 향상에는 한계가 있다. 심리치료나 학위논문 평가처럼 수혜자의 요구에 맞추어 제공되는 서비스는 본질적으로 유일무이할 수밖에 없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여지도 없다. 양질의 맞춤 서비스는 간혹 '낮은 생산성'과 동의어로 쓰인다. 어떤 학교가 학급의 규모를 늘리면 교육의 질이 낮아진다고 생각하지 누구도 교사의 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멀의 비용병) 비용병은 의료나 교육 같은 서비스의 특징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우리는 학생수가 적은 교실과 의사에게 진료받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는 본질적으로 생산이 낮을 수밖에 없다. 민간기업이 재화와 서비스를 더 낮은 비용으로 더 효율적으로 제공한다고 단언할 만한 이론과 증거는 없다. 의료와 교육 같은 서비스가 중단되는 위기는 없을 것이다 ~~ 이런 서비스가 공공부문에서 제공된다면 현재의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세금이 인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영화는 가난한 사람에게 그런 서비스를 누릴 기회를 빼앗아갈 뿐이므로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다.(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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