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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Jan 11. 2021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이 있나요? - 정기진 씀.

페친들의 포스팅에서 이 책 표지를 여러 번 본 것이 기억나 2020년의 마지막 책 쇼핑 날 장바구니에 넣었다. 휘릭 넘겨봤더니 글밥이 적은 책이었다. 아껴읽고 싶어서 다른 책부터 읽고 펼쳐 들었다. 역시, 왜들 많이 언급하시는지 알 것 같았다. 잔잔한 감정이 밀물처럼 서서히 몰려와 그 안에 잠기게 되는 책이었다. 


완전한 글과 완전한 그림의 조합이었다. 더 잘 맞는 그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개와 할아버지의 성품과 감정과 목소리까지 표현하는 듯한 그림이었다. 


개가 닫힌 집을 열고 짐을 챙겨 나와 기차를 타고, 색연필로 편지를 쓰고 하는 장면을 보면 현실 동화가 아니지만 그런 걸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이야기는 현실을 반영했다. 혼자인 할아버지의 처지와 생활이 특히 그랬다. 개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가족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이 나올 수 없었겠지. 


첫 장면에서 개는 동쪽 바다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탄다. 밤기차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깜깜한 차창 너머로 느껴지는 막막함과 외로움. 개는 그렇게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각 장마다 첫 장은 기차 장면, 다음에는 회상이 이어진다. 


할아버지는 큰 배의 선장이었다. 버려져 떠돌던 개는 배고픔에 할아버지 배의 수확물을 한 마리 물었다가 할아버지랑 눈이 마주친다. 그날은 할아버지의 은퇴 날이었고, 할아버지는 개를 집으로 데려간다. 둘은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식탁의자에 앉은 모습, 할아버지 손위에 발을 올려놓은 모습, 함께 잠든 모습 등이 너무 익숙하고 정겹다. 우리 집에도 이런 가족이 있기에.... 


사계절을 함께 하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할아버지와 떠돌이 개의 조합이 뭐 그리 아름다울까 싶지만, 아름답다. 조원희 작가의 그림은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벚꽃을 꽂고 앉은 봄 풍경(앙증맞게 귀여워), 선글라스 끼고 튜브를 탄 여름 풍경(웃기고 귀여워^^), 낙엽 맞으며 잠든 가을 풍경(잘 때가 젤 귀여워), 눈밭을 걷는 겨울 풍경(빨간 모자가 귀여워), 모두 아름답다.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행복한 시절은 왜 오래가지 않는 걸까. 할아버지는 점차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구두를 넣었고, 다니던 길을 찾지 못했고, 성격도 변했으며 결국 어느 날 나가서는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현관문만 바라보고 앉아있는 개의 뒷모습은 내게 너무 익숙하다. 나는 개를 '기다리는 동물'이라 부르겠다. 이 개는 마침내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그래서 개는 밤기차를 탔다. 


행복하고 따뜻했던 한때는 길지 않았고 개는 또 거친 길을 헤맨다. 개는 할아버지와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할아버지, 우리는 가족이에요.


기뻐도 슬퍼도 아파도 함께하는 가족이요.


떨어져 있다가도 다시 만나는 게 


가족이라고 했잖아요.


가족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


개의 편지다.ㅠㅠ 


작가의 말에 보니 김유 작가님은 동쪽 바다 마을에 작업실이 있다고 한다. 거기선 휴가철이 지나면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개들이 많이 보인다고.... 그 안타까움에서 이 책은 출발한 것 같다. 한편 이 책의 '개'의 자리에 다른 누군가를 넣는다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고양이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같은 이야기가 된다고 난 생각한다. 단지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압하고 상처 주고 세계를 제한하고 가두는 그런 가족 말고, 옆에 있어주고 들어주고 함께 웃고 울고 응원하는 그런 가족. 혼자인 할아버지와 개가 만나서 이룰 수도 있는 그런 가족 말이다. 


이 책은 비극도 완전한 해피엔딩도 아니게 끝났다. 열린 결말이라고 할까. 비극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마지막 그림을 보면 말이다. 두 존재의 뒷모습. 그건 가족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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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든 학년과 함께 읽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해도 좋고 가족의 의미나 책임을 얘기해도 좋겠다. 동물을 다룰 수도 있지만 노인을 다룰 수도 있다. 특별한 이야기를 안 해도 물론 괜찮다. 주의할 점이 있긴 하다. 직접 읽어주시는 경우에는 울컥을 조심하셔야 한다.


#실천교사서평단


#북적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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