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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Dec 02. 2021

문학하는 마음

문학하는 마음과 문학 가르치는 마음이 만나다.

함은희 씀. 김필균/제철소/2019

  나이가 들어가니 벌써 후회가 밀려오는 것들이 종종 있다.  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며 살았을까 하는 후회. 다른 사람 시선 때문에, 부모님을 걱정하느라, 뭐 등등의 이유로 하지 못했던 것들이 가끔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서... 최근 '북샾' 영화를 보고 그간의 후회를 넘어설 수 있는 용기를 선물로 받았다.  미모의 주인공은 사랑했던 남편을 전쟁으로 잃고, 혼자 그를 그리워하면 살다가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바닷가 마을에 북샾(제목이라 그냥 씁니다)을 연다.   


  영화를 보는데, 스토리도 사랑스럽지만 산만한 관객인 내 눈엔,  오호.. 평소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영화라는 사실이 더 감동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귀에 쟁쟁 울리는 그녀의 한마디.  서점 주인인 그녀의 한마디 ‘I love reading’.  가 보지 못한 길을 가게 하는 동력, 두려움을 이겨내게 하는 용기가 되는 한마디.


  영화에 펼쳐진 아름다운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하나같이 예술성 있게  제작된 1959년 영국의 책. 바람과 비가 변덕스럽게 오락가락이지만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바닷가. 그리고 그녀의  스카프. 그녀와 우연히 책을 통해 교감하게 되는 이지적인 노신사의 중후함.  그녀를 위해 오랜 은둔생활을 끝내고 세상 밖으로 한걸음 내딛는 날 그는 아쉽게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그럼에도 스러진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스르르 흘러내린 그녀의 스카프. 언젠가 그녀가 바닷가에서 바람에 날려 잃어버린 스카프였다. 

  이 모든 아름다움의 풍경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녀의 한마디 ‘I love reading’의 힘이라고 말한다면 과한가 싶지만 내게는 그러해 보였다. 


  어떤 상실도, 외로움도, 고통도 조용히,  말없는 친구처럼 위로해주는 책 읽기. 올 한 해 이런저런 책 읽기 모임에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책이라는  친구가 주는 최고의 피난처에서 즐겁게 잘 쉬었다. 그럼에도 정작 순수한 즐거움을 위한 책 읽기는  아스라이 멀리만 있구나 라는 아쉬움. 


  그러다 만난, 이 책. “문학하는 마음”. 차라리 ‘문학하는 즐거움’이라고 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문학이 사실은 즐거운 거예요 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지만  현실은 문학하면 먹고는 살아요?라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 시대라. 즐겁다고 말하기엔 현실의 벽은 높고, 생존과 생계의 문제는 코 앞이다. 학생들에게 너는 문학적 재능이 있구나. 글을 써보는 게 어때?라는 권함이 실례이고 모욕일 수도 있는 사회가 되고 보니. 아 나는 문학하는 마음이 더 궁금해졌다. 그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문학을 하는 것일까. 어떤 글을 써도 내적 고백으로 이어져 당최 돈이 되는 글, 생산성이나 실용성이라고 갖출 수 없는 글만 쓰는 나로서는 그분들의 문학하는 마음이 궁금했다. 문학에 대해 모두가 무용하다, 생계유지도 안 된다고 아우성치는 이 시대에  그들의 문학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제목에 끌려 이북에 담아 둔 책. 서울 나가는 길에 버스에서 정독해 버린 그 ‘문학하는 마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마음이 한가득이다. 


  서현, 김혜정, 박준, 최은영, 고재귀, 정여울, 윤이수, 신형철, 정연, 서효인, 김슬기. 


  아는 작가도 있고 모르는 작가도 있고. 사람을 좋아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조곤 조곤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인터뷰 형식의 이 책은 마치 김필균 저자 옆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문학해서 먹고는 사냐고 묻는 이 시절에 여전히 문학하는 마음을 들려주시니 감사하고 문학 가르치는 마음에 대해서도 나 스스로 묻게 되니 감사하고. 문학을 가르칠 때마다 놀라운 것은. 문학만 쭉 가르쳐도 저절로 학교 폭력, 인성교육, 예절 교육, 인권교육, 혐오와 차별 방지 교육. 소위 한 시간씩 떼어놓고 가르치라고 말하는 것들을 다 다룬다는 기적의 장면들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러했다. 수행평가로 한 학기 동안 읽은 책에 대해 서평을 쓰는 수행평가시간이었다. 으레 고2쯤 되면 저는 점수 상관없어요. 이름만 쓰고 잘래요의 암묵적 태도를 보이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들을 설득할 때 문학 선생이라 그래도 설득할 만한 비빌 언덕이 있다. 나는 너희와 인격적 관계를 맺고 싶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에 대한 신뢰의 힘으로 자기 생각을 적어 내려가는 기적을 보고 싶다. 내가 일 년 동안 네게 보여준 믿음이 있다면 글을 쓰렴. 책을 읽으렴. 책을 통해 너의 생각을 펼쳐보렴. 이런 식으로 설득하면 그나마 아이들이 좀 움직인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양해를 해 준다. 경쟁이라고 생각하면 엄중한 시험의 분위기여야 한다고 되려. 이름만 쓰겠다던 친구가 따지듯 물어올 때도 있다. 그러한 때일수록 더 꼰대처럼 당당하게 말해준다. 이것도 교육이라고. 네가 나를 존중하려고 애쓰는 것이 네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평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교육의 장면이다. 끝까지 애쓰는 너와 나의 모습 자체가 친구들에게도 좋은 배움의 순간이라고 이야기해 주곤 한다.  그런 순간이면  아.. 보이지 않아도 학급 학생들의 마음은 관대함과 존중으로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분들의 문학하는 마음을 읽으며, 그 마음들을 더듬더듬 느끼며, 문학 가르치는 나의 마음, 상처와 절망으로 얼룩진 마음을 더듬어보곤 한다. 더듬다 더듬다 보듬어 주게 된다. 여전히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일은 고루함으로 보이고. 답 찍기에 유용한 설명을 원하는 답답한 눈빛을 보내는 학생들과 긴장상태에 있기도 하다. 학생들 삶과는 거리가 멀어진 오로지 시험의 대상으로 차갑게 식어버린 문학의 뜨거운 심장을 생각하면 내 심장도 차갑게 식어가는 기분이다. 처음 교단에 선 20년 전부터 학생들과 시와 소설을 읽으면 함께 웃고 울고 삶의 성장을 꿈꾸는 문학 수업을 그려왔다. 그마저도 이제는 수업 시수로나마 확보가 될 수 있을까 염려해야 하는 지경. 공정성이라는 차가운 깃발 아래, 따뜻한 마음, 다정한 마음들이 폄훼되는 시절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분들의 문학하는 마음을 잘 받아 문학 가르치는 마음으로 이어가고 싶다.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그 마음이 흘러가길 바란다. 


 누구나 ‘I love reading!’이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용감하게 인생의 허허로움과 고통과 상처를 넘어서는 날들이 되기를 기원한다. 모쪼록 책이라는 다정한 벗에게서 위로받는 날들이 늘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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