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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Feb 02. 2022

어려운 조언을 해야 하는 짐을 지고 가는 이에게

함은희 씀

'벨 훅스의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와 '고민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세요'를 읽고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지 김수영 시인에게 따로 묻지 않아도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점점 더 조그만 일에 분개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교실에 쓰레기를 마구 집어던지듯 버리며, 자기가 마신 물통, 음료수 통을 버젓이 책상 위에 며칠이고 두다가 바닥에 막 굴리는 아이들이며, 멀쩡한 문제집 교과서를 함부로 버리는 것이며. 초등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종례시간마다 점심시간에 교실에 들렀다가 속이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나오곤 한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이런 보이는 미성숙함에서 엿보다시피 그런 친구들이 많은 학급일수록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학생은 함께 더 많은 것은 보편의 법칙. 한번은 내가 너무 관대한 사람이라서 이러는가 싶어 화를 내기도 하고 한명 한명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그러지만 코로나라는 이상한 상황에 일주일 만에 만나 청소지도하고 애들 때려잡다 보면 친밀감과 신뢰감 쌓기를 놓칠까 봐 바빠지고 겨우 2학기 전면 등교기에 때늦은 규칙 잡기를 해 보지만 고등학생이라는 굵은 머리는 어찌 그리 능글거리시는지. 그러나 그것도 사실 학생이기 때문에 나이 많은 교사인 내가 인상을 좀 쓰면 습관을 고치는 척을 좀 해주니 다행이지만. 더 가슴이 아픈 것은 마음과 생각의 미성숙. 그중에서도 성장하지 못한 마음. 좁은 마음. 무엇보다 유튜브의 논객에게서 배운 어설픈 논리와 정신과 세계에 대한 이해였다. 


  사실 몇 년 전부터 학생들은 나날이 더 논리적이라고 스스로 착각을 하고 있었고, 논리와 합리라는 이름으로 공정을 부르짖는 학생들의 대화 내용은 결국 편협한 편 가르기와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가리어진 특권 의식, 약자에 대한 가차 없음, 냉정함이 그 본질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거나 글을 쓰게 하고 성찰의 과정을 거치게 하고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위대한 문학적 정서 치유의 수업을 찐~ 하게 하고 나면 조금씩들 부드럽고 따스해진다고 느꼈는데 코로나 19라는 특이 상황 속에서 컴컴한 모니터 건너편의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천리안에 내게는 없었다. 


  일 년이 지나고 고스란히 고통의 시간으로 다가왔고 아무것도 서로 변한 것 없는, 성장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너희들과 나의 모습이 가슴을 후비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만난 '벨 훅스의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와 '고민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세요'라는 두 권의 책. 


 아이들이 넘어서지 못한 경계를 보는 것이 늘 괴롭지만 한 번에 도전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고민하는 아이에게 직설화법으로 야단과 잔소리의 형식으로 한 번에 휘두르는 것은 미움을 받을지라도 바로 효과가 있어 보이지만 마음을 움직여 언제라도 심지어 나와 헤어진 이후에라도 그 삶이 변화될 것이라 믿고 조언하거나 이야기 나누는 것은 정말 심장이 떨릴 정도의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책이 그래도 그렇게 하라고 당신의 지쳐 나가떨어진 모습이 정상이라고 위로해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세요(다비드 구리옹)에서의 한 대화 장면은 다음과 같다. 

학생 : 원주민 사회에서 지혜로운 노인이 혈기왕성한 젊은 전사들을 진정시키듯이 그런다는 거죠?

정신과 의사: 그렇지 뇌가 성숙해서 제대로 작동할 때까지 부모님이 널 인도하시는 거야. 그리고 그때까지 네 임무는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너도 가끔 규칙을 어기지? 그건 당연해 청소년 시절에 규칙을 엄격하게 잘 지키고 권위에 반항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나중에 순응 주의자가 되거나 정서가 불안한 인물이 되기도 하지. 


  일 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 동안 학생의 모든 것을 바꾼다는 기대가 참 욕심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좀 더 기다리고 고민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에서 나오는 대화방식으로 훈계를 하곤 하는데, 정말 쉽지 않았지만. 원주민 사회의 지혜로운 노인처럼 되어가는 것이 교사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피식피식 웃으며 이 책을 읽었다. 모쪼록 혈기왕성한 젊은 전사들에게 시달리는 교사와 부모님께서 이 책을 읽으시고 힘을 내시길. 그리고 자녀에게 학생에게 차근차근 읽어주시길. 권해 본다. 


  그리고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벨 훅스)에서 그녀는 또 이렇게 나를 다독였다. 

  학생들이 나와 공부하는 것을 언제나 좋아한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내 수업을 받으면 심란하게 동요되어 힘들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학생들의 이런 반응은 교수 초기 시절부터 나를 괴롭혔다. 나는 학생들이 나를 좋아하고 존경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많은 경험을 한 후에야 학습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참여교육의 보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했다. 반갑게도 내가 가르친 많은 학생들은 우리가 함께 공부한 효과를 실생활에도 다시 연장시키고 공유하려 했다. 그때 교사로서 나의 노력은 학생들에게 찬사를 들음으로써 지지를 얻었고, 학생들이 직업을 선택하거나 삶의 방식에서 학습의 효과를 보임으로써 재차 지지를 얻었다. 한 여학생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녀는 전공으로 회사법을 선택할지 고민했고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순간 자신의 선택에 소명감을 느끼는지 다시 생각해보았으며 결정을 내리면서 나와 함께 했던 수업에 영향을 받았노라고 했다. 그때 나는 교사로서 우리가 가진 굉장한 책임과 영향력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참여교육을 실천하는 일은 교수가 학생들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지녀야 한다.
- p. 243.


  벨 훅스 선생님이 교사로서 가졌던 좌절과 절망이 겨우 나 같은 일개 교사가 비교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내가 얼마나 잘 가르쳤다고 감히 그녀와 견주겠냐마는 내가 받는 학생들의 피드백에 대한 일희일비는 그때의 즉각적인 반응에 있지 않음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참 다정한 토닥임이었다. 지쳐 있었고 입시 체제에 반하는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뭔가 이가 빠진 불량 부속품이 되어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능감과 무력감이 늘 꼬랑지를 따라다니는 피로감이 가득한 일 년의 끝이었다. 수원수구(誰怨誰咎) 그야말로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할 것도 아니라고 겨우 마음을 다독이며 우울의 늪을 질척 질척 걸어서 나오는 중이다. 그렇다. 아이들의 삶은 나를 만난 이후에도 이어지고, 대학에 진학하는 동안에도 이어지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러는 동안에도 이어질 것이다. 그러한 연속성을 생각하면 문학을 통해 가르쳐주고 싶은 삶의 지혜, 마음의 비밀이 많이 있었는데 아쉬울 뿐이었다. 마음열기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지는 시간들. 그리고 무엇보다 소진된 나의 육체와 정신. 그럼에도 교사의 환희를 맛보아서 나는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히 또 다른 토닥임을 받은 것은 이제는 거진 친구가 되어버린, 또래 친구에게도 속내를 털어내지 못할 상한 마음을 털어놓는 26살 난 제자인 친구 둘과의 만남이다. 거의 2년 만에 만나, 함께 재잘대며 밥을 먹고. 밀크티를 마시며 의식의 흐름대로 이 소리 했다, 저 소리했다가 하면서 소담 소담 수다를 떠는 중이었다. 이 친구들이 결국 돌아 돌아.. 자신들이 적성과 소명으로 하게 된 일이 우리가 중학교에서 만나 했던 일들과 연결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때 함께 했던 일들, 그녀들이 중학교에서 누리고 느꼈던 경험과 연결되어 있는 진로를 택한 것 같다는 영광스러운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교사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환희의 순간이다. 벨 훅스가 말한 그 환희! 


  하루하루의 좌절과 절망. 한 해의 농사로 끝나지 않는 것이 교사의 영광이고 환희임을 잊지 말고 너덜거린 마음과 몸을 잘 충전해서 새 학기를 대비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동지들이여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이 두 권의 책을 꼭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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