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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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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Mar 06. 2022

가르침 없는 교육은 가능한가?

구소희 씀

한나 아렌트, 교육의 위기를 말하다 / 박은주 / 빈빈책방 / 2021.02.

  코로나19 3년 차, 너무도 당연하던 학교의 일상이 달라졌다. 달라진 것은 비단 일상뿐이랴. 학생과 만나는 방식, 수업 방법 등 많은 부분에 커다란 변화를 가지고 왔다. 혹자는 미래교육이 갑자기 현실화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현재 우리의 교육이 미래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미래교육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줌과 구글 클래스 등으로 대표되는 것이라면 단순히 도구의 변화가 본질의 변화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여러 곳에서 교육 회복을 이야기한다. 교육청마다 교육 회복에 대한 예산과 사업이 넘쳐난다. 여러 사업 계획서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교육 회복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기존의 ‘사업’들과 큰 차별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교육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를 그 많은 사업들에 담고 있는가? 혹은 그러한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를 위해 충분한 논의가 있어왔던가? 아쉬운 지점들이다.


  그러던 중 ‘한나 아렌트, 교육의 위기를 말하다’라는 책과 만났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가 철학적 인간학의 관점에서 저술한 『인간의 조건』(1958)과 「교육의 위기」(1954)를 기반으로 쓰인 책이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교육이라는 활동과 인간적 삶의 조건이라는 관점으로 교육을 이해하고 진단하였다. 


  부제인  ‘학습중심의 시대, 가르침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부제가 마음에 와닿는다. 책의 본문에 저자는 거트 비에스타의 이야기를 들어 교육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비에스타는 ‘학습을 넘어(Beyond Learning)’에서 지난 20여 년 간 교육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변화는 교육이 학습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대체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p.19)


  ‘교육은 학습과 동의어인가?’라는 비에스타의 질문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기술과 정보가 발달되며 지식의 원천이 매우 다양해졌다. 과거 교과서와 교사의 전달이 지식이 원천이었던 것에 비해 현재에는 인터넷이나 유튜브 등 각종 미디어를 포괄하여 정보 수집 방식이 다원화되었고 수업 방식도 실시간 화상강의를 다양한 분야에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학습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배울 수 있으며 평생 교육의 개념이 확산되어왔다. 그 과정에서 교육은 빠르게 학습이라는 언어로 대체되어왔다. 만일 우리가 교육과 학습을 같은 용어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교육이 담고 있는 수많은 가치를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교육의 위기(1958)’를 쓸 당시의 미국은 우리의 현 교육 상황과 유사하다. 전통적 방식의 교사 전달식 교육에 반대하여 일어난 아동의 흥미와 관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진보주의적 교육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아동의 흥미와 관심을 중심으로 한 교육은 배울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미국은 다시 학문중심 교육 사조로 복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나 아렌트는 이론적 프레임보다는 ‘교육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또한 그는 교육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육의 본질은 탄생성에 있다
교육은 반드시 가르침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가르침의 의미에 대한 학문적 고민과 그에 대한 대안을 정리했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Ⅰ. 들어가는 글

Ⅱ. 포스트모던 시대, 가르치는 일의 어려움
  1. ‘새로운 아이들’의 등장 : 자아관의 변천
  2. 세계관의 변천
  3. 자아와 세계, 무너뜨려야 할 정초인가?

Ⅲ. 한나 아렌트의 자아와 세계 개념
  1. 탄생성: 자아에 관한 이야기
  2. 세계성: 세계에 대한 이야기

Ⅳ. 자아와 세계의 세 가지 관련 방식
  1. 노동 : 무세계성
  2. 제작 : 사물(결과물) 만들기
  3. 행위 : 세계 속에 출현하기

Ⅴ. 한나 아렌트와 「교육의 위기」
  1. 「교육의 위기」의 시대적 배경
  2. 인간 존재의 두 가지 차원과 어른 세대의 두 책임
  3. 매개 영역으로서의 학교

VI. 행위로써의 가르침
  1. 탄생성과 세계성의 매개활동
  2.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매개활동

Ⅶ. 가르치기 힘든 시대, 가르침의 회복을 열망하며
  1. 가르침 : 교육적 관계의 회복
  2. 학습의 ‘내재성’, 가르침의 ‘초월성’
  3. ‘고립된 자아’에서 ‘연결된 존재’를 향하여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교사가 가르치는 사람으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행위로써의 가르침을 이야기하며 한나 아렌트는 ‘전기가오리의 비유’를 들어 학생을 사유로 이끄는 방식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였다.


전기가오리는 스스로 마비됨으로써 다른 것들을 마비시킨다.
진리는 오히려 내가 느꼈던 당혹감을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키는 것이다.


  전기가오리가 “스스로 마비됨으로써” 다른 것을 마비시킨다는 것은 학생을 사유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 교사가 먼저 사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사의 사유를 통해 학생이 사유하도록 하는 방식은 일종의 ‘감염’ 형태를 취한다고 하며 이것은 교사가 직접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초대의 방식’을 제안한다. 이것은 내용이나 원리를 교사가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 자신이 사유가 이루어지는 방식을 학생들에게 드러내 보이면서 학생 내면에 사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것을 ‘세계를 사랑하는 태도’로 설명하였다.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세계를 사랑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형성하였을 때 교사는 세계와 맺고 있는 그 관계가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파커. J.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가르친다’라는 내용, 루이스 코졸리노의 ‘애착 교실’의 이야기와도 일부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도입부가 강렬하게 공감과 호기심을 이끌었다.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고비가 생길 무렵 적절한 비유와 만났다. 현재 우리의 현실과 드라마 이야기 등을 가지고 왔다. 부드럽게 전달하고 책 읽기로 초대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보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논문을 기본으로 쓰인 책이기 때문에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책을 무척 좋아하거나 이 분야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혼자 끝까지 다 읽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교사라면 꼭 읽으면 좋을 책이기에 전문적 학습공동체 등의 공부모임이나 독서모임에서 동료들과 함께 천천히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며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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