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잊지 못할 한 주가 지났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모든 절차를 마치기까지가 단 일주일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인생의 생사와 온갖 비탄한 감정들을 다 경험하였다.
처음 며칠은 정신없고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이 변해갔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서서히 실감 나면서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애통한 마음은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을 정리하며 극에 달했다.
내가 맡은 것은 어머니의 잔 살림들이었다. 책상 주변과 침대 협탁, 거실 서랍장 등 평소 어머니의 손길이 가장 많이 닿았음 직한 곳이었다. 둘러보니 작년 말 어머니가 갑작스런 암 진단을 받으셨던 당시 모습 그대로였다.
시작하자마자 슬픔이 폭발했다. 어머니의 변변치 못한 패물함, 자식들이 왔다 간 날을 기록하신 철 지난 달력, 한 장씩 받아 앨범에 끼워두신 손주 사진들…. 차곡히 모아진 장면만 보아도 지난날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짐작이 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유품은 그저 물건일 뿐이니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마음에 담지도 말라고. 나도 처음엔 그러려고 했다. 간간이 고운 추억들이 발견되면 잠깐씩 멈추어 어머니를 기억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특히 어머니의 일기장을 펼친 뒤로는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일기장이랄 것도 없는 지금은 다 큰 손주가 초등학생 때 몇 장 쓰다 버린 스프링 노트였다.
‘자식들에게 피해 주면 안 된다. 강해지자’
몇 년 전 아버지가 떠나신 직후에 쓰신 일기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먼저 가신 후에도 자식들만 생각하고 계셨다. 혼자 남겨진 당신이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셨다. ‘아이들에게 짐이 될까 봐 잠이 안 온다’라고 이어지는 글에서 억장이 무너졌다.
‘딸이 김치를 가지고 왔다. 미안하다’
언젠가 내가 김치를 갖다 드린 날의 일기였다. 그 김치는 시누이가 우리 집 밑반찬을 해주며, 거동 힘드신 어머니를 위해 좀 더 챙겨준 음식이었다. 어머니는 시누이들이 보내온 반찬을 가져다 드릴 때면 어찌할 바를 몰라하셨다. 남동생 식구들 먹으라고 해준 음식인데 그 귀한 걸 가져와도 되느냐며 걱정하셨다.
‘너무 아프고 외롭다’
이 대목에서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암 진단을 받으셨던 즈음에 쓰신 일기였다. 평상시에 어머니께 어떠시냐 여쭤보면 매번 ‘아무 일 없다’ 고만 답하셨다. 또한 ‘괜찮다’고 하시면서 자신은 잘살고 있으니 ‘ 너희들이나 잘 살라’고 하셨다. 그래서 진짜 그러신 줄 알았다. 바보같게도 이러한 진실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나는 지난 여덟 달 동안 어머니께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했다. 영양부족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의심하여 병원을 전전하다 끝내 암 덩어리를 찾아낸 사람도 나였고, 살아계실 때 드시게 하려고 엄동설한에 좋아하시는 참외를 구해다 드린 이도 나였고, 어머니 침대 옆 간이 평상에서 수개월 쪽잠을 잔 사람도 나였다. 하지만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모든 고통을 감내하셨던 어머니의 노고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어이없는 것은 그 와중에 느껴진 나의 치졸하기 짝이 없는 속내였다. 내가 어머니를 위해 들인 정성은 순전히 어머니만을 위한 것이 아닌 듯했다. 호스피스 병원 의료진들 시선을 의식한 탓에, 사람들에게 불효자식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는 욕심에, 어머니가 가신 뒤 내 마음 편하자는 이기심 때문에 등, 모조리 나만을 위한 행동이었다. 결국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생애에도 제대로 된 도리를 다 하지 못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머니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는 한 주 전이 아니라, 어머니 마음을 보지 않았던 하루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다면 떠나시기 직전에 행복하다셨던 어머니의 말씀만 기억하게 될 테니까. 차마 옮기지조차 못하는 어머니의 처절했던 옛 심정들을 영영 모르고 살아갈 수 있었을 테니까. 무엇보다 앞으로 나를 괴롭힐 게 뻔한 이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애당초 짊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이제부터 나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늘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셨던 어머니, 약해질 때마다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내 힘의 뿌리... 당장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어머니께서 내게 직접 말씀하신 유지만큼은 꼭 받들고 싶다. ‘행복하라고. 부디 행복하라고….’
바로 이 순간 "그때는 잠시 힘겨웠지만 지금은 다 괜찮아졌다"는 어머니의 한 마디가 너무나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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