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생 부동산과의 악연은 참으로 지독했다. 신혼집 다음으로 이사 간 전셋집에서 두 달 만에 쫓겨나기도 했고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집을 계약해 막심한 손해를 보기도 했다. 남들처럼 부동산으로 이익을 보기는커녕 손만 댔다 하면 큰 손실이 났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집이란 것엔 욕심을 버리게 되었다. 그냥 분쟁 없이 내 몸 누울 곳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여겨졌다. 부동산 광풍이 불 때마다 별 동요 없이 지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마음 편한 게 제일이었다.
그래서일까, 퇴직 후 사무실을 보러 다닐 때 많이 움츠러들었다. 워낙 부동산을 보는 눈이 없으니 중개인 말만 듣게 되었다. 결국 서울 한 복판의 3층 사무실을 얻고 난 뒤에는 여러모로 힘이 들었다. 수 천만 원의 보증금 자체가 부담이었고 월세랑 관리비랑 매달 정산을 하고 나면 탈탈 털리는 기분이었다.
입주 후 건물주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빌딩 관리인과의 사이가 껄끄러웠다. 건물주의 조카라는 관리인은 늘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자기 차 주차할 데가 없으니 손님 차량을 빼라고 하질 않나 뜬금없이 개업 때 돌린 떡을 다시 먹을 수 없겠냐 묻질 않나, 하여간 당혹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하란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사무실은 살 집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무실은 내가 얻었더라도 내 것이 아니었다. 계약서에 사인하기까지만 내 의지였고 이후는 전적으로 남들 손에 달려 있었다. 누군가를 만족시켜서 그 누군가가 찾아오지 않으면 언제든 정리해야 하는 인정사정없는 공간이었다.
그 때문인지 사무실에 있으면 긴장이 되었다. 혼자 있어도 흐트러진 모습을 할 수가 없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도 주변이 의식되었다. 사무실은 텅 비어 있건만 그 안은 보이지 않는 시선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듯했다. 그러다 집에 가면 기진맥진하여 쓰러지기 일쑤였다.
당연 사무실에 출근을 할라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오늘은 몇 명의 고객이 찾아올까, 문의 전화는 몇 통이나 받을까,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해도 속은 바짝 타들어갔다.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내 신경은 온통 문쪽을 향해 있었다. 계약기간을 못 채우고 1년 만에 폐업하고 나올 때 한편으로는 후련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사무실은 흔히들 생각하듯 단순히 일을 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를 증명해야 하는 곳이었다. 고객이 오지 않으면 내 실력이 부족한 탓이었고, 전화가 울리지 않으면 내 준비가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매일매일 성적표를 받아야 하는 학생이 있을까. 있다면 그 신세이상일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퇴직 후 두 번째 사무실을 얻었다. 이번에 자리한 곳은 서울 외곽에서도 전철역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장소이다. 위치 때문인지 불경기 때문인지 건물 내 공실이 상당히 많았다. 전에 있던 임차인이 갑자기 나가는 바람에 시세보다 저렴하게 세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또 얼마동안 지내게 될까.
한때는 오직 전진만을 최고라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삶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퇴직하고 나서는 달라졌다. 한 자리에서 견딘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새삼 깨달았다. 진정 강한 사람이란 흔들리면서도 버텨내는 자, 앞이 안 보여도 살아내는 자였다.
퇴직 후의 삶,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시간을 버텨내야 하니까... 그렇지만 먼 훗날엔 달리 평가되길 기대하며, 지금은 변변찮게 보이는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