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어느 대기업 퇴직 임원의 창업 폭망기
막상 창업을 결심은 하였으나 시작부터 막막했다. 사업이란 게 단순히 공간을 빌려서 간판만 달면 끝날 일이 아니었다. 관공서 가서 ‘나 영업하겠다’라는 말은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구청? 교육청? 숱하게 들었던 이름인데도 왠지 멀게만 느껴졌다.
몇 날 며칠 검색을 반복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교육센터를 차리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수도 없이 찾아봤다. 그 과정들이 내겐 너무 어려웠다. SNS와 관련 영상을 되풀이해서 보았지만, 머릿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았다. 일단 단어부터가 생소했다. 무슨 신청서, 무슨 계약서, 이름만 스무 글자에 가까운 것도 있었다. 전체 흐름을 파악하기는커녕, 서류 이름 하나도 입에 붙이기 버거웠다.
그 과정에서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다시금 느껴졌다. 물어볼 사람도, 대신해 줄 사람도 내 옆엔 없었다. 회사를 떠났으니 모든 걸 스스로 처리해야 했다. 당연히 일의 진척이 늦어졌다. 이해를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텐데 그러지를 못하고 같은 자리만 맴맴 돌 뿐이었다. 출발마저도 쉽지 않았다.
드디어 첫 번째 관문인 교육청에 가는 날, 나는 준비한 서류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파일 안의 서류 뭉치를 넣고 빼며 제대로 챙겼는지 살펴보았다. 옷차림에도 신경 썼다. 그동안 묵혀 두었던 모직 코트를 오래간만에 꺼내 입었다. 첫눈에 똑 부러지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도착하니 민원인이 거의 없었다. 때마침 코로나라 온 나라가 쥐 죽은 듯 조용한 상황이었다. 방문일지에 이름을 쓰고 실내로 들어가자 역시나 분위기는 냉랭했다. 다들 마스크를 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 일 하기에 바빴다. 갈팡질팡 두리번거리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잠시 머쓱했다.
번호표를 뽑고 앉아 있는데 곧바로 내 이름이 불리었다. 오라는 창구에 앉자마자 살짝 당황했다. 플라스틱 벽면 너머로 보이는 공무원이 너무도 앳돼 보였다. 회사로 치면 누가 봐도 갓 입사한 신입사원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가슴이 쿵쾅댔다. 나는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그에게 인사했다. 마스크 때문에 보이지도 않건만 애써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서류 주세요” 그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재빨리, 그러나 침착하게 서류 뭉치를 건넸다. 그때를 위해 내가 얼마나 열심을 다했단 말인가. 똑같은 서류를 여러 차례 출력해 가며 완벽을 기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도 떨리는 감정은 진정되지 않았다. 혹시나 지적이라도 당할까 봐 마음을 졸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느라 눈알이 시큰거렸다.
'철썩' 공무원이 살피던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순간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는 잠시 뒤 나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잘하셨네요” 뜻밖의 말이었다. 너무나도 행복했다. 마치 선생님께 크게 칭찬받는 기분이었다. 요동치던 내 심장이 잠깐 편안해졌다.
공무원은 이어서 말했다. “너무 잘하셨네요” 이번엔 조금 당황스러웠다. 단순히 칭찬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솔직히 서류를 준비하면서 의문이 들긴 했다. 자료를 어느 선까지 작성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무조건 공을 들였다. 내용은 최대한 상세하게 적었고, 글자 배치까지 꼼꼼히 체크했다. 그랬더니 너무 힘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그러느냐며 억지 미소를 띠었다.
일을 마치고 나서는데 다리에 힘이 풀렸다. 큰 시험을 치르고 나온 수험생처럼 온몸이 축 늘어졌다. 일단 접수는 했으니 허락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면 되었다. 그런데도 왠지 편치 않았다.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담당 공무원에게 들었던 칭찬을 여러 번 대뇌였는데도 염려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돌발 변수라도 생길까 전전긍긍하였다.
나는 알았다. 그 이유를. 그건 내가 이미 여러 번 넘어져 봤기 때문이었다. 퇴직 후 겪은 온갖 실패의 잔재들은 마음 깊이 가라앉아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불쑥 올라왔다. 그것도 꼭 내가 뭔가를 시작하려고만 하면 거칠게 일어났다. 그리고 여지없이 내 행동을 옥죄였다. 사소한 일인데도 부정적인 결과부터 떠올리게 만들거나 자신감을 떨어뜨려 아예 포기하게도 했다. 그즈음 사업한다고 떠벌리고 다녔던 것도 위축된 내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슬프게도 그날 이후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연거푸 벌어졌다. 한 가지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고, 가까스로 넘기면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더욱 작아졌다. 창업만큼은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함까지 더해져 한순간도 편한 날이 없었다. 말 그대로 암흑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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