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어느 대기업 퇴직 임원의 창업 폭망기
개업식 당일, 나는 이미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가슴이 벅차올라 주체할 수 없었다. 드디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 맘껏 할 수 있는 회사를 차린 것이다. 대기업에서 쌓은 수 십 년 경험과 노하우 하다못해 퇴직금까지, 내가 가진 전부를 걸고 시작한 사업의 앞날은 무조건 탄탄대로인 것만 같았다.
축하 화분이 사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기꺼이 와주신 지인들이 50명을 훌쩍 넘겼다. 준비한 다과가 모자랄까 걱정될 정도였다. 혹시나 싶어 중간중간 편의점을 들락거리며 음식을 보충하였다. 하루 종일 왁자지껄 축하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참으로 기분 좋은 하루였다.
드디어 첫 영업을 개시한 날, 나와 직원들 총 네 명은 일찌감치 출근을 마쳤다. 한 사람은 오자마자 로비 청소를 했고, 또 다른 직원은 경쟁사 조사를 하겠다며 컴퓨터 전원을 켰다. 중간중간 내년 휴가를 어디로 떠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회사 차원의 포상 휴가라니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
사흘이 지났다. 여전히 의욕은 충만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사무실 모습은 지극히 평온했다. 특별히 바쁠 게 없었다. 로비는 충분히 깨끗했고 경쟁사에 관해서도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우리가 오픈한 걸 아무도 모르는지 그사이에 단 한 통의 고객 문의 전화도 오지 않았다.
그래도 잘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곧 손님들이 몰려올 거라고 믿었다. 직원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시장조사를 한답시고 유유자적하게 동네 마실을 다녔다.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전에 여유나 가지자며 근처 카페에 들어가 크림 잔뜩 들어간 커피를 주문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영업 상황은 똑같았다. 그사이 나와 직원들의 의욕만 눈에 띄게 꺾였다. 야심 차게 만든 영상의 조회 수는 30회를 넘지 못했다. 기껏 오는 전화라곤 마을버스에 홍보물을 설치하라는 광고회사나 사무실을 맡겨만 달라는 청소업체뿐이었다. 간간이 070 번호도 섞여 있었다.
직원들은 슬슬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할 일이 없으면서도 책상 위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걸려 일부러 환한 표정을 지었다. 피자에 치킨에, 사기가 떨어질까 음식을 주문했다. 그러면 잠깐은 분위기가 살아났다. 그렇지만 다음 날이 되면 여지없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한 달이 다 되어갔다. 결국 좋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간 손님이라곤 직원의 지인 딱 한 사람뿐이었다. 내 속도 이미 쪼그라든 지 오래였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계속해서 돈 계산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조바심 내지 말고 한 달은 지켜보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월 결산을 하는 날. 직원들이 퇴근한 야심한 밤에 노트북을 열었다. 항목별로 지출을 점검해 가며 합산해 보았다. 월세, 급여, 전기료, 각종 렌탈료…. 그래서 ‘마이너스 1천5백만 원’. 혹시 잘못 입력한 건 아닌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하루에 40만 원씩 나간 셈이었다. 허황된 희망을 품고 사는 동안 돈이 줄줄 새어 나가고 있었다. 통장을 확인했다. 이런 식이면 몇 개월을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가게 문을 열었다고 해서 당장 수익이 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뚜껑을 열어보니 매출은 내 예상의 1/10 수준에도 못 미쳤고, 지출은 내 바람의 10배를 넘어섰다.
긴 한숨이 나왔다. 감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할까. 나는 그날 날이 밝도록 불을 환히 밝히고 대책을 세웠다. 회사원 시절처럼 원인 분석부터 향후 대책까지 머리를 짜내며 A4 용지 10장을 가득 채웠다.
새벽바람을 가르며 사무실을 나서는데 한 달 전 개업식 기억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공을 확신하며 의기양양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 바보같이 내가 방문객들을 고객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북적댔던 손님들은 실제 고객들로, 넘쳐나는 화분은 실제 매출로 오인한 듯했다.
한 달이면 충분했다. 창업은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픈 후 내내 사무실에 앉아서 대표님 코스프레를 했던 내 모습이 어이없었다.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한 마디에 헤벌쭉 웃던 나란 사람이 못나 보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1천만 원짜리 감투를 스스로 쓴 셈이었다.
그래도 하나는 배웠다. 아무도 나를 찾아와 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나서야 한다는 것을. 며칠 후 나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지하철 2호선에 몸을 실었다.
[ #퇴직학교 클래스 안내 ]
퇴직 후 길을 찾으시는 분들을 위해
아래와 같은 오프라인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1. 그룹 브런치 모임
-정경아 작가와 함께하는 2차 브런치 모임
(8월 30일 토요일 11시 / 2시간
*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진행됩니다)
: 1부|작가의 퇴직후 삶의 전환 이야기 (1h)
- 대기업 임원 퇴직자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
: 2부|참여자와의 이야기 나눔 (1h)
- 각자의 위치에서 도전하고 있는 사항
☞ 정경아 작가와 함께하는 브런치 신청하기
2. 1:1 브런치 클래스
-개별 일정 조율 / 총 2시간
-신청자 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퇴직 이후의 삶 설계 컨설팅
☞ 정경아 작가에게 1:1 컨설팅 신청하기
※ 폼을 작성하시면 안내를 도와드립니다
※ 퇴직학교 www.retireschoo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