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어느 대기업 퇴직 임원의 창업 폭망기
창업 폐업 후 1년, 경찰서에서 온 전화 한 통
창업으로 인한 고통은 폐업 후에도 계속되었다. 문을 닫고 1년쯤 지났으려나.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경찰서였다.
"안녕하세요, ○○경찰서입니다. 작년에 ○○인테리어 업체와 거래하신 적 있으시죠?" 순간 당황했다. 거래를 하긴 했으나 갑자기 왜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 솔직히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짧은 순간 머리가 멈춘 듯했다.
"죄송하지만, 경찰서에 와주시겠어요?" 갈수록 가관이었다. 사태 파악도 못 한 나에게 다짜고짜 나오라니. 형사는 공손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업체 대표를 고소한 분들이 많아서요. 참고인 진술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다행히 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불려 다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잠시 고민하는데 개업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창업 준비로 한창 바쁠 때였다. 사무실 계약을 마치고 나니 부동산 중개인이 나에게 인테리어 업체는 정했냐고 물었다. 마침 열심히 알아보고 있던 터라 귀가 솔깃했다. 온라인 후기는 죄다 좋은 댓글들뿐이라 신뢰가 안 가 고민하던 차였다. 중개인은 어물거리는 나에게 자신이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 동네 여러 공사를 했던 곳인데 여태 큰 탈은 없었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의심 없이 연락처를 건네받았다.
인테리어 대표는 정말 친절했다. 굳이 내가 몰라도 되는 사항까지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내가 비싼 자재를 고르면 저렴한 가격의 대체품을 제안하기도 했다. 공사비를 부풀려도 모를 판인데 오히려 비용을 줄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고마웠다. 덕분에 대표에 대한 신뢰도는 급속도로 상승했다. 정해진 일정보다 작업이 당겨지면 과한 점심을 대접해 가며 감사함을 표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인테리어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조심스레 잔금을 당겨서 주면 안 되느냐 물었다. 여러 공사 현장의 자재들을 한꺼번에 구입하려니 버겁다고 했다. 받아야 할 돈은 수두룩 깔려 있는데 당장 수금이 안 되어 어려운 듯 보였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간 대표의 태도를 보면 그쯤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 있는 자리에서 10% 잔금만 남기고 나머지를 몽땅 다 계좌이체 했다.
그때부터 대표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친절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뭔가 얘기하면 알았다고는 하는데 작업에 반영이 안 됐다. 가끔은 귀찮다는 투로 대답하기도 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되었다. 공사는 자꾸만 늘어졌고 그럴수록 나는 점점 애가 타들어 갔다.
그러는 사이 오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현관 페인트칠을 포함해 중요한 마무리 공사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하도 답답해서 부동산 중개인에게 달려갔다. 인테리어 대표의 또 다른 공사장은 어디냐며 알려달라고 했다. 중개인의 답변이 기가 막혔다. 자기도 그 사람과 별로 안 친해서 어디서 뭐 하는지 모른다는 거였다. 언제는 잘 아는 사람처럼 말하더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 더는 묻지 못하고 빈손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까스로 오픈 전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긴 했다. 기한 내로 작업을 마치지 않으면 남은 잔금은 줄 수 없다고 문자를 보내니 인테리어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불평의 말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고는 남은 공사만 한 뒤 바쁘다며 내뺐다. 하긴 나 역시도 진이 다 빠져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 대표와 빨리 모든 걸 정리하고 싶었다. 내심 공사를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도 아주 살짝 있었다.
그런데 다 지나서 그런 대표에 관한 진술을 해달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나는 형사에게 못 간다고 대답했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에게 측은한 마음도 들었지만, 쓰디쓴 과거로 돌아가는 게 싫었다. 혹시나 다른 후환이 생길까도 두려웠다. 좋은 의도로 진술을 해준다 해도 나중에 인테리어 대표가 내게 앙심을 품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사업을 시작하면 그저 장사에 전념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일단 사업에 발을 들여놓으면 상상치 못한 일들이 두더지 게임기처럼 튀어나왔다. 운이 나쁘면 사기꾼도 만나게 되고 심하게는 법적 분쟁에 휘말릴 위험도 있었다. 그저 퇴직하고 자리를 잡아보겠다는 마음 하나가 그토록 잘못된 것일까. 내 맘처럼 되지 않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했다.
내가 느낀 창업은, 세상의 온갖 머리 아픈 일들과 겨루는 고독한 싸움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제는 누군가 개인 사업을 한다고 하면 나는 참 안쓰럽다. 어떤 말 못 할 고민을 하고 계실까. 어떤 놀라운 상황을 겪으셨을까.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위기의 자영업자들이라는 기사를 접하면 내가 슬퍼지는 이유이다.
부디 이 땅의 모든 창업,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무탈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특별히 퇴직 후에 창업을 결심하신 분들이 정녕 그 길이 최선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퇴직 후 길을 찾으시는 분들을 위해
아래와 같은 오프라인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1. 그룹 브런치 모임
-정경아 작가와 함께하는 2차 브런치 모임
(8월 30일 토요일 11시 / 2h, 매월 마지막 토)
: 1부 | 작가의 퇴직후 삶의 전환 이야기 (1h)
- 대기업 임원 퇴직자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
: 2부 | 참여자와의 이야기 나눔 (1h)
- 각자의 위치에서 도전하고 있는 사항
2. 1:1 브런치 클래스
-개별 일정 조율 / 총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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