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1일차, 오늘도 나는 집을 나섰다

헤어짐은 늘 버겁다

by 경아로운 생각


시계를 보니 6시 50분. 늦었다. 평상시보다 20분이나 늦잠을 잤다. 분명 알람을 맞추었을 텐데 못 들었나 보다. 9시부터 본부 회의가 있는 날이라 서둘러야 한다.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하고 어떻게든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한다. 요즘 회사 분위기도 좋지 않은데 괜히 지각하는 모습을 윗분한테라도 보이면 큰일이다.


허겁지겁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마치니 20분이 지났다. 이 정도면 도로가 많이 막히지만 않으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이다.


“어디가?” 신발을 신고 있는데 남편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물었다.

“말 시키지 마. 바빠!”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어디 가냐구?” 남편이 또 물었다.

“말 시키지 말라구!” 나의 소리가 높아졌다.

“혹시, 회사 가는 거야?” 남편이 다시 물었다.

“늦었다니까!!”

“.......”


띠릭.

현관문을 여는데 남편이 말했다.

“너 이제 회사 안 가도 되잖아”

.

.

.

순간 머리에 무엇인가를 맞은 것 같았다.

‘내가 회사를 안 가도 된다구?’

불과 0.1초도 안 될 것 같은 시간에 3일간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그랬다. 지난 금요일 나는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대표님의 퇴직 통고를 들었었다. 그 저녁에는 오랜 동기와 술을 취하도록 마셨고, 토요일은 쓰린 위를 부여잡으며 토하기를 반복하였다. 일요일에는 측은함이 느껴지는 퇴직 선배 임원들의 문자에 억지 밝음으로 대답하였고, 오늘이 그 후 월요일이었다.


신고 있던 신발을 벗는데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아니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맥이 풀려서 들고 있던 핸드백을 툭 떨구었다. 그리고 몇 걸음 걸어 소파에 철퍼덕 쓰러졌다. 3일 전의 숙취가 다시 느껴졌다. 출근의 긴장감이 풀리니 부정의 감정이 올라왔다. 혹사당했던 몸도 힘겨웠다.


‘오늘부터 회사 안 가는 것이 맞나?’

나는 더 이상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퇴직 통보를 받긴 했지만 더는 나오지 말라는 말은 누구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졸업을 하면 다음 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왜 바보 같기 짝이 없는 고민을 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 안내를 받긴 했었다. 지난 금요일 대표님께 통보를 받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총무팀 파트너가 찾아와 휴대폰, 차량, 법인카드 등 그동안 누렸던 임원의 혜택들이 언제까지 유효한지 설명해주었다. 그 또한 이미 임원의 신분이 아니라는 증거인데 굳이 당장 나오지 말라는 말이 필요했을까.


나의 몸은 나의 아침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십 년을 그랬듯 평상시 습관대로 움직였다. 굳이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늘 일어나는 시간에 맞추어 자연스레 눈이 떠졌고, 출근 준비를 시작하였다. 나의 머리가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내 몸은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출근하면 늘 하던 대로 스케줄러를 펼쳤다. 업무 시작 전 그날 할 일을 체크해야 하루를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다. 12시부터 점심시간, 5시 퇴근, 두 가지를 적고 나니 더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했다. 늘 시간이 부족했는데 오늘만큼은 하루가 8시간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30년간 직장은 나에게 있어 숨이었고 맥박이었다.

대학교 4학년 첫사랑과의 이별보다 회사와의 헤어짐이 천만 배는 더 힘겹게 느껴졌다.


오늘 같을 내일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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