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임원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퇴직 7일차, 가장 빨리 떠나는 항공권을 구매했다

by 경아로운 생각


하루가 너무 길었다.

불과 이틀을 혼자서 보냈을 뿐인데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10시…. 회의에 팀원들은 모두 갔을까?

12시…. 오늘 메뉴는 뭘까?

2시…. 본부장님 보고를 들어가야 하는데.


회사에서 지냈던 시간을 생각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근무시간 동안에 업무가 아닌 개인적인 일을 한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제 회사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이 없을 텐데, 여전히 회사만 바라보는 내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서야 활동이 편해졌다. 이제 무얼 해도 괜찮은 시간이니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면 된다. 가족을 챙기는 일도, 온라인으로 장을 보는 일도 지금부터는 괜찮다.


지독했던 첫사랑과의 이별이 떠올랐다. 나는 첫사랑을 오랜 기간 잊지 못했다. 일방적인 헤어짐이었기에 이별의 초기에는 숨도 잘 쉬지 못했고, 물 한 방울 먹을 수 없었다. 함께 했던 장소를 지날 때면 가슴이 미어졌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전화기를 놓지 못했었다. 그가 있을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도 흘렸었다. 오랫동안 이별의 그늘에서 벗어 나오지 못하고 아파했었다.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회사와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이 고통이었다.

이곳에서는 회사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함께 했던 선후배들과 동료들에게 오는 안부 문자도 참을 수 없었다. 그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으니 지금부터는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떠나는 이에게 보낼 문자를 쓰며 고민했을 심경이 느껴지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식사 자리를 만들자는 연락도 부담이었다. 떠나는 사람에게나 보내는 사람에게나 더는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밥 한 끼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작년 이맘때, 퇴직하는 선배 임원과의 송별 회식을 다녀온 후 했던 한 팀원의 말이 떠올랐다. “김 상무님, 펑펑 우시더라구요” 그렇게 말하는 남겨진 자의 표정은 떠난 자의 심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치앙마이 한달살기.

언젠가 헤어샵 잡지에서 본 기억이 있다. 당시 그 기사를 보며 내 평생에 한달살기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더 있어도 모자랄 시간인데 차라리 그 시간에 프로젝트 하나를 더 해보리라 생각했었다. 불빛 찬란한 야시장이며 형형색색 태국 음식에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페이지를 넘겼다.


그래서 끌렸던 것 같다. 목적지는 치앙마이로 정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떠나는 것이었기에 여행지를 고르는 것에 노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서울만 아니면 된다. 이곳과 다른 낯선 하늘과 낯선 공기, 낯선 언어이면 어디든 상관없다.


일정은 가장 빨리 출발하는 것으로 선택했다. 이곳에 있을수록 나의 상처가 더해질 뿐이다. 골든타임을 놓쳐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으려면 가능한 한 빨리 떠나야 한다.


그렇게 예매한 3일 뒤 치앙마이행 항공권.


항공권 구매를 마치고 나니 최근까지 함께 했던 팀장에게 연락이 왔다. 주된 용건은 식사 자리 마련이었지만, 그보다는 며칠 새 달라진 회사 분위기에 대해 풀어내려는 것 같았다. 상무님 계실 때가 좋았다며 너스레를 떠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깍듯했던 목소리 톤도 예전 같지 않음이 느껴져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당분간은 시간이 안돼서. 기회가 되면 신년회로 합시다.”

회사에서의 신년회는 쉽지 않다. 조직이 새로운 임원들과의 정비를 마치고 첫 출발을 하는 시기이기에, 새해 초는 어느 때보다 업무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셔도 되시겠어요?” 더는 권하지 않는 팀장의 태도에 또다시 서운한 감정이 생겼다.


소소한 것에 마음 두지 말자.

어차피 나는 떠난다.

부디 치앙마이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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