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오래 할수록 바보가 되는 이유

회사안과 회사밖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by 경아로운 생각


근처 재래시장에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걸으면 30분 거리이기에 잠시 고민하다 마을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살짝 긴장이 되었다. 마을버스를 탄 기억이 없어 무엇으로 버스비를 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포털에서 마을버스 결제 방법을 검색하고 있는데 마침 버스가 도착했다. 타기 전 기사분께 물었다. “기사님, 신용카드 돼요?” 기사분이 내 얼굴을 쓱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며 짧게 대답했다. “돼요” 그 표정이 언짢기는 했으나 다행이라는 생각에 버스에 올라탄 후 카드를 갖다 대었다.


“아줌마~!” 빈자리를 찾아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기사분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곧이어 더 큰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 아줌마~!” 어떤 상황인지 궁금해 두리번거리다가 기사분과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아줌마~! 카드 안 찍혔어요. 다시 찍어요!” 설마 나인가 싶어 물었다. “저, 저요?” 그러고 보니 이번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래요~ 아줌마, 요금 안 찍혔다고요~” 거친 목소리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순간 마을버스 안에 있는 다른 승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모두가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나 때문에 버스가 늦게 출발하여 짜증 난다는 표정인 듯했고, 누군가는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났나 싶은 호기심 어린 눈빛인 듯했다.


순간 상황을 빨리 모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뒤돌아가 카드를 다시 태그 했다. ‘띠릭’ 카드를 결제기에 최대한 가까이 대니 소리가 들렸다. “됐나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기사분께 물으니 나를 휙 쳐다보고는 대답 없이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된 것 같았다. 안도감이 느껴졌다.


자리에 앉아있으면서도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대각선 앞자리에 계신 할머니는 아예 허리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아예 붙여야 돼” 도움을 주시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아, 네” 마지못해 대답하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불과 세 정거장 거리인데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물건을 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버스 안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별일 아닌데 부끄럽고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쉰이 넘은 나이에 마을버스 하나 제대로 타지 못할까.


나름의 이유는 있다. 직장생활을 했던 30년 동안 나의 행동반경은 늘 규칙적이고 일정했다. 대부분 집과 회사만을 오갔고 그 외 다른 곳은 출장지나 일 년에 한두 번 휴가지가 고작이었다. 가까운 곳을 순회하는 마을버스의 특성이 나의 생활 패턴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끔 이용했던 버스와 마을버스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 크기와 색상이 달라서 둘은 전혀 다른 것처럼 생각되었다. 회사에서는 응용력이 좋다는 칭찬을 종종 들었건만 회사를 나오고 나니 나의 머리도 고장이 난 것 같았다.


대기업에서 임원을 했으면 뭐하나. 이제는 마을버스 하나 제대로 타지 못하는 헛똑똑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의 지나간 30년은 그야말로 반쪽짜리였던 것이다.


언젠가 임원 시절, 먼저 임원으로 퇴직한 선배를 만나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영종도에 사시는 선배는 만나는 시간에 한 시간 가까이나 늦게 도착하였다. 헐레벌떡 이마에 땀까지 맺히며 테이블에 앉는 모습이 못마땅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하철을 반대로 탔네” 겸연쩍게 웃던 모습이 내심 불편했었는데, 역방향의 지하철을 다시 타며 발을 동동 굴렀을 선배에게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재직 중인 동료 임원들에게 말하고 싶다.

회사 밖은 회사 안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그리고,

임원으로 퇴직한 것이 특별하지 않은 것임에 놀라지 말라고.


앞으로가 걱정된다.

오늘은 마을버스지만 내일은 또 무엇이 나를 바보로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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