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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로운 생각 Nov 04. 2022

11월초 유난히 퇴직 임원들의 단톡방이 불타는 이유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궁금한 것일까

 

“3평짜리 사무실을 마련해 두었으니 거기서 지내세요”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다.

“3평짜리 사무실이요?” 되묻는데 어둡고 답답한 독방이 떠올랐다.

“한 달 있다 나가시면 됩니다” 뒤이어 말씀하셨다.     


내용인즉슨, 지금은 임원인사로 분위기가 어지러우니, 준비해둔 사무실에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지내다가 한 달이 지나면 퇴직하라는 말씀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할 퇴직을 굳이 한 달 뒤에 하라시는 것도, 그 한 달을 위해 나를 위한 사무실을 마련해주시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오고 가는 길에 만날 동료들의 수군거리는 태도와 구내식당에서 혼자인 나를 보며 흘깃거릴 선후배들의 눈빛을 참아낼 수 있을까. 외로이 지내며 느낄 고독함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순간, 잠에서 깨었다. 꿈이었다.     


해마다 10월경이면 나는 꿈을 꾼다.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원치 않는 이별을 해야만 하는 내용이었다. 꿈에서 버려졌다는 마음에 힘들어하다 깨어나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안도하기가 여러 번이다.

  

몇 년 전 내가 퇴직 통보를 받았던 시기가 10월이어서일까.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회사를 떠났던 그 순간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OOO, OOO, OOO, OOO, OOO, 올해 퇴직하는 임원 명단입니다’     


며칠 전 여전히 후배들과의 잦은 연락을 자랑하는 P상무가 올해 임원인사 결과를 몇몇 퇴직 임원 간 대화방에 전리품처럼 올렸다. 떠난 회사에 대해 더는 알고 싶지 않아 대화방 소식을 그대로 넘기거나, 실수인 것처럼 나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읽고 말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꿈을 꾼 이유가 이 때문이었을까.

  

명단에 적힌 이름을 보니, 그들이 겪을 앞으로의 일들이 그려졌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상황을 통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머리와 다르게 요동치는 감정에 힘겨워할 것이고, 시시때때로 조절되지 않는 기분에 버거워할 것이다.     

 

하루 만에 달라진 어제와 같은 사람들의 태도에 서운함이 느껴질 테고, 약속을 잡기 위해 연락을 하던 사람들이 사라져 의아할 것이다. 바로 확인되던 내가 보낸 대화방 글이 오랜 시간 읽혀지지 않고 남겨져 답답할 것이며, 세상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의 태도가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챙겨야 하는 업무가 없어져 나의 존재감을 돌아보게 될 것이며, 텅 빈 스케줄러를 보며 무언가 빠뜨리고 있는 일은 없는지 점검하게 될 것이다. 진행 중인 업무가 나 없이도 제대로 되고는 있는지 걱정을 하거나, 오는 전화를 놓치지 않았는지 쉴 새 없이 휴대전화를 확인도 할 것이다.   

   

얼굴 보기 어려웠던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식사자리가 편치 않을 것이며, 간만에 큰 아이에게 건넨 질문의 답변이 퉁명스러운 것에 당황할 것이다. 대낮에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어색할 것이고, 쉬시는 날이냐 묻는 단골 편의점 사장님의 관심이 부담되어 일부러 멀리 피해 다닐 것이다…. 지나간 퇴직 즈음의 기억이 쏜살같은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나의 이름도 이처럼 전달되어졌을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던 이유는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퇴직예정 임원 명단에서 발견한 나의 이름을 보며 흥미진진해했을 누군가에게, 회사를 떠나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점과 나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수없이 들었던 회사 나가서도 잘 살 사람이라는 칭찬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고, 나의 임원 마지막 해에 본인은 떠오르는 별이라며 우쭐대던 모 동료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의 한 번 성공이 세상에서의 두 번째 성공으로 이어질 만큼 대한민국은 쉬운 나라가 아님을 느낀다.


시간은 흐르는데, 나는 여전히 그 자리이다.

벗어나려는 의지가 사라지고 이대로 영영 주저앉게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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