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려 받은 급여 잘 굴리는 법
“저의 롤 모델이세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함께 서 있던 사원이 수줍게 말을 걸었다. 오가며 얼굴은 봐왔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처음이었다. “아, 그래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우선은 얼버무렸다. 어색함이 길어지려는 찰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 안이 거의 차 있어 더는 뭐라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까지, 잠시 전에 사원이 했던 말을 생각해 보았다. 왜 나를 롤 모델이라고 하였을까. 직급일 것이 뻔했다. 직급에서 주는 이미지가 능력 있고 멋져 보였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직장 생활하는 동안 후배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다. 일 잘하는 노하우부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까지 직급이 오를수록 받는 질문도 다양해졌다. 그중 하나가 돈에 관한 물음이었다. 30년 직장 생활을 했으면 게다가 임원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면 퇴직 후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재산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돈은 얼마나 모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모을 수 있을지, 궁금한 내용이 끝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주는 이야기가 있었다.
부장 시절이었다. 절친한 동료들과 퇴근 후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늘 그렇듯 대화의 시작은 회사와 일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상사 이야기로 넘어갔고 그 끝에 여지없이 돈 얘기가 나왔다. 모 과장이 아파트를 샀는데 얼마 올랐으며 모 대리가 오피스텔을 사서 매달 얼마의 월세를 받고 있는지 투자에 성공한 직원들 이야기를 안주삼아 이어갔다.
“주식해?” 자리에서 한바탕 떠들다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이 나와 둘만 남게 된 동료가 내게 물었다. 그리고 꺼낸 이야기는 본인의 대리 시절부터의 주식 이야기였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직장인의 희망은 주식뿐이라며, 마침 최근에 알게 된 유망종목이 있는데 궁금하면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순간 혹하였다. 출처가 금융권에 근무하는 선배라는 말에 더 신뢰가 갔다. 주식계좌도 없다는 내 말에 동료는 계좌를 만드는 법까지 알려주면서 고민해 보라고 하였다. 확실한 종목이라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본인은 이미 꽤 많은 양을 매입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때가 왔다 싶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평소 허튼소리 안 하는 동료의 말이라 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다음 날 회사의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사무실 근처 증권회사로 달려갔다. 작정한 일을 다 보고 오후 근무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끼니도 걸러야 했다. 창구 직원을 재촉하여 빠르게 주식 통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통장을 받아 드는데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마음으로는 이미 부자가 된 것 같았다.
곧바로 동료가 말한 종목을 매입하였다. 우선은 잃어도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구매를 하고 며칠 지켜본 뒤 이후의 판단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동료의 말처럼 주식을 사자마자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하루에 등락을 반복하긴 해도 결국 장이 마감된 후에는 전날보다는 꽤 올라 있었다. 당장 수중에 돈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즉시 더 많은 주식을 사들였다. 마침 적금이 만기해약된 직후여서 여유 자금도 있었다.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의 악몽은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안 보려고 해도 자꾸 그날의 주식 시세가 신경 쓰였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의 감정 상태는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오르락내리락, 시세에 맞추어 감정이 널뛰기를 하였다. 진행하는 업무가 잘 풀리지 않아도 산 종목이 빨간색으로 보여지면 기분이 좋아졌고, 아무리 상사에게 큰 칭찬을 들었어도 내 종목이 파란 글씨로 보여지면 기분이 우울해졌다. 한마디로 주식의 노예와 다름없었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처음에 올랐던 주식이 내가 대량 구매를 한 뒤에는 오히려 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매번 오를 수만은 없다는 동료의 말에 잠시 안심을 했다가도 오랫동안 상황 변화가 없자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틀림없는 종목이라던 동료의 말도 그 회사 내부에 문제가 생겨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고 아예 다른 내용으로 바뀌어 버렸다. 펄쩍 뛸 일이었다. 일을 핑계로 동료에게 연락하여 그 끝에 주식에 관해 물으면 이야기만 빙빙 돌렸다. 동료와의 관계도 슬슬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내가 산 주식은 변함이 없었다. 당시 떨어졌던 그 가격 그대로였다. 애물단지가 따로 없었다. 원금이라도 건질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생각할수록 부화만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동료의 말만 듣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행동을 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평소 도전적이고 실행력 강한 업무적 장점이 주식 투자에 있어서는 오히려 독이 된 셈이었다. 무지를 바탕으로 한 도전과 실행이 낳은 쓰디쓴 결과였다.
퇴직한 후로도 나의 재테크 방법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주식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면서 나와 반대로만 하면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움이란 성공을 통해서도 또는 그 반대의 경우로도 얻을 수 있으므로 나의 무모했던 주식 실패기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재테크 실력은 업무능력과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돈이란 참, 쫓기만 해서는 잡히지 않는 심술궂은 녀석이다.
어서 좋은 세상이 와서 주식 장에서 시원하게 빠져나오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