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나기 전에 이것부터 준비하세요
안 쓰는 집안 물건을 내다 파느라 중고마켓 앱을 열었다. 간혹 찾아보는 나의 평점, 간만에 들어가 보니 나와의 재구매 희망률이 100%가 아니었다. ‘이상하다, 늘 100%였는데….’ 신경이 쓰여 지난날을 돌아보는데 언뜻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쿵쿵쿵쿵’ 사무실 현관문 너머로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온다고 약속된 사람이 없던 터라 그냥 위층으로 올라가려나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발소리는 내 사무실 앞에서 딱 멈췄다. 순간 의아했다. '누굴까.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데...' 그런데 아뿔싸. 잠시 뒤 나는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아니, 대체 양심이 있는 겁니까?”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전날 내게서 물건을 사 간 사람이었다. 붉으락 푸르락 얼굴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3층 계단을 올라와서 그랬는지 여튼 금방 불이라도 날 것 같았다.
“아무리 중고라지만 못 쓰는 물건을 팔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까지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게서 사간 책상 2개와 의자 2개, 나는 거의 쓴 적이 없는 새것 같은 물건인데 못 쓰는 물건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리둥절하고 있을 사이도 없이 거칠게 몰아붙이는 통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야기를 정리하면, 그분이 내게 사간 책상의 다리 하나가 수평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차도 없이 버스 정거장 두 개 거리를 낑낑거리며 겨우 들고 갔는데 몹쓸 물건을 팔았다고 화를 내셨다. 그러시며 그 큰 물건을 버리지도 못하고 어찌할 거냐며 다그치기를 반복하셨다.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회사에 다니며 숱하게 고객 컴플레인을 처리했건만 그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속이 말이 아닌데 가슴에 화염 하나가 던져진 것 같았다. 사업장을 오픈한 지 1년도 안 돼 폐업 신고를 하는 것만도 서러운데 다짜고짜 맞닥뜨려진 상황에 속이 상했다.
게다가 내가 팔았던 책상은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일을 시작할 때 필요한 물품들을 가구점에서 한꺼번에 사다 둔 후 그대로 모셔만 두고 있었다. 사업이 잘됐다면 써도 여러 번 썼을 텐데 아쉽게도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그래서 다리의 수평이 안 맞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리고 어쩌면 그분이 직접 그 먼 거리를 가지고 가는 동안 뒤틀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었다. 무엇보다 빨리 상황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내가 드릴 수 있는 제안은 다 드렸지만 모두 싫다고 하셨다. 그렇게 반 시간 뒤, 그제서야 성이 풀리셨는지 다 필요 없다며 소리 지르며 나가신 후에 상황이 마무리됐다. 그 순간,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떨어졌다. 떨어진 눈물이 그대로 얼 것만 같았다. 전기료 걱정에 보일러 없이 생활하기가 여러 날이었다.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방금 전 일 때문인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정리하게 된 사업장 때문인지, 아니면 몇 년 전 갑작스럽게 회사를 떠난 이유 때문인지... 그저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울고, 울고, 또 우는 일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퇴직 준비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해 그만큼의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자격증부터 따라 하고 또 누군가는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 한다. 만약 누군가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려 한다. 퇴직 전에 진짜 해야 할 준비, 그것은 마음의 준비이다.
회사를 나오기 전 어떤 준비를 할지라도 생각처럼 되는 법이란 없다. 자격증을 딴들 활용할 만한 직장을 구하는 게 쉽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찾은 들 그게 유용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 어떤 준비를 했어도 처음부터 계획처럼 흘러가기란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준비가 마음의 준비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는 마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속상해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하루종일 혼자 시간을 보내도 외로워하지 않는 마음.
퇴직 후에는 자기와의 싸움이 많아진다. 또 다른 차원의 준비가 필요한 이유이다. 세상을 향한 숱한 준비보다 나를 향한 단 하나의 준비. 머지않아 회사를 떠나실 분들이라면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