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세상이 뒤통수를 친 날

엄마가 아프다는 전화가 왔다

by 우당탕탕엄마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보통 빡치면 운다.
그날 느꼈던 여러 감정 중에서도 빡침이 가장 컸던 것 같다.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남편이 놀라 묻는다.
"왜 그래?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갓 두돌이 지난 둘째는 "엄마 우지마아~" 하며 작은 손으로 등을 토닥였다.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 앞에서 더 이상 울 수가 없어 "이따가 애들 자면 얘기할게." 하고는 눈물을 닦았다.

그날은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부담도 되었지만,
'그래 그 동안 휴직도 길었고, 단축근무도 오래 했었지. 올 해는 일에 좀 집중해보자' 다짐하며 퇴근하던 길이었다.

그때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한 달간 아이들을 봐주시다 잠시 고향으로 내려갔던 엄마가 갑자기 몸이 안좋아 응급실로 갔다는 전화였다.
급체 같은데 증상이 심해 원인 파악을 위해 검사 중이라고 했는데,

그 다음 아빠의 한마디가 날아와 마음 깊이 꽂혔다.
"엄마가 서울만 다녀오면 몸이 많이 안좋다. 엄마 이제 서울 안 보낼테니 그렇게 알아라."

순간 마음 한켠이 쿵 내려앉았다.
'이게 무슨 말이야? 첫째 입학 이제 한 달 남았는데? 이제 와서 이러면 어떡해?'
당혹감과 함께 죄책감도 밀려왔다.
'엄마가 아프다는데 내 생각부터 하다니. 진짜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네...'


알량한 죄책감은 현실적인 불안에 곧 사라지고 말았다.
'근데 엄마 못 오면 어떡하지? 돌봄 신청도 안해두었는데.. 남편이 휴직 가능한가? 아니면 나 또 휴직해야해?'


곧이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 아픈게 나 때문이야? 아빠는 왜 나한테 화내. 평소에 엄마 잘 챙기지도 않으면서. 애들 보느라 일하느라 제일 힘든건 난데.'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지만, 빠져있을 시간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마음 한켠에 접어두고 아이들을 씻기고 재웠다.

남편은 장모님이 못 오시면 도우미를 구하자 말했다.
하지만 급하게 도우미를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뿐더러,

엄마와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알고 있었다.
엄마는 조금만 괜찮아지면 당연히 약속한대로 서울로 올 거란걸.

그것보다 내가 처한 현실이 어이없고 화가났다.
도우미든 엄마든 아이들을 케어하려면 성인 한 명의 온전한 노동이 필요했다.
'일을 하기 위해 아이들 양육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것인가?'
이 질문에 복직이라는 답을 내렸는데,

그건 정답이 아니라며 케케묵은 질문지가 다시 주어진 것 같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하고 싶은 일 하라며..'
여성의 사회진출이 진정 여성의 해방이 맞는가 묻던 질문이 떠올랐다.
"세상이 네 맘대로 될 것 같니?"
뒤통수를 세게 치는 것 같았다.

"급체증상이신거면 며칠 뒤면 괜찮아지실거야.
회복하시고 3월에 장모님이 오신다면 걱정 없지 뭐.
오셔서 너무 무리하시지 않게 우리가 더 열심히 하자."
맥아리없지만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는 남편의 위로를 끝으로 나의 긴긴 성토는 끝이 났지만,
마음 한구석의 찝찝함은 남아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천사같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어느새 커다래진 첫째와 마냥 아기 같은 둘째를 양팔로 꼭 껴안으니
날 섰던 마음이 조금 녹아내리는 듯 했다.
'너희들을 이런 복잡한 마음으로 키우고 싶진 않았는데..'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약속대로 엄마는 아이들을 봐주고 계신다.
달라진 것은 급하게 첫째의 돌봄 신청을 했다는 것.
어릴때부터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게 했던게 미안해
여유있는 초등 생활을 주고 싶었는데, 아이는 9-6 스케줄을 유지하게 되었다.

다행히 아직은 잘 적응해 다니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투정부려봐야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고 감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을 선택한 엄마의 아이로 태어나게 한 것이 미안하고 대견스럽다.
아니, 나의 정신건강과 가벼운 출근길을 위해 아이를 대견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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