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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균 Oct 31. 2016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The Course of Love

The Course of Love


이 책의 원재는 사랑의 코스이지만 한글로 출판된 제목은 "낭만적 연애와 그 이후의 일상"이다. 

책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 난 EBS 다큐멘터리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3부작 시리즈 물을 보았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과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직감하고 책의 주요 내용과 다큐멘터리의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정리해 나갔다


먼저 통계청의 팩트 접근이 필요하다. 

2016년 현재 신혼부부의 결혼비용(주택구입 시) 은 약 2억 7천 만원

먼저 예식장과 예단비 약 8천만 원, 그리고 집값 1억 9천만 원

그리고 작년 한 해 2015년 30만 쌍이 결혼을 하고 10만 쌍이 이혼을 했다. 


더불어 중년 이혼율은 해가 거듭될수록 매년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은 왜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뒤로하고 이혼을 선택하는가?이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식어서?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 익어가는 과정에서 발효의 부작용인가? 저 마다 가정사가 다양하겠지만 한 번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혼의 비중은 40대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50대라고 한다 그 두 세대의 합이 약 50% 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부부의 35.1%는 섹스리스 부부이다.

여기서 우린 섹스에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누다'라고 칭하는데 수줍어할 일만은 아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단지 섹스를 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인정, 애정, 감사, 내맡김)을 물리적 행위로 옮긴 것이다.


우리는 '흥분'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말이 암시하는 바는 드디어 우리의 내밀한 자아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다. 연인이 나의 본모습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격려하고 인정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발견의 기쁨이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요소들은 기이하고 비논리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대가 날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으며 왠지 우리는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그의 친절함이 내가 흥분을 느낄만한 많은 암시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갈망을 공유하고 충족시키는 막간의 짧은 유토피아를 제공하는 흥분을 느끼는 사이.이것이 이 모든 러브게임이 그토록 짜릿해지는 사랑의 진짜 심리적 요인이다. 그런데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그곳에서부터 생각을 달리하는 것 같다.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결혼하는가?

이 부분에 대한 알랭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이후의 일상"에서 적절한 답변을 제시하는 듯하다. 


우리는 연애를 통해 상대와 나를 같은 하늘을 보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동결시킨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행위를 통해 황홀한 기분이 영원해 지길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으로 그 날의 그리고 모든 우리의 사랑을 '동결' 시키거나 보존할 수 없다는 걸 결혼하고 난 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서 나 알게 된다. 

낭만적 연애와 그 이후의 일상에서는 결혼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다른 사람이 내 영혼의 짝이라는 느낌. 이 확신은 아주 순식간에 찾아올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다. 이름을 알 필요도 없다. 객관적 지식은 끼어들 틈이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직감"이다. 더욱 정확하고 존중할 가치가 있는 것만 같은 자발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일 때 그때를 지칭하는 건 아닐까? 

매혹의 일련적인 요소들은 순간순간 존재하고 그 순간이 쌓여 공고해진다. 발에 매달려 끌려가는 샌들을 보며 그녀의 작고 아름다운 발에 매혹되기도 하고, 웃통을 벗은 몸에 근육은 없지만 전체적 비율이 탁월해 보이는 몸매를 보면서 우리는 그 순간이 매혹이 되고 그것을 감정의 저금통에 저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다른 나라의 결혼은 무엇이 우리와 같고 무엇이 다른가? 

통계적 자료를 본다면 결혼은 불안하고 위험한 계약관계인가?


아이를 키워본 집에서는 현재의 가정 시스템은 우스갯소리로 자녀교육을 위한 경제 단위로 전략한 지 오래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커가는 아이들 앞에서 우린 무력하게 돈을 벌어다 오는 기계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Daniel del orfano paint


우리는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가?

그리고 부부의 갈등은 어떻게 시작이 되고

어떻게 사랑은 끝이 나는가?

이 문제에 대한 가정법원이 말하는 남편의 항변은 늘 한결같다.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이냐? 내가 때리기를 했냐?, 도박을 한 것도 아니고,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닌데"....


여자들 내면에는 수십 년 동안 주고받은 상처가 많다는 것.

특히 결혼 초기부터 쌓여오는 것 바로 그것을 남자는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부부관계 만족도는 20대는 70%, 30대는 60%, 40대는 50%, 50대는 40% 라고 나와있다.

법원에 와서 대부분의 부부가 하는 말이 

"이 사람하고는 성격이 너무 차이가 나서 같이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44%가 통계청에서는 성격차이로 헤어졌다는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전문가의 진단은 사뭇 틀리다.

부부 사이에 성격 차이가 없는 부부는 거의 없고 이혼의 원인은 성격 차이가 아니라 의사소통 방식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한 연구기관인 Love Lab이라는 연구소에서 약 3천 쌍의 결혼한 부부의 대화를 녹음하고 녹화하여 비교해본 결과 (1972년부터 36년 동안 진행)  이혼한 부부들은 한결같이 대화방식의 문제가 있었다.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

여자 : 당신은 어떻게 된 사람이 허구한 날 일요일에 잠 만 자? (비난)

남자 : 잠 좀 자자, 회사가 얼마나 바쁜 줄 알아? 나도 쉬고 싶다고 (방어)

남자 : 맨날 살림만 하는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 (경멸)

여자 : 잘났어 넌 정글이고 집안일은 일도 아냐? (담쌓기)



관계를 망치는 대부분의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94%) 

책 속에서 우리는 좀 더 정확한 답변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삶의 중요한 영역들 더군다나 자신의 직장이나 일에서는 복잡성을 감안하고 타인의 이견을 수용하고 참을성 있게 해결해 나간다. 그러나 가정 에서만큼은 치명적일 정도로 안이한 가정을 세우곤 하며, 이 때문에 협상이 오래 걸리는데 대해 날카로운 반감이 생긴다. 


사소한 문제로 인해 타툼이 발생한 후 무슨 일이냐는 서로의 질문에 그 유명한 "아무것도 아냐"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상대는 "나 참...적어도 왜 그러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냐?"라고 그 유명한 응수를 놓는다. 그러면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그 유명한 "그냥 나 좀 내버려둬.." 이런 답변이 되돌이표 처름 되돌아온다.


삐짐과 토라짐의 핵심은 강한 분노의 이유를 상대와 소통하지 않으려는 강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 상대가 소통의 방법을 모른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상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는 것 자체에 대해 모욕을 느끼는 것이다.

삐걱대고 할퀴는 투의 말들은 노골적인 분노 보다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한다.



사실 그러면서 상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토라짐은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리의 배우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대화의 틀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당신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야. 그래서 당신 마음속 기이한 구석구석들을 알고 싶고 받아들이고자 노력하고 싶어. 당신이 바라는 모든 일을 하거나 당신이 바라는 모든 존재가 되진 못할 거야.


당신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우리가 자신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를 서로 용기 있게 얘기하는 그런 사람들이 될 수는 있다고 믿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침묵과 거짓말인데 그건 사랑의 진짜 적이잖아.

내가 가장 원하는 건 나 혼자서 당신을 만족시키는 거야. 


그러나 보통 이런 이야기는 어느 누가 먼저 꺼내지 않는다. 만약 이러한 노력으로 이야기를 시도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의 엔진실에는 경고등은 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부 오해에 대해 체념하고, 용기가 없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설명을 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상대방을 무의식적으로 탓하는것에 약간 익숙해져 있다.



우리가 항상 서로의 배우자나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늘 이성적일 수가 있을까? 


우리가 진정으로 익혀야 하는 사랑의 기술은 우리 스스로 한두 가지 면에서 가끔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가알아체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Daniel del orfano paint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퍼붓는 비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때로는 부당한 요구를 하는 행위들.딱히 이치에 닿지 않을때가 많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르친다'는 개념은 건방지고 부적합하고 몹시 해롭게 느껴진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또는 그녀가 변화하기 바란다는 말은 꺼낼 수가 없다. 이러한 낭만주의의 가치는 갓 시작한 관계 안에서 처음 몇 달간은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다가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퍼붓는 비난들이 잔소리로 변질되고, 때론 인격적 모욕도 서슴치 않을 때 점차 관계의 취약성은 짙어만 간다는걸 자주 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인격을 발전시키고자 진심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이 가르친다라는 건방진 개념이 아니고 커뮤니케이션의 호흡을 같이 하려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말이다.


남편이든 아내든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돈의 핵심적 의미 그리고 돈과 성취의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이해시키는 것이 두렵고, 상대가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돈)을 안겨줄 능력이 없어서 무력 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상대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절실히 느끼지만 상대를 그렇게 인도할 능력이 잃었다고 판단될 때 우리의 행동은 매우 중요해진다. 




[아이들..]

아이의 출생은 우리에게 중요한 인생의 목표를 부여한다. 바로 어른 세계의 진짜 척도 와 불평등한 세상 그리고 그것을 혜쳐나가기 위한 불편한 고독을 이해하고 잘 살아갈수 있도록 무한한 너그러움으로 아이를 대할 것이다. 아이가 커가는 동안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며 아이가 칭얼거리기라도 하면 아이를 달랜다. 불행하게도 달래기 더 이상 먹히지 않으면 우린서로 옥신각신하며 싸우기 까지 한다. 한 인간으로서 다른 한 인간에게 이렇게 해줘야 한다는 사실이 세삼 경외스럽기도 하다. 


우리는 아이들을 대할때 '다정함'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다정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위에 놓는다. 우리가 주변에서  이상하게 성장한 아이들을 보며 느끼게되는 공통점은  사랑이 부족해서 라고 믿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때문에 아이가 어떠한 질문을 해도 세심하게 대답하고 포옹으로 스킨쉽을 일으키고 저녁에 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며 실수를 해도 넘어가고 장남감을 잃어버려도 다 용서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것에 대해 피곤함을 느낀다. 


[외도]

현대사회의 부부관계는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고통의 평등을 원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괴로움의 복용량이 그나 그녀에 비해 많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불행은 주관적으로 폭포처름 다가오게 되고 상대방이 얼마나 좋은 친구였었는지 그리고 타인의 어려움에 얼마나 깊이 본능적으로 공감해 왔었는지 잃어버리고 만다. 


아이문제,재정문제,휴가문제,식구들문제... 하나 같이 생각과 의견들이 사사건건 시비꺼리가 생간다. 그러는 과정에서 섹스 역시 특별한 자세를 요구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행위를 요구할때 관대하고 다정하게 대하지 않은 상대를 보며 우리는 그나 그녀 대신 완전한 타인을 고려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쉬울수도 있다고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시작은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년의 유혹자 중년의 사춘기 이 시작상태를 나타내는 말들은 부지기수로 많다.그러나 중년의 유혹자가 보이는 솔직함이란 자신감이나 오만함의 문제가 아니다. 권태로운 부부생활에 대한 절망감의 탈출시도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타인에 대한 성욕에의 집착일수도 있다. 


자신의 매력에 나이가 들수록 의구심을 품고 타인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존재인지를 우리는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계속 알아내야만 하는 애처롭고도 불안정한 남자들이 벌일수 있는 이 행위들은 사실 알고보면 참으로 한정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 바람을 피운다는 것. 그것은 그냥 나쁜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고 지켜야 할 모든것들을 위반하는 상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극악행위라고 규정 지을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또는 그녀는 최고의 친구이자,연인이며,공동 양육자 이자, 공동 운전기사이고 인생의 가장 성공적인 사업 파트너 이다. 이런 사람에게 바람을 피운다는 행위는 결혼이 파탄으로 가는것이 아닌가?


우린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가끔 욕망을 느끼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있을까? 쾌락과 자유가 넘치는 환경에서 자란 우리가 신이나 어떤 높은 계율에 따라서 살아야만 한다면 그것만큼 슬픈일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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