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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균 Aug 22. 2017

서양미술 개론

예술의 전체사조를 한 장으로 요약하다.

미술사에 대한 전체 구성도


미술사의 흐름도


시간의 형식을 따르는 예술과 공간의 형식을 따르는 예술.


시간의 역사를 따르는 예술은 음악 무용이고  공간의 형식을 따르는 예술은 회화,조각,건축이다.

음악을 듣기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요구된다. 음악은 시간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반면 조각작품을 감상 할때는 그 작품에 대한 느낌이 직관적으로 온다.


예술적 진리에 따른 입장.

고전주의

고전주의는 이성을 통해 그림을 그리려는 화풍이다. 조화, 균형, 비례, 법칙 을 강조한다. 

그런면에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절대주의 적 특성을 갖는다.


낭만주의 

개인의 내면과 개성을 존중해 화가의 주관적 표현방식을 중시하고 격정적이고 정서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런면에서 절대적 진리에 저항하는 상대주의적 측면을 갖는다. 


현대미술

현대미술은 그 폭이 너무 넓고 다양해서 규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예전것들에 대한 거부와 새로운 것들에 대한 추구로 압축해볼수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과거 예술에 대한 해체를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회의주의적 측면을 갖는다.미술의 역사는 위 3가지로 구분해도 충분하다. 좀더 세분화 해서 나누어 본다면 고대,중세,르네상스, 초기근대, 근대, 현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대미술- 고대 그리스 로마미술

기원전 4천년 경 이집트에 이르면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육체를 떠나 다른 삶을 누린다고 믿었는데 이러한 사후관은 이집트 미술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대신 영원성을 담아내도록 이끌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의 사명은 죽은 자의 영혼이 생활하기 위한 묘실 안에 현세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이집트의 벽화, 피라미드, 스핑크스 이러한 영원성을 반영한 종교적 미술작품의 예다.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하는 본격적인 작품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다. 그리스에 와서 예술은 독자적인 가치로서 목적 그 자체였던 것이다.고대 그리스의 미술작품은 조각이나 건축에서 성과가 컸다. 파르테논신전이나 에렉테움 신전이 이를 대표한다. 그리스 미술이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알렉산드로 대왕의 대제국 건술이었다.알렉산드로는 그리스 주변에 있던 마케도니아라는 국가의 왕으로 짧은 재위기간 동안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특히 알렉산드로의 스승이 아리스토텔레스였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에 의해 건설된 대제국의 문화를 헬레니즘이라고 하는데, 헬레니즘을 번역하면  그리스 문화와 같은 문화 정도가 될것이다. 


대제국의 헬레니즘문화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서른세살에 요절하면서 와해되어갔고, 결국 신생제국으로 떠오르든 로마에 흡수되었다.이탈리아 반도의 작은 마을에서 출발한 로마는 1세기 무렵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전역을 지배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정복에 성공함으로써 평소에 갖고 있었던 그리스 미술에 대한 절대적인 동경을 현실에서 단번에 접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중세미술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 → 로마네스크 → 고딕 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움의 이데아 를 추구했던 그리스 로마 미술은 중세가 되면서 자취를 감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볼수 있는데  우선 중세 초기의 환경적 요인이 있다. 중세 초기라 할 수 있는 5백여 년간은 전쟁과 약탈이 반복되는 정치적 혼란기였다.  두 번째 이유는 내적인 측면으로 그리스도교의 탄생 배경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절대적이고 베타적인 특성은 종교와 관련되지 않은 에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중세 초기 미술은 단지 문맹자들에게 신의 섭리와 교리를 전달하기 위한 보조 수단이었다. 11세기 후반에 그리스도교가 유럽전역에 퍼지자 교회건축이 빈번해지고 이에 따라 건축술과 예술이 함게 발전한다. 다시 건축과 미술양식을 로마네스크 라고 한다. - 로마풍 정도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

단단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인 것 대표적인 것으로 피사의 성당. 우선 종교적으로 볼때 당시의 교회는 지상에 만든 신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졌다.교회라는 공간은 신이 내제 할수 있었던 것으로, 약한 세계로부터 종교적 이념을 보호하는 전투적 공간이였다. 그런 까닭에 건축은 성과 같은 모습을 하였다.

건축상은 아직 건축공법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을 높게 올리기 위해서는 두꺼운 벽 때문에 창문은 좁고 작게 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실내는 어둡고 차분한 느낌을 낼수 밖에 없었다. 


11,12세기 2백여년 동안 로마네스크 양식이 유행했다면 이후 2백년 간은 고딕 양식이 유행했다. 고딕은 건축술 발전과 함께 벽의 뚜께는 얇아졌고 첨탑들이 등장했다. 벽이 얇아 지면서 큰 창문을 낼수 있게 되었고 유리에 장식하는 것도 크고 화려하게 되었다. 고딕 양식의 이러한 특징은 실내에 들어선 사람에게 로마네스크 건축과는 상반된 분위기를 풍겼다. 정면에는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들어왔다. 이런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천국에 대한 동경과 신의 영광에 대한 감정의 고양을 경험했을 것이다. 고딕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샤르트르 대성당이나 노트르담 대성당 있고 한국의 명동성당이 고딕 양식을 띄고있다. 

신의 영광과 권이를 드러내거나 교회의 교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예술이 사용되었다. 다만 초기 그리스도교적 미술을 지나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을 거치면서 미술적인 요소가 반영되고 확장되었다. 



여기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에 나온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의 차이점을 조금 더 알아보자.


12세기 노르만 양식의 교회 로마네스크 양식 


이런 교회들이 주는 내부와 외부의 전체적인 인상은 중후한 힘이다. 이런 교회 건물에는 장식도 거의 없고 창문도 몇 개밖에 없었으며 중세의 성체를 연상시키는 견고하고 잇들은 벽과 탑뿐이었다. 이러한 건물들은 '전투적인 교회' 바로 지상에서 최후의 심판날 승리의 여명이 밝을 때까지 암흑의 세력과 싸우는 것이 교회의 의무라는 관념을 표현하는 건축물들이다.  어쩌면 12세기가 십자군의 세기였기 때문에 이때 교회의 승리로 고딕양식들이 대거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고딕양식의 탄생

13세기 즉 1200년대에 고딕양식이 로마네스크 양식 다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육중하고 엄격한 건축물들만을 보아온 사람들이 이와같은 건물에 들어와서 받았을 인상을 우리로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과거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은 아마도 그 힘과 권세에 있어서 악의 공격에 대해서 피난처를 제공해 주는 '전투적인 교회' 라는 인상을 주었지만 이 새로운 고딕 성당들은 신자들에게 전혀 다른 세계를 엿보게 해주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신자들은 설교와 찬송가를 통해 진주로 만든 문과 값진 보석, 순금과 투명한 유리로 된 천상의 예루살렘(요한계시록 21장) 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한 환상의 광경이 하늘로 부터 지상에 내려온 것이다. 

그 특징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들은 벽은 차갑고 가까이 하기 어렵게 만들어 져 있지만 고딕양식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성당의 벽은 루비나 에메랄드처름 빛나는 스테인글라스 와 황금빛으로 만들고 이 모든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데 넋을 잃은 신자들은 물질세계를 초월한 별세계의 신비를 이해하게 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 기적과 같은 건물들은 아주 멀리서 보아도 마치 하늘의 영광을 대변하는 것처름 보인다. 


사르트르 대성당


사르트르 대성당의 성상들은 살아있는 사람처름 묘사해서 만들었다. 구약성경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수 있게 만들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앞에 세우고 있는 늙은 사람이 아브라함 임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고 모세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는 십계명이 세겨진 명판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하는데 사용했던 뱀이 감긴 기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왼쪽에 있는 사람은 빵과 포도주를 가져온 살렘의 왕 멜기세덱이다. 


고딕시대의 조각들은 더 이상 그들이 무엇을 표현하느냐 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가진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데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스의 위대한 각성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연을 다시한번 모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하나의 형상을 실감나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자연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리스 미술과 고딕미술 즉 신전미술과 성당 미술 사이에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미술가들은 아름다운 육체의 이미지를 어떻게 형상화하느냐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고딕 미술가들에게는 이 모든 방법과 기교가 하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며 그 목적은 성경의 이야기를 한층 더 감동적으로 그리고 신빙성있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신자들이 그것으로 부터 위안과 교화를 받기 우ㅟ해서 애를 썻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근육을 기술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죽어가는 성모를 쳐다보는 그의 태도가 훨씬 더 중요했음에 틀림없다.


다시말해 인물상들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미술가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대였는지를 말해준다.



르네상스 미술 -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로코코

르네상스는 중세의 신 중심 세계관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시작되었다.중세의 주인공인 왕과 영주들은 물질적으로 장원을 소유함으로써 지배권력을 획득하고, 정신적으로는 신으로부터 지배의 정당성을 얻었다. 이들과 대립하며 성장한 부르주아는 새로운 생산수단으로서 공장을 소유하면서 물질적 측면에서 권력 기반을 확보하였으나 정신적 측면에서는 아직 종교에 귀속되어 있었다. 부르주아는 신을 대체할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탐색했고, 결국 인간의 이성에서 그 가능성을 찾았다. 교회와 유일신에 대항하는 인간적 가치가 필요했던 부르주아들은 고대 사회로 관심을 돌렸고, 고대 문학들을 재탐색하는 분위기가 학계와 예술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를 르네상스 라고 한다. 


르네상스는 '부활', '다시 태어남' 을 의미 하는데 여기서의 부활과 재싱은 고대 문화의 부활과 재생을 말하며, 동시에 인간적 가치의 부활과 재생을 의미한다. 이탈리에서 시작한 이 문예부흥운동 은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다만 14세기 부터 16세기 사이에 일어났던 르네상스는 과도기적 측면이 컷다.중세를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종교적 측면에서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었고, 경제적 측면에서도 자본주의를 도입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한 가시적인 계급적 변화는 나타나자 않았다. 따라서 르네상스를 중세의 마지막에 등장한 문화로 평가할 것이냐?, 아니면 근대의 시작으로 볼것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다만 우리는 중세와 근데 사이에 르네상스가 있어서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변화가 시도되었다는 정도만 기억하자. 


르네상스의 미술은 어떤 시기보다도 많은 천재가 등장했다. 이 시기 작품들은 이성적 규칙을 통해 객관적인 정확성을 토대로 창작되었고, 동시에 조화와 균형이라는 미의 이념이 이상적으로 구현되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는 레이나르도 다빈치로 그는 15세기 중반 부터 16세기 초까지 활동했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와 경쟁 관계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단번에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린 <피에타> 가 있다. 피에타란 자비를 배푸소서 라는 이탈리어다. 그 외에도 다비드상 과 모세상 이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르네상스 미술은 17세기가 되면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규칙적인 측면에 대한 반발에 직면한다.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하는 상대적인 화풍이 등장한 것이다.이를 바로크 라고 한다. 


레오나르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티는 나의 서양미술사 독후감을 참고하기 바란다.


바로크, 로코코 미술

14-16 세기의 르네상스 미술 이후 17세기와 18세기 는 각각 바로크와 로코코의 시대였다. 르네상스 미술이 이성적인 측면이 강했다면 바로크와 로코코는 감성에 호소하는 예술 사조였다. 다만 바로크는 무겁고 어두운 반면 , 로코코는 밝고 가볍다 는 뜻이다. 우선 바로크는 포르투칼어로 "삐뚤어진 진주" 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르네상스 미술에 비해 단정하지 않고 우하하지 않다는 경멸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로코코는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전 유럽에서 유행했는데 그것은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무렵 왕권이 약화되고 부르주아나 귀족이 향유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우리가 영화에서 프랑스의 화려하고 장식이 많으며 향락적인 사교계를 흔히 볼수 있는데 그때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는 시기가 로코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초기 근대 미술

신고전주의 와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르네상스 이후 근대미술은 크게 초기 근대와 후기 근대로 구분하여 미술적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초기근대 미술은 로코코의 퇴폐미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예술의 뿌리가 되는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로 돌아가고자 했기에 신 고전주의 로 불린다.사실 신고전주의는 화풍에 있어서는 새로울게 없다. 그리스 미술 로의 복귀가 이들이 지향하는 추구점이다. 예술사에서는 이성과 감정 절대주의와 상대주의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이성에 대한 반대가 바로크와 로코코의 감성을 낳고 이에 대한 반대가 다시 신고전주의의 이성 추구를 낳은것이다.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는 다비드 와 앵그르 다 그의 뛰어난 재능은 프랑스 전체의 미술적 흐름을 고전적이고 엄숙한 분위기로 바꾸는데 기여했다. <마라의 죽음> , <소크라테스의 죽음>, 앵그르는 <그랑 오달리스크> 가 있다.


낭만주의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의 이성적이고 엄숙하며 절대적인 측면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신고전주의가 고대를 모방하고 재현하려고 할 뿐, 개인의 감성과 주관의 탁월성을 소홀히 했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창작자의 주관과 표현을 강조하고 자유로운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그림의 대상으로 하는 낭만주의 미술이 탄생했다. 감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바로크, 로코코 와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화려하고 장식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보다는 화가의 강렬한 내면을 외부세계에 투영한다는 측면이 강했다. 

작가의 주관적 해석과 내면의 감성을 중시하는 까닭에 낭만주의는 자연스럽게 작가의 천재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격정적이고 창백하며 고뇌로 가득 찬 전형적인 천재의 이미지는 이때 확립된다.  


낭만주의 미술의 창시자 격인 인물은 제리코다 그의 작품 <메듀사호의 뗏목> 은 당시 미술계의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당시 실제사건을 소재로 격렬한 움직임, 강렬한 명암대비 색채효과 그리고 극적인 상황등을 모범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제리코의 친구이자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들라크루아는 후에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대표작은 너무도 유명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며, 낭만주의의 선언서 처름 여겨지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도 그의 작품이다. 



후기 근대 미술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사실주의

사실주의는 리얼리즘과 같은 말로 낭만주의가 보여주는 극적이고 과장된 미적양식에 대한 저항으로 부터 탄생했다. 낭만주의가 화가의 상상력과 이상적인 세계의 창조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사실주의는 사실적 그림을 그리길 요구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이 다양하다는데 잇다. 


무엇이 사실인가? 

눈에 보이는 자연과 인물을 단지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사실인가? 

그 것만은 아닐것이다. 그릴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 사실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남루한 현실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사실 이 되는 것이다. 사실주의 이전의 그림들은 역사적인 영웅들을 용맹하게 그린다거나, 도자기 같은 피부를 가진 누드의 여신을 그린다거나 한껏 치장한 귀족을 아름답게 그렸다. 사실주의 미술은 진짜 사실을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노동자의 남루한 삶이나 옆집의 가난한 이웃, 노동의 고됨을 가감없이 묘사했다.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은 쿠르베르, 사실주의의 시작을 알린 인물인 동시에 사실주의 미술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오르낭의 매장> 당시의 사실주의는 예술에서 배제되었던 일상을 예술의 소재로 데뷔시켰고, 예술계와 대중에게 예술의 의미를 새롭게 고민하게 했다. 


인상주의

작가의 주관과 감성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인상주의를 낭만주의와 같이 상대주의적 미술로 분류했으나 인상주의는 고전주의뿐만 아니라 낭만주의에 대해서도 저항하며 탄생했다.


19세기말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탄생한 인상주의도 사실주의 처름 낭만주의의 비현실적이고 과장적인 화풍을 거부하고 일상적인 삶과 자연을 그려내려고 했다. 다만 사실주의가 민중의 가난과 노동이라는 정치, 경제적인 측면의 소재를 채택함으로서 이념적인 측면이 드러난다면, 인상주의는 단지 눈에 '보이는 것' 을 가감 없이 그려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지금 이 순간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려 했다.인상주의 화풍의 시작이면서 완성이였던 인물은 '모네' 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인상, 해돋이> , <수련, 연작>,<일본식 정원> 이 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해가 뜨는 장면이 우리에게 주는 인상을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전기 인상주의 단계를 거쳐 독자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인상주의를 넘어서려고 노력한 화가 집단을, 인상주의 이후에 나타난 화가들이라는 의미로 후기 인상파 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는 고흐, 고갱, 세잔 등이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고희와 고갱이 특별히 인기가 많다. 특히 고흐는 삶의 처절함과 그림의 독특하고 화려한 색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화가들 중 미술사적 측면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다룰 인물은 세잔이다. 세잔은 근대를 마무리하고 현대미술을 탄생시키는데 중요한 역활을 한 인물이다. 세잔의 <정물화> 는 관점이 어긋나 보인다. 이 지점에서 세잔은 인상파와 결별한다.

 

인상주의가 순간적인 이미지를 빠르게 그릴때 당연히 전제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단일한 시선이다 . 인상주의를 포함한 기존의 모든 그림은 한 명의 화가의 관점에서 본 1인칭 세계인 것이다. 이때의 주인공은 화가가 된다. 


회화는 화가 중심의 세계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세잔이 그리고자 한 것은 사물 그 자체의 본질로, 그림의 주인공은 사물의 본질이 된다. 생각해보면 실제 사물은 관찰자의 시선과 독립해서 존재한다. 따라서 세잔이 생각할때 그림에 존재하는 화가의 단일한 시선은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정말 중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구성적 측면에서의 사물의 형태였다.


현대미술 - 입체파와 추상파.

현대미술을 단순화 해서 한마디로 정리하면 

새로움에 대한 강박

정도가 될 것이다.

미술가들은 새로움을 찾기 위해 그림의 대상을 변화시켜왔다. 종교와 영웅 에서 상상과 주변으로 , 그리고 현실과 인상으로 변화되었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종류의 대상은 없어 보인다.여기서 부터 현대미술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화가가 보는 시점으로 사물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화가의 단일 시점을 포기하고 다양한 시점에서 본 사물의 모습을 2차원의 화폭에 담아내기로 했다. 즉 앞과 옆과 뒤를 모두 하나의 화폭에 담는 그림을 탄생시킨 것이다. 현대주의 미술의 그림은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가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아름다움의 추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림은 기괴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새로운 시각에 크게 공감하는 젊은 화가들이 존재했고 그 들은 이러한 그림을 입체주의라고 불렀다. 


사물을 바라보는 단일한 시점을 유지하는 것이 예술의 필수조건이 아니었던 것처름, 그림에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하다는 법은 없다. 대상의 존재는 예술의 필수 조건이 아니다. 그래서 X씨는 실재한 대상도 상상의 대상도 모두 없애버리고 그리는 대상이 없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폭에는 이제 색과 선과 면들의 유희만이 남았다. 이로써 추상미술이 탄생한 것이다. 


입체파

큐비즘이라고도 부르는 입체파는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신 운동이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세잔이 사물의 기하학적 분석과 다양한 시가점의 적용을 도입한 이래로,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 큐비즘이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피카소가 있다.

피카소는 새로운 미술 양식을 연 세계적인 예술가로 인정받는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입체파의 시작을 선언하는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 과 <게르니카> 가 있다. 특히 게르니카는 자신의 고국 스폐인이 내전을 치르고있던 당시에 나치가 게르니카 지역을 폭격한 사건을 담고 있다. 


추상미술 

입체주의는 그림의 대상을 분석을 하고 새롭게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였으나, 어쨌든 특정 대상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구상미술의 오랜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무렵 아예 그림의 대상을 그림에서 제거하는 추상미술의 화풍이 탄생했다. 추상미술의 탄생으로 미술은 이제 구상미술과 추상미술로 구분되었다.


현대미술에서 처음으로 순수추상미술의 시작으로 평가되는 화가는 러시아 출생의 칸딘스키다. 그는 실제하는 대상을 화폭에서 완벽하게 제거하고 색의 덩어리와 단순한 선과 면으로 시각적 효과를 강조했다. 


정리하면 

입체주의는 그림의 대상을 분석하고 새롭게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고,

추상미술은 실재하는 대상을 완벽하게 제거하고, 색의 덩어리와 단순한 선과 면으로 시각적 효과를 강조했다.

 

오늘날의 미술 - 예술의 주체를 흔들다.

현대 미술의 주요한 두 화풍으로서 입체주의와 추상미술을 살펴 보았다. 미술의 역사에서 새로움을 찾는 시도는 언제나 미술의 대상과 관련되어 있었다.대상의 선택과 표현의 역사가 미술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미술의 본질인 새로움에 대한 욕망은 남아있다. 

이제 현대 에술가들은 그동안 작품밖에 있던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화가를 예술작품의일부로 끌어들인다. 오늘날의미술은 미술의 주체를 흔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미술을 하는 행위를 에술로 포함하는 예술사적 맥락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단정적으로 정리한다면 현대 예술은 미의 추구 라기 보다는 새로움의 추구 다. 그리고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예술의 대상을 변화시켰고 다음으로 예술의 주쳬를 변화시켰다.아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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