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문맹

공부에 관한 최소한의 공부(01)

by 김똑띠

어느 형부의 어느 처제


나이 차가 꽤 나는 처제가 있습니다. 아내와 연애를 시작했던 시절에 처제는 중학교 2학년이었지요. 곧 고등학생이 된다는 조건 하나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겨버린 형부가 어느 괜찮은 수학 선생님이었다는 조건 둘 때문에 이런저런 저의 간섭을 많이도 겪었을 테죠. 수학과 공부에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착한 처제는 저를 '형부'보다 '선생님'이라 불러주었고, 그 처제는 올해 수능을 치렀습니다.


입시 결과라는 것은 오직 수험생 당사자에게만 의미가 있는 단어이기에 처제의 선생님이었던 저는 오직 뿌듯하기만 했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입시는 마라톤과 같다지요. 42.195km를 뛰는 긴 장거리 경주임에도 매 순간을 전력질주해야 하기에 그런 비유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허나 뿌듯한 것만으로 끝났어야 했을 텐데, 어느 마음 좁은 형부는 다소 허망한 심정을 느낀 일이 있었습니다. 입시가 완전히 마무리가 될 때 즈음 처제가 아내에게 이리 묻는 것을 보았던 일입니다.


"언니, 나 이제 경제 공부를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물론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겠지만, 역시나 처제는 학구적으로 부지런하다 싶었습니다. 입시가 끝났음에도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하는 모습은 드문 일이니까요. 12년의 공교육이 마무리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마저도 만만치 않은 경제라는 공부거리를 찾는 모습이 남다르다 싶었습니다.


마음 한편으론 헛헛기도 했음을 솔직히 고백해야겠습니다. 수학이나 입시가 궁금하여 내게 물음 해오는 일은 이제 과거가 되었구나 싶었으면서도, 동시에 '공부'를 어찌해야 할지 묻는 모습은 바짝 굽은 팔꿈치에도 불구하고 전혀 낯설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형부와 언니가 모두 교사인 상황에서 '공부'에 관해 언니에게 묻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테죠. 책상공부에 특화되어 있는 형부보다 어릴 적부터 안팎으로 조력해 준 언니에게 경제 공부를 묻는 것도 당연한 일일 테고요.


그럼에도 어느 교사 형부가 곁에서 지켜보기에는, 공교육을 12년 훌륭히 마친 한 사람이 여전히 '공부'를 할 줄 몰라 도움을 청하는 모습이 마냥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이 글(혹은 책)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사연입니다.



금융 문맹


'금융 문맹'이라는 말이 있다지요? 금융 지식이 부족하여 돈의 가치를 이해하거나 관리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돈 얘기만 나오면 머리가 굳는 필자 같은 사람을 보며 쓰는 말이지요. 금융 문맹의 반대말은 금융 박사 정도가 되려나요?


금융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요즘 시대에 무척이나 중요하기에 소양이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내수공업이나 물물교환만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경제는 이제 물건에 의해 형성되지 않고 돈의 흐름, 즉 금전의 융통을 따라서 유지되며 변화합니다.


쉽게 '돈'이라 부르는 자본의 교환에 의해서 우리는 교육, 옷, 커피, 의료, 공연 등을 얻고 팔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은 돈의 흐름에 따라 교환되고 가치 매겨지지요. 경제적 가치 말입니다. 아주 최근의 과거까지도 대부분의 사람은 땅에서 농사짓고 수확하여 조세를 내고 생활했지요. 반면 대부분의 현대인은 직장에서 일하고 돈을 벌어 세금을 내며 생활합니다.


따라서 농부가 하늘, 땅과 계절에 박식하고 가담해야 했듯 21세기의 우리에게 금융이라는 돈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해졌습니다. 문득, '대부분'에 속하지 않기를 염원하며 사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를 미래인은 어찌 돌아보고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방금 전, 저는 "돈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이해'에는 여러 가지 수준이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이해의 대상이 되는 바와 관련된 단어를 여럿 알고, 그 단어들 사이의 관계를 아는 것을 뜻하지요. 경제를 이해한다고 함은 돈, 자본, 이자, 투자, 손실, 사업, 주식, 무역 등의 단어와 관계를 아는 것에서 시작하지요. 이런 단어와 관계가 빈약하면 금융 문맹이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금융 속에 사는 시대에 너 나 모두 금융 박사까지 될 필요는 없겠지만 금융 문맹이 되는 일은 되도록 없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도 조금은 곤란한 일일 겁니다. 저도 제 밥벌이를 하면서부터 늦게서야 경제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이제는 책임질 아내와 자식까지 생겼으니, 머지않아 금융 문맹 딱지를 얼른 떼기를 염원해 봅니다.



공부 능력


21세기의 1/4분기가 지난 지금, 금융만큼 중요한 것이 분명 있습니다. 바로 '학습'입니다. 놀랍지도 않으시지요? 평생교육원이나 평생교육이란 말을 요즘은 어렵지 않게 듣게 되니까요. 은퇴하신 시니어 분들을 위한 교육기관이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현수막도 자주 눈에 띕니다.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1909~2005)는 새로운 세계를 살아갈 사람이 갖추어야 할 능력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자료를 수집하는 능력, 자료를 가공하는 능력, 그리고 꾸준한 학습 능력 세 가지가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춘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회로 변화되어 갈 것이라는 거시적인 예언이기도 하거니와, 특정한 훈련과 경험을 통해 자료의 수집과 가공 능력이 향상되듯 학습 또한 그저 하는 것이 아닌 계속 향상되어야 하는 특정한 능력으로 본 것이기도 합니다.


영양, 치안, 위생, 의료 등의 이유로 인간의 건강과 수명 제한선이 무척이나 개선되며 퇴직 후에도 지속적인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활동이 필요해졌습니다. 2025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기대수명은 약 83세라고 합니다.


대략 30년의 직장 생활 후에 정년 퇴직하여도 20년 정도의 삶을 가꾸어야 합니다. 개인의 경제적이고 정신적인 활력을 위해서나 국가적인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활력을 위해서도 모두의 꾸준한 자기계발, 즉 학습은 중요한 주제가 되어갈 수밖에요.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는 시니어분들뿐만 아니라, 이제야 사회에 발을 들이고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저 같은 사람들에게도 꾸준한 학습은 중요한 문제이자 현실입니다. 다방면에서 기술들이 고도로 발달되고, 그 발달은 다음 기술의 발달을 촉진시키는 선순환이 반복되며 세상은 그야말로 급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까요.


새로운 기술과 변화를 소개하는 여러 매체의 소식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종종 변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느낌에 압도되기도 합니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웠던 AI 생성 영상들이 이제는 실제와 분간하기 어려운 정도가 되었지요. 걸음마라 부르기에도 어색하게만 걷던 로봇이 이제는 텀블링을 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여러 섬마을에는 드론 정류장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기존에는 섬마을에 필요한 물자가 부족해지면 물때와 날씨를 맞추어 배를 타고 나가야만 육지에서 물품들을 사 올 수 있었지요. 지금은 그러한 물건들뿐만 아니라 육지 사람은 쉽게 즐기는 치킨 음식 같은 외식 음식까지도 배달받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기술은 소리 없이 빠르게 발전하고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만에 이만큼의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만큼의 시간이 한 번 더 지나면 어찌 세상이 변해져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며 한편으론 두렵기도 합니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혹은 뒤처지지 않고 싶어서라도 공부를 놓을 수가 없습니다.



불안불안


올해 35살인 저에게는 갓 돌이 지난 딸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가 35살이셨을 때 저는 9살이었습니다. 저도 또래에 비하면 결코 늦지 않게 취직하고 결혼했다 생각했는데, 세대를 건너뛰어 멀리서 바라보면 무려 8년이나 늦어진 셈입니다. 대학교육을 받는 기간이나 취직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사회 진출이 늦어진 탓이겠지요.


그렇다고 하여 내 몸이 생물학적으로 노화를 늦추며 사회 진출을 기다려준 것도 아니거니와(일반적으로 분만 예정일을 기준으로 산모의 나이가 만 35세 이상이면 '노산'이라 부른다지요) 정년퇴직 연령 또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수명의 증가와 같은 여러 이유 때문에 결코 안도할 수는 없다는 불안이 항상 삶의 저변에 깔려있는 듯합니다. 찝찝하고 찜찜한 불쾌감이 정신적인 만성 통증처럼 느껴집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뇌와 심리적 건강에 좋다는 의학적인 이유 때문이든, 개인적인 소양과 즐거움 때문이든, 또는 저처럼 폭풍처럼 몰아닥치는 변화의 시류에 존재감을 붙들고 싶다는 아상(我相) 때문이든, 이 시대에 공부를 놓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어느 한 분야에서 10년을 매진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합니다. 하필 10년이라 하는 이유는 보고 듣기에 좋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매일 같이 하루 3시간을 몰두했을 때에 대략 1만 시간 정도가 되는 기간 딱 10년이니 '1만 시간의 법칙'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어서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초, 중, 고 12년을 보냈음도 모자라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는 4세부터 고시 공부를 시킨다는 문화 속에 살고 있죠. 10년이 무슨 말입니까, 5년 만에 우리 모두는 공부에 전문가가 되고도 남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평생의 대부분을 공부하며 지냈던 만 18세 처제의 "공부를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겠어."라는 흘러가던 말을 들은 어느 교사 형부가 어찌 글을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평생 해온 일이 그나마 공부하고, 공부 가르치고, 글 쓰는 일인데요.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처제에게,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막막한 모든 이를 위해. 공부를 위한 최소한의 공부를 위해.



안녕하셨는지요?

작가명 김똑띠, 본명 김동진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선생님의 목소리>, <쓸모없는 수학> 이후로 2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해볼 엄두를 내게 되었습니다.


그간에 <아빠가 태어나는 중>도 출간되고 또 곧 나올 새로운 책을 쓰느라

이래저래 마음이 바빴습니다.


이런저런 글을 이래저래 써오고 있지만

매 글을 쓸 때의 마음은 변함 없었던 듯합니다.

"이게 내가 쓸 수 있는 마지막 글이다."


이번 연재도 같은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써낼 수 있는 마지막 이야기다."

라구요.


모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두의 공부를 위한 최소한의 공부는 어떤 것일지

댓글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또한 감사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몸도 마음도.